S-OI(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공사 현장. /사진=뉴시스


지난 19일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모두 자구안을 제출하면서 지난 8월 시작된 정부 주도의 석유화학 산업 재편이 첫발을 뗐다. 지난 4개월을 돌아보면 정부와 석화 업계의 최대 고민은 'S-OIL(에쓰오일)'이었다. 울산 산단이 마지막으로 자구안을 제출한 배경도 S-OIL이 샤힌 프로젝트 증산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2020년대 초부터 중국이 NCC(나프타분해설비) 증설에 나서며 국내 공급 과잉이 심화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1년 117만5000톤이던 수출 물량은 올해 189만4000톤으로 61% 늘었지만 톤당 수출단가는 1021달러에서 784달러로 하락했다. 그간 국내 석화 기업들은 대중 수출에 의존해왔으나 중국이 범용 제품 생산을 늘리며 물량을 저가로 밀어내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국내 석화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NCC 통폐합 등을 통한 에틸렌 270만~370만톤 감산을 요청했다. 정부는 2026년 완공 예정인 샤힌 프로젝트에서 생산될 물량도 감산 산정에 반영했지만 S-OIL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가 2027년 상업 가동에 들어설 경우 연간 180만톤 규모의 물량이 울산 산단에 공급돼 50만톤 이상의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샤힌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S-OIL의 차입금 규모가 지난해 기준 7조8060억원까지 불어난 가운데 정부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울산 산단 내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는 S-OIL과 논의를 이어갔지만 에틸렌 감산에는 합의하지 못한 채 폴리머 생산 설비 중심의 다운스트림 밸류체인 최적화 방향에 그쳤다.

그나마 지난달 26일 대산 산단에서 1호안이 도출되며 물꼬가 트였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110만톤 감산에 합의했다. 롯데케미칼 공장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합작사를 설립하고 지분은 양사가 각각 50%씩 보유하기로 했다. 1호안이 나오자 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지난 14일에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공동 운영하는 여천NCC가 제3공장(47만톤) 폐쇄를 결정했다. 여수 산단에서도 LG화학과 GS칼텍스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LG화학 여수 제1공장(120만톤) 폐쇄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울산 산단을 제외하면 석유화학 산업 재편의 윤곽은 점차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석유화학 재편 성패가 울산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수치상으로는 현재까지 감산 규모가 정부 목표치에 근접했지만 여천NCC 제3공장은 이미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370만톤 감산에 성공하더라도 지난해 내수 에틸렌 수요는 861만톤에 달해 여전히 국내 생산이 더 큰 상황이다.

일부 산단만 재편에 동참할 경우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샤힌 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유로 정부 요구를 외면할 경우 다른 기업들만 인력 구조조정과 시설 폐쇄 비용을 떠안게 된다. 울산 산단은 가동률이 90%대로 공급망 효율이 높은 지역이지만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을 시작하면 공급 과잉이 심화돼 업계가 연간 최대 4400만톤 이상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