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3월30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김안나(39·가명)씨는 부동산사업을 하는 20년 지기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씨 친구는 다급한 목소리로 “너 아직 경기도 살지? 혹시 청약통장 있어?”라고 물어왔고, “응”이라는 대답을 하자마자, 격양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너 4월2일 미사지구에 청약 꼭 넣어. 당첨되면 내가 무조건 2000만원 얹어서 살게. 가급적이면 1순위로 넣고, 꼭 넣어야 해.”

#2. 지난 3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능동에 위치한 반도건설의 ‘동탄역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5.0·6.0 견본주택’ 앞. 견본주택 주변에서는 10여개의 떴다방(이동식중개업소) 직원들이 방문객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영업전을 하고 있다. 이들 직원은 큰 목소리로 “청약이 되면 꼭 연락주세요. 기본 웃돈이 3000만원은 넘을 테니 사장님이 원하는 금액에 잘 맞춰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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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양 훈풍이 부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떴다방'이 견본주택 오픈 때마다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불과 지난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미분양 적체현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이어가던 부동산시장에 주택청약통장 자격완화와 1%대 초저금리,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 호재가 겹치는 모습이다.

◆ 전국 분양시장에 ‘떴다방’ 창궐

주택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아직 봄이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신규 분양시장의 체감온도는 마치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전하듯 견본주택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시장의 침몰과 함께 사라졌던 떴다방까지 기승을 부려 부동산 ‘활황기’의 모습과 흡사하다.

떴다방이란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에게 웃돈을 주고 아파트 입주권을 산 뒤 이를 되파는 형식으로 이익을 취하는 중개인을 뜻한다.

실제로 지난 3월27일 문을 연 '미사강변 리버뷰 자이' 견본주택 주변에는 10여개의 '떴다방'이 등장했다. 사흘 동안 2만여명의 수요자가 찾은 이곳에 떳다방 직원들은 관람객을 상대로 명함을 돌리며 당첨될 경우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떴다방은 지난달 13일 오픈한 반도건설의 ‘동탄역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5.0·6.0 견본주택’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들 떴다방 직원은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지친 방문객을 상대로 친절히(?) 안내 및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 때문일까. '동탄역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6.0'과 '5.0'은 각각 평균 청약경쟁률 62.85대1과 55.67대1을 기록했다.

지난해 미분양의 무덤으로 불리던 인천 청라국제도시에도 떴다방이 등장했다. GS건설이 인천 청라국제도시 LA1·LA2 블록에 짓는 ‘청라파크자이 더 테라스’. 이곳 역시 지난달 12~13일 진행한 청약접수에서 646가구 모집에 1순위에만 5447명이 몰려 9.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떴다방은 지방에도 등장했다. 특히 지난 3월19일 청약접수를 실시한 울산 북구 호계·매곡지구 B1블록 ‘드림in시티 에일린의 뜰 2차’의 경우 30여개의 떴다방이 등장하기도 했다. 인근 숙박업소는 전국에서 몰려든 떴다방과 투자자 덕분에 깜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하듯 ‘드림in시티 에일린의 뜰 2차’는 1순위 청약접수 결과 626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2만2314명이 몰려 평균 35.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55가구를 모집한 전용 84㎡ C타입은 1순위에서만 3749명이 청약해 68.2대 1로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달 12일 문을 연 경북 구미시 신평동에 위치한 ‘문성파크자이’ 견본주택 앞에도 떴다방이 자리 잡았다. 이들 직원은 100여m가량 줄을 서 기다리는 방문객을 상대로 호객행위에 열을 올렸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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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약통장 불법 거래까지, "도 넘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자 투기를 조장하고 시장을 어지럽히는 불법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 떴다방 업자가 청약통장 거래 중개인이 돼 개인이 보유한 청약저축, 청약예금, 청약종합통장 등을 사들이는 등 투기목적의 불법행위가 횡행하고 있는 것.

이들 중개인은 개인에게 사들인 청약통장으로 청약해 당첨될 경우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전매해 차익을 남긴다. 또한 직접 청약하지 않을 경우 청약통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청약통장은 통상적으로 1건당 500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거래연차가 높은 청약통장은 수천만원선에서 매매 및 양도되는 실정이다.

특히 과거에는 청약통장을 현장에서 청약해 본인 여부 등을 확인하기에 불법청약을 비교적 쉽게 잡아낼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금융결제원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청약 신청이 이뤄지기에 사실상 개인 간 합의가 이뤄진 청약통장 거래를 막는 것이 어려워졌다.

청약통장 거래는 엄연한 불법으로 처벌대상이다. 청약통장 매매 거래당사자, 알선한 자, 광고행위를 한 자는 모두 처벌대상이 되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또한 불법거래 청약통장으로 주택을 청약, 당첨되더라도 발각 시엔 해당 주택공급 계약은 취소되며 10년 이하 범위에서 청약자격이 제한되는 등 처벌이 비교적 무겁다.

그러나 청약통장 불법거래로 얻는 수익이 더육 크기에 청약통장 불법거래 현상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청약통장 중개업자들은 청약통장 보유자에게 대가를 먼저 지급하고 청약통장을 매수해 청약통장 가입자 명의로 위장전입 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떴다방들은 청약통장 보유자를 모집, 이들이 직접 위장전입을 해 분양권을 받게 한 뒤 전매차익의 일부를 분배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매 양도된 청약통장은 대포통장으로 음성적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자체와 경찰이 합동단속반까지 구성해 적발에 나서도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청약통장 불법거래 적발 건수는 고작 7건에 불과했다.

금융결제원 담당자는 "현재 청약통장 가입자가 1700만명이고, 이 통장이 모두 개인의 재산권이기 때문에 1700만명의 재산권 행사를 일일이 추적해 실수요자와 비실수요자를 가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