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1.5%로 떨어졌다. 올해 가계부채는 급격히 불어났다. 이달 중 정부는 가파르게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지만 가계대출 부문은 따로 떼놓았다.


경제전문가들은 속도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시한폭탄으로 변해가는 가계부채를 이대로 두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다만 총량규제에 대해서는 시급하다는 의견과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갈렸다. 

◆가계부채 시한폭탄 수준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신호가 잇달아 나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부실위험지수 100을 초과하는 위험 가구 수가 금융부채가 있는 전체 1090만500가구 중 10.3%인 112만2000가구로 전년보다 4000가구 증가했다.

은행 가계대출잔액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주택담보대출 신규연체액은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채권 잔액은 1298조3000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5조1000억원(0.4%) 증가했다. 대출잔액 증가는 가계가 주도했다. 전셋값이 치솟고 부동산경기와 증시가 활기를 띠면서 대출을 받는 가계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은 저금리로 그럭저럭 견디고 있지만 언젠가 금리가 오르면 부작용은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달 중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경감대책을 발표한다.

금융위원회가 이번에 마련하는 가계부채 관리방안에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강화가 빠졌다. DTI는 소득이 적으면 대출을 많이 받지 못하도록 하는 대출규제다. 한국은행 측에서 DTI 규제를 서울 및 수도권 외 지방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회복세인 부동산시장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DTI 산정 시 소득을 더욱 엄격히 심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농협과 축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의 비주택담보인 상가, 빌딩, 토지 등에 대한 담보평가비율(LTV)은 지역·담보종류에 따라 한도를 현행보다 축소한다. 상호금융회사가 현재 토지·상가에 대해 적용하는 LTV비율은 50∼70% 수준, 많게는 80%에 달한다. 금융위는 이를 은행권 수준인 30~40% 안팎으로 떨어뜨릴 계획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미소금융중앙재단 지점. /사진=뉴스1 안은나 기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미소금융중앙재단 지점. /사진=뉴스1 안은나 기자

아울러 가계대출자 소득증빙서류의 은행 확인절차 강화와 원금분할상환대출 비중확대, 상호금융회사의 비주택담보대출의 비중축소에 관한 내용도 포함된다. 가계대출을 원하는 고객의 소득증빙서류 제출과 확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은행의 자율적 대출통제로 소득대비 과도한 대출을 막아 가계부채 위험을 줄이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따라서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소득증빙자료 없이 가정주부 등에게 실시한 가계운영대출 등의 영업방식이 앞으로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밖에 1억원 이하의 비교적 금액이 적은 주택담보대출자들은 재직증명서나 소득증빙서류(원천징수영수증) 등 객관적인 소득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원금분할상환대출 확대도 가계부채관리 방안의 핵심이다.

◆“DTI 규제 강화해야”


정부의 지속적인 부동산부양책에 경제전문가들은 금리가 인상국면으로 전환됐을 때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우려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내놓을 가계부채대책은 빚 상환능력이 취약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은행권 가계대출의 경우 소득 및 순자산 여력이 열악한 가구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경향이 있다”며 “비은행권은 은행에 비해 대손충당금 및 자기자본여력도 떨어져 손실흡수여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연착륙에 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다만 가계부문의 부채축소는 가계보유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에 대한 가격하락 압력을 동반할 수 있어 이를 완화하기 위한 보완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취약계층 금융지원을 명분으로 인위적으로 대출문턱을 낮추는 것도 위험하다고 보았다. 김 연구위원은 “단기·일시상환대출의 중·장기 분할상환대출로의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 분할상환대출로 전환하면 소득대비 실질적 상환부담이 높아져 가계의 과다차입 경향을 줄이게 돼 가계부채 축소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대출문턱을 낮추기보다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총량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미시적으로 접근해 어떤 계층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가계부채대책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고소득층은 빚을 갚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의 타격이 클 것이라는 얘기다.

임 실장은 “부채경감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자력으로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부채를 경감해주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채구조의 질적 개선을 위해 원금상환 유도, 서민금융제도 강화 등의 장치가 대책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총량규제가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원은 “총량규제 없이 급한 불부터 끄려는 미시적 조치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대책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부동산 쪽은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나 장기적으로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정금리 vs 변동금리 갈아타기

기준금리가 연 1.5%로 떨어지면서 은행대출상품의 변동금리와 고정금리 차이가 벌어졌다. 대출자와 대출을 계획 중인 소비자의 고민은 깊어졌다. 게다가 하반기에 미국 금리인상 등 대외 여건의 변화에 따라 국내 자산시장이 요동칠 전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은 변동금리가 유리해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정금리가 유리해질 것이란 예측이다.

송미정 하나은행 PB센터 부장은 “내년쯤 미국에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우리나라도 금리를 조정할 것”이라며 “가계대출을 운용하는 경우 내년 상황을 예상해 고정금리로 갈아타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영아 기업은행 WM사업부 과장도 “금리가 충분히 낮아졌다고 판단된다면 거래은행에 대출금리를 문의하는 게 좋다”며 “일반적으로 3년이 지나면 중도환매수수료가 없는데 같은 은행에서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꿀 경우에도 중도환매수수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3년 안에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다면 신규취급액 기준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한 중장기 대출이 필요하다면 잔액 기준으로 대출금리를 선택하되 금리변동주기를 1년 이상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