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鐵)과의 인연’. 1949년, 우연찮게 철사를 뽑아내는 기계(신선기)를 사들인 한 기업은 61년 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주인공은 바로 국내 굴지의 철강회사로 성장한 동국제강이다. 창립 후 ‘철강 외길’을 걸으며 한국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동국제강은 장경호 선대회장이 재일교포로부터 구입한 신선기가 인연이 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장 회장은 큰돈을 벌게 됐고, 1954년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제철소 시대를 열었다. 현재는 선박이나 건물 등을 구성하는 중후판 철근, 형강 등을 만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 동국제강의 이 같은 성장 뒤에는 선대 회장을 비롯해 장손인 장세주 회장에 이르기까지 최고 경영진들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철을 놓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버틴 결과다. 그러던 동국제강이 최근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철강업황 악화에 이어 총수까지 구속되는 사태를 맞았다. 재계의 시선은 그의 동생이자 2인자인 장세욱 부회장에게 향했다. 과연 그는 형의 부재를 딛고 추락하는 철강종가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흔들리는 동국제강호에 장세욱 대표이사(부회장)의 돛이 올랐다. 지난 6월25일 총수였던 장세주 회장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다. 단독대표이사를 맡은 장 부회장은 위기에 빠진 동국제강을 살려야 한다는 커다란 과제를 안게 됐다. 일단 출발 분위기는 좋은 편. 하지만 동국제강이 주력사업 축소와 수익성 악화, 대규모 적자 등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쉽지 않은 경영행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사진제공=동국제강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사진제공=동국제강

◆ 팔고 중단하고… 재무개선 안간힘

우선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동국제강은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지난 2012년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115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67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면서 실적부진으로 고전해 왔다.


주력사업이 부진했던 게 컸다. 그동안 효자노릇을 해오던 선박을 만드는 데 쓰이는 후판부문과 건물 짓는 데 들어가는 봉강·형강부문이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특히 후판부문의 영업적자가 크다. 지난 2012년 1847억원, 2013년 642억원, 지난해 1260억원으로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같은 기간 후판 시장점유율도 28%에서 21%로, 공장가동률 역시 67%에서 55%로 뚝 떨어졌다. 지난 1분기에는 가동률이 42.3%까지 낮아졌다.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재무 부담이 가중됐고, 지난 4월 을지로에 위치한 본사 페럼타워를 삼성생명에 4200억원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보유하고 있던 포스코강판 주식을 매각하면서 현금 확보에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25일에는 후판 2공장 가동중단을 결정했다. 지난 2012년 포항 후판 1공장 폐쇄에 이어 3년 만이다. 이런 결정은 지난 1분기 후판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897억원(28%) 감소하는 등 어려움이 지속됐고 그룹 전체의 적자폭을 늘리는 원인이 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손에 쥐는 현금은 점점 줄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으로 동국제강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3372억원으로 지난해 말 3406억원과 2013년 말 5974억원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기관예치금 역시 2013년과 지난해 각각 6328억원과 4704억원보다 적은 2836억원을 기록했다.


장 부회장은 포항 2공장 가동중단으로 이원화된 후판 생산 체제를 당진 3공장으로 집약하면서 직접적 적자의 원인이었던 후판사업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동국제강이 올해 연말까지 상환해야 할 사채만 2700억원에 이른다. 현재 보유한 현금성 자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동국제강. /사진=머니위크 DB
동국제강. /사진=머니위크 DB

◆ “총수 탓”… 구조적 변화에는 한계

급박해진 장 부회장은 단독체제 전환과 함께 조직개편 카드를 빼들었다. 기존 열연, 냉연, 구매, 경영지원본부로 구분된 4개 본부, 5개 공장, 1개 연구소 체제에서 후판, 형강, 봉강, 냉연 등 4개 제품별 본부로 바꾸고 구매본부가 이를 지원하는 구조로 재편한 것.

중앙기술연구소는 기술담당으로 전환해 전략담당, 재무담당과 함께 CEO 직속 조직으로 편성했다. 이에 맞춰 3명의 신규 이사를 선임하고, 15명의 임원 보직 변경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중점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향후 수익성 개선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장 부회장 체제 전환에도 큰 틀의 구조적 사업 변화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기한다.

또한 장세주 전 회장이 진두지휘해왔던 브라질 고로 제철소 건설 등도 장 부회장에겐 부담으로 작용한다. 총수 부재 상황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해서다.

장 전 회장은 지난 2012년부터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브라질 세아라주에 연간 300만t 규모의 고로 제철소(동국제강 지분율 30%)를 건설하고 있다. 현재 공정률 80%를 기록 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앞으로 투입해야 할 자금은 9800만달러 규모다. 돈도 돈이지만 사업을 주도했던 장 전 회장 구속이 그룹의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않다. 이는 고스란히 장 부회장의 몫으로 남는다.

업계 관계자는 “동국제강 신용등급이 BBB로 떨어진 데다 오너 리스크까지 겹쳐 회사채 등을 통한 자금조달과 금융기관 차환 등이 모두 막혔다”며 “그렇게 되면 10년 넘게 추진한 브라질사업에 차질이 빚어져 이에 따른 추가적인 신용등급 강등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에 동국제강 오너십 바통을 넘겨받은 장 부회장. 재계는 그가 어떤 경영 솜씨로 나락에 떨어진 철강 종가의 명예를 회복시킬지 예의주시한다. ‘동국제강 100년의 꿈’ 향방이 그의 손에 달렸다.

장세욱 부회장은?
▲1962년 출생 ▲1981 환일고 졸업 ▲1985 육군사관학교 졸업(41기) ▲1995 전남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6 육군 소령 예편, 동국제강 입사 ▲1997 동국제강 미국지사 ▲1998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0 동국제강 포항제강소 지원실장(이사) ▲2001 동국제강 포항제강소 관리담당 부소장(상무) ▲2004 동국제강 전략경영실장 ▲2005 동국제강 전무 ▲2007 동국제강 부사장 ▲2010 동국제강 사장, 유니온스틸 사장 ▲2015년 동국제강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