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쉼, 칠곡하고도 왜관에서 물어봐
송세진의 On the Road - 칠곡 매원마을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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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왜관? 생소하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꽤 번영했던 반촌이지만 한국전쟁 때 크게 상해를 입은 곳이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푹 쉬어가기 좋은 곳, 칠곡 매원마을로 가보자.
◆매화를 닮은, 연꽃이 만발한 마을
왜관읍에서 동쪽으로 4㎞ 거리에 ‘매원마을’이 있다.용두산, 죽곡산, 아망산, 금무산, 산두산, 자고산 등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매화꽃 같아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반촌이었고 대대로 학자와 관직을 배출했다.
1905년 즈음에는 400여채의 가옥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하회·양동마을에 비해 유명세가 덜하다. ‘왜관’은 일본과 무역을 하던 곳을 말한다. 이곳에 숙박처, 접대처가 있었으니 꽤 바쁘고 번화했을 것이다. 주목받을 만한 곳이다보니 6.25 때는 부침도 많아 왜관철교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군인들의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폭격으로 가옥 대부분이 소실되고 고택 60여채만 남았다. 지금은 해은고택과 지경당을 중심으로 고택들이 모여있는데 앞쪽으로는 연지가 있어서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마을 한바퀴를 산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도 금방 다 돌아볼 수 있으니 빨리 해치우려 하지 말고 목적 없이 천천히 걷는 게 방법이다. 사실 특별히 꼭 봐야 하는 것도 없지만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집마다 꽃나무와 과실나무가 많다. 늙은 호박이 통통하게 여물었고 석류는 가지가 휘어지게 열렸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감은 물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툭툭 떨어지고 좀처럼 보기 힘든 얼굴만한 꽃도 담장 아래 피었다.
꽃 이름이 궁금해 집안 어르신께 여쭤보니 무심하게 "몰라!" 하신다. 하긴 꼭 알 필요도 없는 시골 담장의 예쁜 풍경이다. 오래된 흙담장 위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아무렇게나 놓아둔 듯한 텃밭에는 고추며 들깨며 콩이며 소출이 풍성하다. 봄도 예뻤고, 여름도 예뻤겠다. 특별할 게 없는데 그냥 이곳이 좋아진다. 이건 여행처럼 생긴 휴식이다.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지경당
지경당에 들러 잠시 집구경을 한다. 사랑채 앞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다. 아직도 차가운 물이 퐁퐁 올라오는 우물물을 정원의 꽃나무에 시원하게 뿌려주고 고택의 주인이신 이수욱 어른의 말씀을 들어본다.
집의 이야기는 그곳을 살다간 사람의 이야기다. 안채에서 듣는 아녀자들의 삶은 따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하고 안타깝다. 냉장고로 쓰였던 커다란 창고방의 고기 걸이 숫자만 봐도 이 집이 어땠는지 알 것 같은데 별도로 있는 곳간의 규모도 대단하다.
예부터 안살림을 총괄했던 것은 안주인이라 집안의 모든 권위는 안방마님에게서 나왔다. 남자는 바깥에서 일을 하는 ‘바깥양반’ 이었기에 집안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즉 곳간이며 살림살이가 모두 안채에 속했다. 사랑채가 남자의 위용과 권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다분히 장식적이고 별다른 기능이 없다면, 안채는 짜임새 있고 합리적인 구조를 가졌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채 앞마당에 아름다운 꽃나무가 가득한 것에 비해 안채는 심심할 정도로 밋밋하다. 지붕에도 곡선이 없고 흔한 화초 하나 없다. 설명을 듣자 하니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안채에서 가장 돋보여야 하는 것은 안주인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장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오롯이 안주인이 주인공이고 그 우아함만이 돋보여야 했다. 대신 반가에서는 뒤뜰, 궁궐에서는 후원을 꽃과 나무로 장식해 아녀자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줬다. 여성의 자유가 제약되던 시대에 보여준 최소한의 배려였다.
여자는 평생 한방에서 머물지 않았다. 처음 시집와서 마루를 사이에 두고 시아버지와 한채를 쓴다. 그 가깝고도 먼 사이에는 할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아이를 낳으면 방을 옮기고, 딸의 경우 성장하면 별당에 기거한다. 며느리가 곳간 열쇠를 시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으면 비로소 이 집의 살림을 총괄하는 안주인이 되고 방 또한 안채의 안방으로 이동한다. 며느리가 생기면 다시 건넛방으로 옮기고 비로소 안팎을 내외할 필요없는 경지, 즉 최고 어른인 할머니가 되면 안채와 사랑채가 모두 보이는 방으로 옮겨간다.
잠깐 들어가본 할머니 방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멀리 보면 들판 지나 건너편 산이 시원하고 앞문과 뒷문을 통해 깨끗한 바람이 지난다. 사랑채와 솟을대문이 보이고 뒤를 보면 안채와 안마당도 시야에 온전히 들어온다. 집의 안팎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자유롭고 권위 있는 방이다. 한평생을 성실하게 지켜야만 이 멋진 특권이 주어진다.
한편 사랑채에는 험한 총알 자국들이 보인다. 이 집은 6.25 전쟁 때 인민군의 병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종가댁은 그들의 본부로 쓰였기 때문에 미군의 폭격을 받아 완전히 허물어졌고 그나마 병원으로 쓰였던 지경당은 원형에 가깝게 남았다. 상흔을 입었지만 누마루의 기둥, 장식 하나하나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오래된 소나무 기둥은 이제 나이테를 따라 골이 파였고 주인어른이 하나씩 소중하게 모은 옛 물건들이 뺄 것 없이 아름답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많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호기심 없이 지나치는 대상일 수 있다. 고택도 마찬가지다. 화장실과 샤워가 불편한 옛날 집으로만 생각했을 뿐이라 생각했지 이곳을 살다간 사람들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여행 중에 만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소중하다. 이 또한 여행이고 힐링이다.
◆천천히, 그 자체를 즐기는 여행
고택의 들창을 올리니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마치 들판의 정자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선 차 한잔이 좋겠다. 차를 마시며 일행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동네 고양이들도 외지인이 궁금한지 하나둘씩 모여든다. 마당에는 감물 들인 홑청이 빨랫줄에 크게 널려 있다. 붉은 갈색으로 물든 염색천은 파란 가을하늘과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느긋하게 차담이 끝나면 연잎밥으로 몸을 채운다. 칠곡의 산과 들에서 나온 건강한 식재료가 반찬이 됐고 연잎을 걷어내면 윤기 가득한 잡곡밥이 향기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보다 조금 더 먹게 된다. 공기 좋은 산보 길이 있으니 약간의 과식은 큰 문제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밥을 먹고 대청마루에 앉으면 들판에서 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하루 종일 나눈 정담은 밤이 깊도록 그치질 않는다.
[여행 정보]
☞ 매원마을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왜관IC에서 ‘왜관’ 방면으로 우측방향 - 칠곡 대로 - 매원사거리에서 ‘가산, 다부IC’ 방면으로 우회전 - 호국로 - 봉계로 - 매원 2길
[대중교통]
왜관역 - 농어촌 26번 버스 승차 - 매원2리건너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매원마을: 검색어 ‘매원마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칠곡군문화관광
문의: 054-973-3321
http://tour.chilgok.go.kr
● 음식
그대가 꽃: 매원마을의 찻집이며 식당이다. 연잎밥과 보이차, 염색체험을 할 수 있다.
연잎밥상(4인이상 가능, 예약필수, 1인가격) 1만원 / 1만5000원
보이차 1만5000원 / 녹차 5000원 / 오미자차 3000원 / 커피 3000원
염색체험: 손수건 5000원 / 스카프 1만5000원
할매돼지국밥: 왜관역에 있으며 칠곡 유명 돼지국밥집의 어머니가 직접 운영하는 원조격인 집이다.
돼지국밥 6000원 / 순대국밥 6000원 / 수육 1만5000~2만원
● 숙소
진주댁: 고택을 리모델링한 숙박 시설로 원래 집은 박곡 이원록의 9세손 상립에 의해 건립됐다. 기둥과 문 등을 그대로 살렸고 파손된 부분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마당도 정성들여 가꿨다. 앞으로 연지와 농경지, 안산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예약문의: 010-3111-2512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30-5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화를 닮은, 연꽃이 만발한 마을
왜관읍에서 동쪽으로 4㎞ 거리에 ‘매원마을’이 있다.용두산, 죽곡산, 아망산, 금무산, 산두산, 자고산 등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매화꽃 같아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반촌이었고 대대로 학자와 관직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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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마을 |
1905년 즈음에는 400여채의 가옥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하회·양동마을에 비해 유명세가 덜하다. ‘왜관’은 일본과 무역을 하던 곳을 말한다. 이곳에 숙박처, 접대처가 있었으니 꽤 바쁘고 번화했을 것이다. 주목받을 만한 곳이다보니 6.25 때는 부침도 많아 왜관철교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군인들의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폭격으로 가옥 대부분이 소실되고 고택 60여채만 남았다. 지금은 해은고택과 지경당을 중심으로 고택들이 모여있는데 앞쪽으로는 연지가 있어서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마을 한바퀴를 산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도 금방 다 돌아볼 수 있으니 빨리 해치우려 하지 말고 목적 없이 천천히 걷는 게 방법이다. 사실 특별히 꼭 봐야 하는 것도 없지만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집마다 꽃나무와 과실나무가 많다. 늙은 호박이 통통하게 여물었고 석류는 가지가 휘어지게 열렸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감은 물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툭툭 떨어지고 좀처럼 보기 힘든 얼굴만한 꽃도 담장 아래 피었다.
꽃 이름이 궁금해 집안 어르신께 여쭤보니 무심하게 "몰라!" 하신다. 하긴 꼭 알 필요도 없는 시골 담장의 예쁜 풍경이다. 오래된 흙담장 위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아무렇게나 놓아둔 듯한 텃밭에는 고추며 들깨며 콩이며 소출이 풍성하다. 봄도 예뻤고, 여름도 예뻤겠다. 특별할 게 없는데 그냥 이곳이 좋아진다. 이건 여행처럼 생긴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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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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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당 |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지경당
지경당에 들러 잠시 집구경을 한다. 사랑채 앞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다. 아직도 차가운 물이 퐁퐁 올라오는 우물물을 정원의 꽃나무에 시원하게 뿌려주고 고택의 주인이신 이수욱 어른의 말씀을 들어본다.
집의 이야기는 그곳을 살다간 사람의 이야기다. 안채에서 듣는 아녀자들의 삶은 따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하고 안타깝다. 냉장고로 쓰였던 커다란 창고방의 고기 걸이 숫자만 봐도 이 집이 어땠는지 알 것 같은데 별도로 있는 곳간의 규모도 대단하다.
예부터 안살림을 총괄했던 것은 안주인이라 집안의 모든 권위는 안방마님에게서 나왔다. 남자는 바깥에서 일을 하는 ‘바깥양반’ 이었기에 집안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즉 곳간이며 살림살이가 모두 안채에 속했다. 사랑채가 남자의 위용과 권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다분히 장식적이고 별다른 기능이 없다면, 안채는 짜임새 있고 합리적인 구조를 가졌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채 앞마당에 아름다운 꽃나무가 가득한 것에 비해 안채는 심심할 정도로 밋밋하다. 지붕에도 곡선이 없고 흔한 화초 하나 없다. 설명을 듣자 하니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안채에서 가장 돋보여야 하는 것은 안주인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장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오롯이 안주인이 주인공이고 그 우아함만이 돋보여야 했다. 대신 반가에서는 뒤뜰, 궁궐에서는 후원을 꽃과 나무로 장식해 아녀자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줬다. 여성의 자유가 제약되던 시대에 보여준 최소한의 배려였다.
여자는 평생 한방에서 머물지 않았다. 처음 시집와서 마루를 사이에 두고 시아버지와 한채를 쓴다. 그 가깝고도 먼 사이에는 할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아이를 낳으면 방을 옮기고, 딸의 경우 성장하면 별당에 기거한다. 며느리가 곳간 열쇠를 시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으면 비로소 이 집의 살림을 총괄하는 안주인이 되고 방 또한 안채의 안방으로 이동한다. 며느리가 생기면 다시 건넛방으로 옮기고 비로소 안팎을 내외할 필요없는 경지, 즉 최고 어른인 할머니가 되면 안채와 사랑채가 모두 보이는 방으로 옮겨간다.
잠깐 들어가본 할머니 방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멀리 보면 들판 지나 건너편 산이 시원하고 앞문과 뒷문을 통해 깨끗한 바람이 지난다. 사랑채와 솟을대문이 보이고 뒤를 보면 안채와 안마당도 시야에 온전히 들어온다. 집의 안팎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자유롭고 권위 있는 방이다. 한평생을 성실하게 지켜야만 이 멋진 특권이 주어진다.
한편 사랑채에는 험한 총알 자국들이 보인다. 이 집은 6.25 전쟁 때 인민군의 병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종가댁은 그들의 본부로 쓰였기 때문에 미군의 폭격을 받아 완전히 허물어졌고 그나마 병원으로 쓰였던 지경당은 원형에 가깝게 남았다. 상흔을 입었지만 누마루의 기둥, 장식 하나하나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오래된 소나무 기둥은 이제 나이테를 따라 골이 파였고 주인어른이 하나씩 소중하게 모은 옛 물건들이 뺄 것 없이 아름답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많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호기심 없이 지나치는 대상일 수 있다. 고택도 마찬가지다. 화장실과 샤워가 불편한 옛날 집으로만 생각했을 뿐이라 생각했지 이곳을 살다간 사람들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여행 중에 만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소중하다. 이 또한 여행이고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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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밥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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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다도체험 |
◆천천히, 그 자체를 즐기는 여행
고택의 들창을 올리니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마치 들판의 정자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선 차 한잔이 좋겠다. 차를 마시며 일행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동네 고양이들도 외지인이 궁금한지 하나둘씩 모여든다. 마당에는 감물 들인 홑청이 빨랫줄에 크게 널려 있다. 붉은 갈색으로 물든 염색천은 파란 가을하늘과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느긋하게 차담이 끝나면 연잎밥으로 몸을 채운다. 칠곡의 산과 들에서 나온 건강한 식재료가 반찬이 됐고 연잎을 걷어내면 윤기 가득한 잡곡밥이 향기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보다 조금 더 먹게 된다. 공기 좋은 산보 길이 있으니 약간의 과식은 큰 문제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밥을 먹고 대청마루에 앉으면 들판에서 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하루 종일 나눈 정담은 밤이 깊도록 그치질 않는다.
[여행 정보]
☞ 매원마을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왜관IC에서 ‘왜관’ 방면으로 우측방향 - 칠곡 대로 - 매원사거리에서 ‘가산, 다부IC’ 방면으로 우회전 - 호국로 - 봉계로 - 매원 2길
[대중교통]
왜관역 - 농어촌 26번 버스 승차 - 매원2리건너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매원마을: 검색어 ‘매원마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칠곡군문화관광
문의: 054-973-3321
http://tour.chilgok.go.kr
● 음식
그대가 꽃: 매원마을의 찻집이며 식당이다. 연잎밥과 보이차, 염색체험을 할 수 있다.
연잎밥상(4인이상 가능, 예약필수, 1인가격) 1만원 / 1만5000원
보이차 1만5000원 / 녹차 5000원 / 오미자차 3000원 / 커피 3000원
염색체험: 손수건 5000원 / 스카프 1만5000원
할매돼지국밥: 왜관역에 있으며 칠곡 유명 돼지국밥집의 어머니가 직접 운영하는 원조격인 집이다.
돼지국밥 6000원 / 순대국밥 6000원 / 수육 1만5000~2만원
● 숙소
진주댁: 고택을 리모델링한 숙박 시설로 원래 집은 박곡 이원록의 9세손 상립에 의해 건립됐다. 기둥과 문 등을 그대로 살렸고 파손된 부분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마당도 정성들여 가꿨다. 앞으로 연지와 농경지, 안산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예약문의: 010-3111-2512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30-5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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