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의 경영의지가 뚜렷하다. 느닷없는 경질설에 흔들릴 법도 한데 자신의 경영철학과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엔 변함이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한 거침없는 발언과 회사정책을 공개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그가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룹과의 깊은 갈등

한화그룹이 계열사인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직의 연임 불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주 사장의 리더십 약화 등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 사장이 추진하는 정책들이 타격을 입으면서 그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될지도 의문이다. 그는 확연한 경영의지를 보이지만 당분간 회사와의 불편한 동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주 사장은 내년 3월까지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주 사장의 등기임원직은 내년 9월까지 유지되지만 대표이사의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난다. 하지만 연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투자증권과 한화그룹 측은 주 사장을 둘러싼 경질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 등장한 경질설의 배경에는 간과할 수 없는 그의 파격적인 경영행보가 자리하고 있어 주목된다.


무엇보다 그룹과 갈등의 골이 깊다. 주 사장은 지난 2013년 9월 대표이사직에 올라 과당매매 방지제도 도입, 고위험등급 주식 발표, 매도리포트 비중확대 등의 혁신안으로 이목을 끌며 증권가의 ‘이단아’로 불렸다. 그러나 그룹과의 소통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한화투자증권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무산 가능성을 겨냥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서 주 사장은 지난해 3월부터 적극적으로 매도 보고서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자의 기본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보고서가 매수 일색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그룹이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그룹이 당혹스러워했을 여지가 충분하다.


고객만족과 고객보호 차원에서 시도된 파격적인 실험이었지만 회사의 수익성 강화엔 뒷전이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는 그룹과의 마찰을 불러온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주 사장이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잘 쓰라고 한 적은 많았지만 수익성 강화를 주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직원들과의 소통 부재

주 사장이 퇴임하면 그동안 추진하던 정책들이 더 이상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 사장의 불도저 같은 ‘밀어붙이기식’ 경영행보에 대한 내부직원의 피로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주 사장은 지난 1월 투자권유대행인에 대한 규정을 수정하며 수수료를 ▲1년차 60~80% ▲2년차 30% ▲3년차 이내 20% ▲3년차 이상 없음 등으로 변경했다. 업계 관례상 투자권유대행인이 유치한 펀드 등 상품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해지할 때까지 지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투자권유대행인에게 사실상 판매수수료를 주지 않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사정책을 미리 밝히거나 자신의 생각을 올리는 행동도 구설에 올랐다. 겉으로는 소통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화투자증권 직원들조차 페이스북을 통해 회사정책의 변화를 알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페이스북으로 깜짝발표를 하고 이에 대해 언론보도가 나오면 ‘기사를 왜 쓰는지 모르겠다’며 또 페이스북에 글을 쓰니 직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CEO가 임직원들과 사전 의견조율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주 사장의 여러 실험적인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소통의 부재’와 ‘독선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소통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추진한 것은 한화그룹이 추구하는 이른바 ‘의리경영’에 맞지 않아 직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취임 이전 45명에 달했던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 숫자도 2년 새 반토막났다. 올해도 8명의 애널리스트가 회사를 그만뒀다. 이원락 임원실 파트장(상무)과 김현국 금융상품팀장(상무) 등 임원 4명도 퇴직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화투자증권의 정규직 직원 수는 950명이다. 주 사장이 취임하기 이전(2013년 6월30일 기준 1451명)과 비교하면 501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난 셈이다.


/사진=머니위크 DB
/사진=머니위크 DB

◆임기 못 마칠 수도

갑작스레 경질설이 흘러나온 것이 주 사장에 대한 그룹의 속마음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주 사장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 한다. 실제로 대기업 계열사 CEO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또 내년 주주총회에서 주 사장의 이사직을 해임하거나 다른 사내이사를 선임, 이사회를 통해 주 사장을 해임하는 방안이 거론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존재할 뿐 현시점에서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한화투자증권 측은 그룹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그룹이 한화투자증권의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 이후 연임불가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주 사장이 추구했던 고객보호 강화는 당연히 이뤄내야 한다. 주 사장이 물러나면 한화투자증권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해진다. 후임자가 그의 정책을 계승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 사장의 경영방식에 충분한 소통이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 프로필
▲1959년 1월15일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1985년 세계은행 컨설턴트 ▲1996년 삼성전자 차장 ▲1997년 삼성생명 전략기획실 차장 ▲2000년 AT커니 이사 ▲2001년 삼성증권 전략기획실 상무 ▲2004년 삼성증권 마케팅담당 상무 ▲2004년 우리금융지주회사 전략기획 및 감사담당 상무 ▲2006년 우리투자증권 리테일사업본부 전무 ▲2013년9월~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추석합본호(제402호·제40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