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미인도 위작논란' 마지막 못보고 이국서 '마지막'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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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미인도'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했던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앞서 고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1년 전부터 생사여부 논란에 오른 바 있다.
천경자 화백은 지난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이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긴 뒤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03년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해져 미국 뉴욕의 큰딸 집에서 머물러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화백은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한 뒤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로 화단에 들어섰다. 대표 작품으로는 '미인도'가 꼽힌다.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했던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앞서 고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1년 전부터 생사여부 논란에 오른 바 있다.
천경자 화백은 지난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이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긴 뒤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03년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해져 미국 뉴욕의 큰딸 집에서 머물러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화백은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한 뒤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로 화단에 들어섰다. 대표 작품으로는 '미인도'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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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천경자 화백. /자료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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