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가 최근 난립하는 불법현수막을 수거해 소각장에 모아 놓은 모습. /사진=천안시
충남 천안시가 최근 난립하는 불법현수막을 수거해 소각장에 모아 놓은 모습. /사진=천안시

올 한해 동안 끊임없는 전세난과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신규주택 분양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주택을 구매하려는 수요자들이 모델하우스 오픈 현장으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이 아닌 다른 것 한가지가 더 몰려들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현수막. 인근 지역에서 분양을 앞두고 있거나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단지의 현수막들이 분양을 진행하는 모델하우스를 도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도대체 여기가 어느 아파트 분양인가조차 헷갈릴 정도다. 실제로 지난달 분양한 경기도 김포 한강신도시 구래동 Ac-03블록에 들어서는 ‘김포 한강신도시 반도유보라 5차’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일대 분양 아파트들의 현수막이 장사진을 이뤘다.


인근에서 분양을 앞둔 현대산업개발의 ‘김포 한강 아이파크’ 현수막을 비롯해 지난 9월 아이에스동서가 분양한 에일린의 뜰과 8월 대우건설이 공급한 김포 풍무 2차 푸르지오, 한강신도시 2차 KCC스위첸 등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단지들의 플랜카드들로 일대는 도배됐다.

이러한 풍경이 벌어진 데에는 분양을 앞둔 모델하우스 일대가 최고의 홍보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실수요자이거나 투자를 목적에 둔 수요층이기 때문에 타깃이 확실하다.


여기에 저금리 대출이 지속되는 데다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물량이 맞물리면서 홍보‧분양 대행사들의 분양전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에 모델하우스 인근 현수막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분양 현수막은 장당 제작비가 2만~3만원 정도지만 목 좋은 곳에 걸어두면 노출 효과가 커 분양 광고 대행업체들 사이에서는 좋은 자리 차지 경쟁이 벌어진다. 수십장을 연이어 이단·삼단으로 내걸어 다른 광고물의 자리를 원천 봉쇄하거나 경쟁 업체의 현수막을 신고해 철거된 빈자리에 다시 자신의 현수막을 거는 얌체족도 있다.


이처럼 분양하우스 일대를 점령한 불법 분양현수막은 자치구의 단속에도 줄지 않고 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의 불법현수막 과태료(1월~9월)가 150억원대에 육박했다. 2013년 같은 기간(76억89만원)과 비교해 약 98% 증가한 수치이다. 건설사들이 과태료를 아예 광고비로 책정해 놓고 공격적인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단속에 나선 한 지방 공무원은 “모델하우스 인근의 현수막을 아무리 떼어내도 다음날이면 그대로 걸려있다”고 실태를 설명했다.


이에 보다 못한 일부 지자체들이 최근 불법 분양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이달부터 현수막을 수거해온 시민에게 장당 2000원씩, 월간 200만원 한도에서 보상을 해주는 '보상수거제'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단속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업체들의 꼼수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트럭이나 버스 등 현수막을 내걸 수 있는 차량을 동원해 옮겨 다니는 기동성 현수막까지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