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지하역사 26개 가운데 18개가 3호선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냉방시설이 설치된 1호선 종각역과 설치되지 않은 3호선 옥수역(지상), 남부터미널역(지하)에서 온도를 측정한 모습. /사진=김혜원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의 지하철역에 에어컨도 없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열차 진입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시민들이 재빠르게 일어섰다. 경복궁역 내 천장은 환풍기인지 에어컨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기계에서 뜨거운 바람을 내보내고 있었다. 스크린도어 앞의 시민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이 흘러나왔고 시민들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승객 A씨(54·여)는 "햇빛을 피해 지하로 들어왔는데 차라리 바람이라도 부는 야외가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으로 서울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역 일부는 여전히 냉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교통공사가 관할하는 1~8호선 276개 역사(1호선 서울역-청량리역 구간 총 10개) 가운데 냉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은 51개(18.4%)이다. 2~4호선이 46개이다. 1995년부터 순차 개통된 5~8호선 비냉방 역사 5개는 모두 지상역사이다.

왜 3호선에 많을까

지난달 30일 처음으로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지만 서울 지하철역 일부에는 여전히 냉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교통공사가 관할하는 1~8호선 276개 역사 가운데 냉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51개 역. /표=서울교통공사


비냉방 역사 51개 가운데 40%를 넘는 20곳이 3호선이다. 이 중 지상역사 2개(지축·옥수)를 제외하면 지하역사 26개 가운데 18개가 3호선에 몰려있다. 경복궁역에서 만난 박대희씨(33)는 "30분 동안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확실히 더운 게 체감된다"며 "집 근처 8호선(장자호수공원역)을 자주 이용하는데 냉방이 되지 않는 이 곳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냉방시설은 ▲승객 수 ▲혼잡도 ▲공기 질 ▲역사 노후도 등의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치된다. 1·2호선은 전체 수송량이 많고 노후도가 높아 우선 검토 대상이 됐다. 특히 2호선 아현역은 올해 '노후 지하철 역사 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냉방장치 설치를 포함한 리모델링 작업이 예정돼 있었으나 예산 문제로 잠정 중단됐다.


다만 2호선 일부 역사에 아직 냉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3호선 전체가 후순위로 밀린 것은 아니라는 게 서울교통공사 측 입장이다. 실제로 ▲안국역 ▲경복궁역 ▲남부터미널역 ▲수서역 등은 혼잡도가 높고 승하차 인원이 많아 우선순위로 고려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2025년 1~5월 일평균 승하차 인원 순위' 자료에 따르면 ▲안국역(31위) ▲경복궁역(32위) ▲남부터미널역(29위) ▲수서역(78위) 등이 상위권으로 나타났다. 다만 3호선 비냉방 역사 중 일부(매봉역-수서역 구간 총 7개)는 1993년 이후 건설되며 비냉방 역사가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는게 서울교통공사 측 설명이다.

지상역사는 해결책 없을까

지상역사는 규모가 크고 공간도 개방되어 있는 만큼 이동식 냉방장치나 냉방시설이 마련된 고객대기실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사진은 지난 2일 4호선 노원역에서 시민들이 선풍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 /사진=변한석 기자


비냉방 역사 51개 중 25개가 지상역사이다. 특히 2호선은 비냉방 역사 17개 가운데 13개가 지상역사이다. 지상역사는 규모가 크고 햇빛에 노출되는 만큼 온도가 쉽게 상승한다. 공간도 개방되어 있어 이동식 냉방장치나 냉방시설이 마련된 고객대기실을 설치하는 것 외에 한계가 있다.


강정환 서울교통공사 건축처 주임은 "지상역사는 사방이 개방된 형태라 냉방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냉방시설을 설치해도 바람이 외부로 빠져나가 실제 체감 효과가 없기 때문에 설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교통공사는 이동식 냉방장치나 냉방시설이 구비된 고객대기실을 조성해 승객들의 더위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강 주임은 "이동식 냉방장치와 실내대기실이 미흡한 역사에 계속 설치해나갈 계획"이라며 "시민들이 더위로 인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상역사 냉방 대책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지하역사의 냉방시설 설치가 완료된 이후에 논의될 수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습도 낮아지면 더위 체감 덜할 텐데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경복궁역 승강장 온도는 각각 31.2도, 32.0도 였다. 사진은 안국역(왼쪽)과 경복궁역(오른쪽)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모습. /사진=이동윤 기자


냉방시설이 있어도 높은 습도로 인해 냉방이 잘 체감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시민들도 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던 지난달 23일 5호선 광화문역과 1호선 종각역 안으로 진입하자 습도는 각각 59%, 63%에서 각각 81%, 83%로 높아졌다.

광화문역에서 출퇴근하는 B씨(30대)는 "높은 온도도 문제지만 습도만 조절해도 체감되는 더위가 덜하다"며 "공기청정기 만큼 제습기 설치도 검토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