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기업의 기술신용정보(TCB·Tech Credit Bureau)를 자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술금융평가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은행들은 자체 TCB평가시스템을 통해 기술금융을 확대할 계획이다.


기술금융은 벤처·창업기업을 대상으로 담보나 재무제표 대신 특허·기술력 등을 근거로 대출해주는 구조다. 그동안 은행은 기술보증기금, 나이스평가정보 등 신용평가기관의 TCB평가모델을 사용했지만 앞으로 자체 TCB평가시스템을 구축하면 기술신용대출을 대폭 늘릴 수 있다.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업계에 따르면 이달 15일 신한은행, 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은 금융위원회의 자체평가 역량 심의위원회에 TCB평가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은행이 제출한 TCB평가서에서 TCB전문인력 수, 평가서 수준, 실시기간, 기타 물적요건 등을 살펴본 후 2월 안에 기술신용대출 예비실시(레벨1) 단계를 허가한다.

레벨1 심사에선 은행이 TCB전문인력 수와 TCB평가모형, 전산화 등의 요건을 확충했는지 여부가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알려졌다.

TCB전문인력 충족요건에선 대다수 은행이 합격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은행에 기술신용평가기관의 승인기준과 같은 수준인 평가전문인력 5명 이상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고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이 기술거래사·변리사·기술사 등의 자격증을 소지한 기술평가업무 경력직원을 추가로 모집했다.


관건은 은행이 자체 개발한 TCB평가모형의 차별화 전략이다. 금융위는 기술보증기금의 TCB평가모형(KTRS)에 은행별로 기술금융의 전략을 추가했는지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다.

은행은 KTRS의 기술평가항목인 기업의 기술사업역량, 기술경쟁력 및 경영자의 역량 등을 마련하고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지표 12개, 평가체계 및 평가기준을 각각 구축해야 한다. KTRS는 기업의 기술평가항목을 10개로 나눠 관리하기 때문에 기술신용대출 부실을 줄여 은행의 건전한 기술금융이 확대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는 오는 2월 레벨1 단계에 합격한 은행을 발표하고 7월 정식실시(레벨2) 단계, 내년 1월 정식실시(레벨3) 단계, 2018년 1월 전면실시(레벨4) 단계 심사를 진행한다. 은행이 레벨2를 취득하면 TCB평가를 통해 나온 대출은 여신금융실적에 20%까지 반영하고 레벨3은 50%, 레벨4는 100% 인정한다.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 관계자는 “외부 TCB평가를 은행 자체에서 평가하면 중소기업 신용모형이 개선되고 기술금융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커스] 은행 TCB, '기술금융' 날개 달까

◆경쟁 심화·수수료 논쟁 예고

은행의 자체 TCB평가시스템은 기술금융 경쟁력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창조금융의 핵심으로 기술금융 확대를 독려해 레벨4를 인정받는 은행은 그만큼 독자적인 기술금융을 취급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은행권에선 기업은행이 기술금융을 선도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 말까지 기업은행이 취급한 기술금융 대출잔액은 4조5000억원으로 전체 기술금융대출 58조4000억원의 25%에 달한다. 지난해 3월에는 금융권 최초로 기술금융브랜드 ‘IBK T-솔루션(Solution)’을 출시하고 기술보유기업의 기술수준과 성장단계에 따라 대출과 투자, 컨설팅 등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기업은행은 올해 기술금융지원을 8조원으로 늘리고 2018년까지 TCB평가시스템을 레벨4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마무리해 창업·성장기업의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농협은행도 기존 기술신용평가기관의 평가서를 재검토하는 TCB심사시스템 등을 업그레이드한다. 기업의 여신심사기준이 될 수 있는 TCB사전필터링시스템을 강화하고 건전성이 높은 기술금융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체 TCB평가를 기반으로 우수 기술기업에 기술신용대출을 확대 공급하는 은행이 등장할 것”이라며 “이번 TCB평가시스템 레벨1 심사가 중요한 만큼 은행들이 TCB전문인력 충원, 전산개발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의 자체 TCB평가시스템 구축을 환영하는 금융당국과 달리 기술보증기금, 나이스, KED, 이크레더블 등의 기술신용평가기관들은 난색을 표한다. 은행의 TCB평가시스템이 기술신용평가기관들이 보유한 기술평가데이터, 평가전문인력에 비해 규모와 노하우가 떨어져 기술금융 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기술보증기금과 나이스신용평가정보, KED는 각각 154명, 32명, 116명의 TCB전문인력을 확보했으며 TCB평가모형은 각각 14개, 3개, 36개를 갖췄다. 이에 비해 은행들의 평균 TCB전문인력은 10여명에 그치고 TCB평가모형도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포커스] 은행 TCB, '기술금융' 날개 달까

더욱이 은행들이 기술신용대출을 위해 지불하던 수수료 인하를 추가로 요구할 것으로 보여 기술신용평가기관의 볼멘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시중은행은 연봉 1억원이 넘는 TCB인력을 충원하고 TCB전산시스템 개발에 수억원을 투자해 신용평가관리기관에 지출하는 평가서수수료를 줄이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앞서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10월 기술신용평가기관에 내는 수수료를 평가서 수준에 따라 표준형은 100만원에서 75만원, 약식은 75만원에서 50만원으로 내리는 데 합의한 바 있다.

한 신용평가기관 관계자는 “평가서수수료를 이미 한차례 내렸기 때문에 추가로 더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은행이 자체적으로 TCB평가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인력수급과 경영여건을 고려할 때 모든 TCB평가를 실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기술신용대출로 이어지는 수는 적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