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없는 세상] 소매치기 사라질까
김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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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앞으로 4년 뒤 우리나라는 ‘동전 없는 사회’에 진입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급결제 비전 2020’에 따르면 현금 없는 사회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머니위크>는 새로운 지급결제 도입에 따른 우리 사회의 명암을 조명해보고 전문가 시장전망을 통해 현금 없는 사회를 미리 내다봤다.
# 현금이 왕인 시대. 길 가다 발견한 오만원짜리 지폐 한장. 웬 횡재냐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임자 없는 돈, 우연히 얻게 된 공돈이라 더 기분이 좋다. 지갑 속에 주운 돈을 고이 넣고 이 돈으로 무엇을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 동전과 종이가 모두 사라진 시대. 현금 없이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한다. 무겁고 거추장스럽던 것이 가볍고 간편해졌다. 돈의 씀씀이도 그만큼 헤퍼졌다. 현금을 주고 사는 것과 전자화폐로 결제하는 것은 그 느낌부터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길 가다 주운 지폐 한장이 한낱 종이에 불과해진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새로운 화폐 출현과 관련 기술의 발달로 편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경제시스템 전반의 변화가 과연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까. 동전과 지폐의 종말이 가져올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지하경제, 양지로… 사라지는 소매치기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생산비용의 변화다. 지폐는 종이 등의 생산비용이 필요하고 동전도 구리, 알루미늄이라는 원재료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되는 셈. 국가가 현금제조와 관리에 들이는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0.1~1.1%, 전체 가계소득의 0.3~2.0%로 추정된다.
특히 동전의 경우 불필요한 비용이 많이 든다. 과거 구리와 아연으로 이뤄진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40원. 10년 전부터 원재료를 바꿔 20원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난해 동전 제조에 투입된 비용만 540억원에 달했다. 무현금사회가 되면 이 같은 생산비용, 즉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진다. 물에 젖은 지폐나 훼손된 동전 등을 다시 만드는 데 들었던 재생산비용도 사라진다.
지하경제 판도도 바뀔 전망이다. 경영컨설팅업체인 맥킨지앤컴퍼니의 분석에 따르면 현금결제비중이 50% 이하인 국가의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12%지만 현금결제비중이 80% 이상인 국가는 평균 32%로 두배 이상 높다.
가장 반길 만한 부분은 현금 위주로 운영되는 성매매업소가 존폐기로에 선다는 점이다. 현금이 사라지면 주 고객층인 남성들은 “내 카드에 성매매 기록을 남기느냐 마느냐”를 두고 적잖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덩달아 업소들의 영업환경도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을이 갑에게 현금다발을 뒷돈으로 찔러주는 ‘검은 거래’도 사라진다. 현금을 빌려주고 고금리 이자로 먹고 사는 사채시장은 두말할 것도 없다.
또 현금이 사라진다면 현금사용으로 유발되는 각종 범죄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일단 현금을 노린 소매치기와 강도가 직업을 잃게 된다. 전자화폐의 경우 모두 신분확인을 필요로 하거나 현금처럼 금방 찾아서 도망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미주리주 저소득층에 대한 생활보조금을 현금과 교환 가능한 쿠폰에서 기명식 전자결제카드로 전환한 이후 범죄율이 9.8% 감소했다.
탈세는 물론 위조지폐의 위험도 사라진다. 모든 돈은 다 전자시스템으로 추적되기 때문에 세금포탈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실제지폐와 거의 흡사하게 만든 위조지폐 사기도 없어진다.
여신금융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현금사용량이 줄고 전자결제가 활성화되면서 무현금시대가 어느 정도 우리 실생활에 다가왔다”며 “이는 편리함과 더불어 사회 전체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 범죄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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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 해킹 노출·빅브라더 등장… 소외계층 생겨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현금 없는 사회 역시 그늘이 존재한다. 우선 보안사고나 정보유출 등 해킹에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현금이나 통장, 카드로 금융거래를 하는 지금도 해킹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가 된다면 그만큼 해킹의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특히 금융거래에서 생체인증이 대중적으로 사용될 경우 지문이나 홍채가 복사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안업체의 한 관계자는 “비밀번호가 털릴 경우 바꾸면 되지만 지문은 한번 해킹당하면 바꿀 수 없으니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전산망으로 모든 금융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금융사의 전산망이 마비되거나 해킹당할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외계층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인, 어린이 등 현금을 선호하거나 전자거래에 미숙한 계층 또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주민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겪을 것이다. 모바일로 손쉽게 결제와 대출이 가능해지면서 빚의 수렁에 빠지는 젊은층도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신용등급이 낮아 전자카드 발급이 어려운 이들은 거래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우려가 있다.
개개인의 돈 흐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 브라더’의 등장도 무현금시대의 한 단면이다. 누가 어디서 얼마를 카드로 결제했는지 인류의 상업적 거래 전체가 은행의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은행이나 금융중개자 등은 개인의 결제행위에서 수집된 막대한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무현금사회를 빗대 ‘CCTV’로 표현하기도 한다. CCTV가 수많은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지만 반대로 사생활 침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다.
김진우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 계장은 “무현금사회는 비용절감 등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동시에 소외계층 발생과 정보유출 등의 우려도 존재한다”며 “현금 없는 사회라는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기회 요인을 찾아내고 예상되는 위기에 미리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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