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영화판의 ‘두 얼굴’
World News / 원종태 특파원의 China Report
베이징(중국)=원종태 머니투데이 특파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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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투자처인가, 조작이 난무하는 도박판인가.
14억 중국 인구 보너스 효과의 거대한 힘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분야 중 영화 시장만한 곳이 없다. 중국 영화시장에서 수백만명 흥행기록은 명함도 못 내민다. 최소 1000만명 넘게 관객몰이를 해야 연도별 박스오피스 톱 10에 간신히 낄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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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완공 예정인 칭다오 영화단지 |
◆박스오피스 1700억원은 넘어야 10위권
중국 영화 공식 흥행집계 사이트인 차이나박스오피스(CBO)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흥행 1위 쭈어야오지(몬스터 헌트, 이하 한국 개봉 제목)는 24억3952만위안(4370억원)을 벌어들였고, 10위 영화인 시요우지(서유기)도 박스오피스로만 9억5642만위안(1713억원)을 올렸다. 중국의 영화 티켓요금이 평균 70위안 정도이므로 어림잡아도 쭈어야오지가 3485만명이 넘는 관객몰이를 한 것이다. 10위 시요우지도 보수적으로 잡아도 1366만명이 다녀간 셈이다.
올해도 춘절 연휴에 맞춰 개봉한 주성치 감독의 메이런위(미인어)가 33억8301만위안(6059억원)의 박스오피스를 올리며 역대 최고 흥행성적을 갈아치웠다. 이렇다보니 중국 영화시장 박스오피스 규모는 지난해 72억달러로 세계 최대 영화시장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5년새 무려 5배가 증가한 것이다.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영화시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대륙의 영화시장에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 최근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홍콩 최고의 액션배우 견자단이 출연한 ‘엽문3’가 주인공이다. 전편에 이어 5년만에 돌아온 엽문3에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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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시간 매진 ‘유령표’ 조작 논란
지난 6일 오전 0시56분, 후베이성 우한시 도심의 대형영화관 중잉궈지잉청 광위텐허점. 엽문3 영화표가 한 장도 남지 않고 모두 팔렸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시간대였다고 하지만 자정이 넘는 시간대 영화표가 매진되는 것은 흔치 않다. 영화 티켓 가격도 아이맥스 영화보다 비싼 203위안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표는 매진됐지만 정작 객석은 텅 비었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보지도 않을 영화티켓을, 그것도 비인기 시간대만 골라 의도적으로 사들인 것이다.
이전까지 엽문3의 흥행 성적은 놀라웠다. 지난 4일 개봉한 이 영화는 상영 첫날 박스오피스 1억5500만위안을 돌파하나 싶더니 순식간에 3억 위안을 벌어들였다. 중국에서 3월 개봉한 상영작 중 가장 좋은 흥행이었다. 그러나 우한시에서 벌어진 기이한 매진사태로 엽문3의 흥행이 조작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잇따라 또 다른 영화관에서도 늦은 밤이나 아침 이른 시간대에 영화관 맨 앞줄 좌석이나 맨 뒷줄 좌석 전부가 매진됐다는 네티즌 제보가 이어졌다. 더 좋은 좌석을 얼마든지 예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비인기 좌석이 먼저 팔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누가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좌석을 돈 주고 산 것일까. 중국 언론이나 네티즌들은 엽문3의 제작사인 콰이루그룹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돈 내고 돈 먹기 ‘흥행 수익권’도 난무
콰이루그룹은 특히 엽문3 상영에 앞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2억 위안 규모의 ‘흥행 수익권’을 팔았다. 흥행 수익권이란 인기몰이가 예상되는 영화의 흥행 수익권에 미리 투자한 뒤 실제 흥행에 성공하면 고수익을 받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 같은 흥행 수익권 거래는 흔한 장면이다.
엽문3 투자 조건은 이랬다. 투자자들은 최소 5만위안부터 투자할 수 있는데 투자기간은 최장 9개월이다. 제작사는 이 기간 기본 수익률로 투자자들에게 10%를 제시했다. 추가 흥행 성적에 따라 보너스 수익률도 덤으로 줬다. 보너스 수익률은 엽문3의 경우 흥행 수입이 총 8억위안을 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8억위안을 넘지 못하면 수익률은 당초 제시한 10%가 전부다. 그러나 8억위안을 넘으면 쏠쏠한 보너스 수익률을 챙길 수 있다. 베이징청년보에 따르면 8억위안에서 1억위안을 초과할 때마다 보너스 수익률은 1%p씩 늘어난다. 11억위안의 흥행수입을 달성했다면 수익률은 4%p가 더 붙어 13%가 되는 식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흥행 수익권에 투자한 스팡홀딩스와 선카이구펀 같은 기업들이 하나 같이 콰이루그룹과 연관이 많다는 점이다. 선카이구펀은 콰이루그룹의 계열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흥행 수익권이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간 것일뿐 모든 이익은 콰이루그룹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일부에서는 선카이구펀은 선전증시에, 스팡홀딩스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종목으로 엽문3의 인기를 업고 주가 상승을 노렸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 엽문3 개봉 당 흥행 성적이 꽤 좋은 것으로 알려지며 스팡홀딩스 주가는 22% 올랐고 션카이구펀도 6.5% 상승했다.
◆조작, 조작, 또 조작…
사실 중국에서 영화시장은 금융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서 지난해 제작된 영화는 686편에 달한다. 거의 매일 신작영화가 나오는 셈으로 금융자본의 힘을 얻지 못하면 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영화용어를 증시용어에 빗대 부르는 것이 유행할 정도다. 배우는 ‘재료’로 부르며, 관객은 ‘개인투자자’, 영화평론가는 ‘애널리스트’로 통한다. 영화 상영을 ‘IPO(기업상장)’라고 하는가 하면 흥행 성적은 ‘주가 추이’로 부르기도 한다. 예술영화는 ‘창업판’(차스닥), 상업영화는 ‘메인보드’로 꼽힌다.
엽문3 제작사 콰이루그룹은 흥행 조작설이 언론에 대거 다뤄지자 “엽문3는 뛰어난 영화로 유령표 같은 흥행 조작은 필요 없다”며 “이는 정당하지 않은 수익을 노리는 세력의 행동이지 콰이루그룹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콰이루그룹의 이 해명조차 조작으로 드러났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엽문3’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조사에 나서 이 영화가 7600회 이상 거짓 상영됐고, 이를 통한 허위 티켓 수입만 3200만위안(약 57억45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광전총국은 이에 따라 엽문3 배급사와 티켓 조작에 가담한 영화관 등을 제재 조치했다.
◆성장의 이면 '통계조작', 中 경제 ‘두 얼굴’
그러나 영화계 안팎에서 이 같은 처벌은 솜방망이라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근본적으로 중국 영화의 흥행조작이 생각보다 너무 쉽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중국에서는 영화 흥행수익에서 영화 전문기금 5%와 영업세 3.3%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을 영화관과 제작사가 43대 57로 나눠갖는 구조다. 마음만 먹으면 100위안의 흥행 수입을 조작하는데 8.3위안만 쓰면 된다. 이 비용도 단순히 버리는 차원이 아니다. 박스오피스 기록을 부풀리면 관객몰이에 성공할 수 있고 유료관객은 더 많이 오게 돼 있다.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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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시장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엽문3는 3월23일 현재 7억9363억위안의 박스오피스로 버젓이 올해 흥행 순위 7위를 달렸다.
무궁무진한 성장성으로 흥행 수익권까지 도입한 중국 영화시장. 그러나 그 속의 무수한 허점과 통계 조작은 14억 중국 경제의 두 얼굴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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