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포도송이' 기다리는 금융권
성승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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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재형저축’, ‘IRP’(개인형 퇴직연금).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낯이 익은 금융상품이다. 이 상품들은 크게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출시됐고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과당경쟁 논란을 불러온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금융권에선 과당경쟁 논란이 심심찮게 불거졌다. 기업대출 경쟁이 뜨거웠고 소비가 늘면서 신용대출 경쟁도 치열했다. 너도나도 외형확장 경쟁에 돌입해 금융당국이 교통정리에 나서기도 했다. 돈이 제대로 순환해 고금리 특판도 잇따랐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연 4~5%대의 예·적금 대신 펀드나 주식 혹은 부동산투자에 손을 뻗었다. 당시엔 그만큼 투자처가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정반대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금융권 과당경쟁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우리은행 패키지 등 금융권에 매물이 나와도 대형금융사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기업·신용대출은 한계에 이르러 이젠 대출 옥죄기에 나섰다. 예·적금 금리는 연 1~2%대 수준인데 이마저도 은행에서 제시한 조건을 충족해야 그나마 제대로 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른바 ‘돈맥경화’다.
과당경쟁은 세제혜택상품이 출시될 때 불거졌다. 금융권은 자체 사업을 강화하기보단 정부가 주는 먹잇감에 더 집중했다. 2013년 초 정부가 재형저축을 도입한다고 예고하자 금융권에서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고객유치 경쟁을 벌였다. 비과세상품이며 상대적으로 이자가 높아 고객의 관심이 높을 것으로 판단한 것.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당시 은행권은 가입자가 9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고작 189만좌에 그쳤다.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ISA 가입계좌 수는 개시 첫날인 3월14일 32만2990좌를 기록했다. 이후 둘째날 11만1428좌, 셋째날 8만1005좌, 넷째날 7만858좌 등 가입 건수가 계속 하락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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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이 금융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포도밭에서 포도송이가 떨어지기만 기다린다면 결국 되돌아오는 건 굶주림뿐이다. 동물원의 맹수처럼 정부가 던진 먹잇감을 서로 먹겠다고 싸우지 말고 금융권 스스로 차별화된 금융상품을 개발해야 할 때다. 돈이 돌고 금융이 활성화되며 고객의 자산도 불리는 선순환 방식의 과당경쟁만이 이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고객은 ‘바보’가 아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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