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커진다는 건 오너, 주주, 직원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에게 성장은 곧 이윤 확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이 달갑지만은 않은 기업도 있다. 유망 중소·중견기업들이 속한 코스닥시장 대표 3인방(하림·셀트리온·카카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최근 자산규모가 5조원을 넘어서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에 새롭게 포함됐다. 삼성·현대자동차그룹 등 자산규모가 200조원이 넘는 굴지의 글로벌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규제 적용 대상이 된 것. 재계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조정’ 목소리에 탄력이 붙고 있다.


(왼쪽부터)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왼쪽부터)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성장이 불편한 코스닥 대표 3인방

지난 3일 공정위가 65개 대기업집단 현황을 발표한 것을 놓고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하다. 올해에는 ▲SH공사(계열사 설립) ▲한국투자금융(비금융사 인수) ▲금호석유화학(계열 분리) ▲하림(인수·합병) ▲셀트리온(보유주식 가치 상승) ▲카카오(인수·합병) 등 6개사가 새롭게 지정됐고 ▲홈플러스(금융전업집단 편입) ▲대성(계열사 매각 등으로 자산 감소) 등 2개사가 제외되며 전년(61개)보다 4개사가 늘었다.


이중 논란의 중심에 선 기업집단은 하림·셀트리온·카카오 등 3곳이다. 이들은 각각 농축산기업, 바이오벤처, IT벤처 출신 중 최초로 대기업집단으로 선정됐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중소·중견기업일 때 받던 각종 지원이 사라지고 계열사 간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 등이 금지된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할 때 받아야 하는 신규 규제의 수는 공정거래법·상법 등 20개 법률에 걸쳐 35개에 이른다.

이제 갓 자산규모 5조원이라는 기준을 넘긴 기업집단이 삼성·현대차 등 글로벌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된 셈이다. 상위 1~3위 집단인 삼성의 자산총액은 348조2000억원, 현대차는 209조7000억원, 한국전력공사는 208조3000억원으로 모두 200조원이 넘는다.


1위 삼성과 코스닥 대표 3인방의 자산총액을 비교하면 하림(9조9000억원)은 35분의1, 셀트리온(5조9000억원)은 59분의1, 카카오(5조1000억원)는 68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대기업집단 내에서도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 간 편차가 상당히 큰 셈이다. 

당장 하림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회사는 김홍국 회장이 1986년 닭고기 가공업에 중점을 둔 ㈜하림을 설립한 이후 국내 최대 육가공업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천하제일사료·팬오션 인수, NS홈쇼핑 설립 등으로 사업규모를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축산업과 식품가공, 유통 등을 통합 운영하게 된 하림은 총 58개에 이르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수직적 계열사 관리를 위해 총수를 중심으로 한 복잡한 지배구조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계열사가 총수와 친족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 20% 이상)인 기업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와 상호출자 금지 등의 조항에 걸릴 가능성이 짙다.
또한 비상장 계열사의 중요사항 공시 등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별도의 전문인력 채용도 필요해 전반적 사업·지배구조 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림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지정에 따른 대책을 내부적으로 활발히 논의 중”이라며 “기본적으로 공정위 가이드라인을 따르겠지만 예외규정도 있기 때문에 축산업이라는 업계의 특성이 감안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지배구조 재편 불가피

셀트리온의 상황도 하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셀트리온은 서정진 회장이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한 이후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제품 생산과 판매를 이원화해 사업 규모(계열사 8개)를 키웠다.

기본적으로 셀트리온이 생산을 담당하고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판매와 수출을 전담하며 총수인 서 회장을 중심으로 계열사 지분이 조정됐다. 서 회장의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율은 53.85%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선 내부거래 규모를 200억원 이하로 낮추거나 지분을 팔아야 한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유예기간(2년) 동안 공정위 지침에 하나씩 맞춰 나가겠지만 당장 기존 사업구조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다만 바이오산업 특성상 일감 몰아주기로 비칠 우려가 있는 부분은 고려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1995년 출범한 포털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2014년 카카오와 합병하면서 당시 2172억원이던 자산이 2조7680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어 올해 초 로엔엔터테인먼트를 1조8700억원에 인수하며 자산총액이 5조1000억원(계열사 45개)으로 대기업집단 기준 요건을 넘어섰다.

당장 카카오는 연내 출범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사업(카카오뱅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지분(10%)과 의결권(4%)을 제한하는 금산분리 조항 개정을 논의 중이지만 4·13총선을 이유로 기약 없이 논의가 중단된 데다 대기업집단 지정으로 법이 개정되더라도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해주는 법안을 논의 중이지만 대기업집단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선 대기업집단도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금산분리 원칙을 제외하는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에 논의 중인 법안도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더 강력한 금산분리 완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더욱 낮다.   

카카오 관계자는 “기존에 공표한 사업들은 현행법에 맞춰 준비한 것으로 큰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준비할 새로운 사업은 (대기업집단 지정으로) 일정 부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IT업계에선 의사결정 속도가 중요한데 다양한 절차를 준수하는 과정에서 결정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2008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된 이후 8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재계 안팎에서 경제규모가 커진 것을 감안해 자산총액 기준을 7조~10조원으로 상향하거나 대기업집단 간에도 규모에 따라 차등 규제를 두자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공정위는 요지부동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2008년과 경제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대기업집단 관리 효율성 측면에서 지정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안인 만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데 아직은 조정 여부나 방법, 시기 등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