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포커스] '규제 먹구름' 인터넷은행 기상도
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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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새로운 은행의 탄생을 예고했던 인터넷전문은행에 먹구름이 꼈다. 여당 의원들이 주도한 은행법 일부 개정안이 회기 내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카카오뱅크·K뱅크 등 ICT(정보통신기술)기업의 인터넷은행 출범이 어려워졌다.
최근 인터넷은행은 컨소시엄에 참여한 금융사가 ICT기업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금융지주가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가 하면 은행이 인터넷은행의 자체 법인을 설립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결국 금융당국이 ‘ICT기업으로 금융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취지와 달리 금융사를 앞세운 ‘은행 안에 인터넷은행’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떠난 카카오뱅크
카카오는 ICT기업 주도의 인터넷은행 출범이 어려워진 것으로 판단하고 카카오뱅크사업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최근 카카오는 자체 금융서비스인 카카오페이 송금서비스를 확대·출시하면서 카카오뱅크와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송금은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공인인증서나 OTP(일회용 비밀번호), 계좌번호 없이 지인에게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다. 카카오뱅크와 무관하게 신한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과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은행을 품지 않더라도 자체 금융서비스를 펼칠 수 있는 경쟁력을 입증한 셈이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활용한 카카오페이, 뱅크월렛카카오 등 핀테크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카카오뱅크는 850만명에 달하는 카카오톡 가입자의 포섭이 어려워졌다. 다만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의 자회사로 편입돼 금융지주 산하의 전통적인 금융사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현재 카카오뱅크의 지분은 한국금융이 54%, 카카오와 KB국민은행이 10%씩 보유 중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카카오페이는 카카오의 자체적인 핀테크브랜드로 카카오뱅크 및 은행법 개정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사업”이라며 “전산시스템 구축, 인력채용, 사무실 마련 등 본인가 관련 업무를 원활히 진행하고 있으며 카카오는 플랫폼사업자로 시너지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증권 빠진 K뱅크
K뱅크는 카카오뱅크보다 악조건이 더 겹쳤다. KB금융그룹에 인수된 현대증권이 K뱅크의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알려져 K뱅크는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주주가 필요해졌다.
KB금융 관계자는 “카카오뱅크의 지분이 있어 한쪽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대증권이 지닌 K뱅크 지분 매각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8%의 지분을 보유한 KT가 K뱅크의 추가지분을 확보하면 좋겠지만 역시 은산분리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인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는 의결권이 있는 지분의 경우 4%(비의결권 주식 포함 10%)로 제한돼 있다.
K뱅크는 KT와 우리은행, 현대증권 등 21개사가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증권의 자리를 지분 10%를 보유한 우리은행이 채워주길 바라는 눈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K뱅크에선 우리은행이 전산시스템 전반을 맡은 총괄사업자(PM)에서 빠지면서 K뱅크에 파견된 우리은행과 IT자회사 우리FIS(에프아이에스)의 인력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과 우리FIS는 지난해 인터넷은행 예비인가부터 K뱅크 측에 인터넷은행 IT시스템 구축을 지원했다. 지난 1월 우리은행과 우리FIS는 인력 20여명을 선발해 K뱅크에 투입했고 우리FIS는 7명 안팎의 인원을 구성해 ‘K뱅크추진단’을 꾸렸다. 김석기 우리FIS 부장이 K뱅크 최고정보책임자(CIO)로 IT시스템 구축을 도왔다.
그러나 K뱅크는 우리은행과 우리FIS에 주전산을 맡길 것이란 기대와 달리 서버 및 인프라 구축부문만 우리은행에 맡겼다. 나머지 시스템 설치, 시스템 이행, 데이터베이스 설계, 미들웨어, 보안, 테스트부문은 뱅크웨어글로벌, KTDS, 이니텍 등의 컨소시엄 관계사에 맡겼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K뱅크에 파견된 직원이 돌아올지 결정되지 않았다”며 “우리은행은 우선 자체 모바일뱅크인 위비뱅크를 확대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은행 별도법인 가능성
일각에선 ICT기업의 인터넷은행 출범이 어려워진 상황에 처하면서 은행들이 자체 모바일뱅크를 별도법인으로 설립해 인터넷은행으로 출범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은행들이 카드를 분사한 것처럼 은행의 모바일뱅크를 인터넷은행으로 독립시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최근 우리은행(위비뱅크), KEB하나은행(원큐뱅크), 신한은행(써니뱅크), 기업은행(i-ONE뱅크) 등은 모바일뱅크 관련 사업부서를 확대하고 인터넷뱅킹 및 스마트폰뱅킹을 개편했다. 경쟁 은행들에 비해 ‘모바일뱅크’ 전략속도가 늦다는 평가를 받은 KB국민은행도 인터넷뱅킹 및 스마트폰뱅킹 개편사업에 본격착수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또 다른 인터넷은행을 계열사로 두는 것은 금융지주법, 은행법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단독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논하긴 이르다”며 “다만 카드사가 은행 내에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던 것처럼 모바일뱅크가 인터넷은행으로 출범하면 시중은행에 비해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고 사업을 확대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인터넷은행은 컨소시엄에 참여한 금융사가 ICT기업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금융지주가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가 하면 은행이 인터넷은행의 자체 법인을 설립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결국 금융당국이 ‘ICT기업으로 금융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취지와 달리 금융사를 앞세운 ‘은행 안에 인터넷은행’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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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가 입주할 카카오 판교오피스. /사진=뉴스1 DB |
◆카카오 떠난 카카오뱅크
카카오는 ICT기업 주도의 인터넷은행 출범이 어려워진 것으로 판단하고 카카오뱅크사업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최근 카카오는 자체 금융서비스인 카카오페이 송금서비스를 확대·출시하면서 카카오뱅크와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송금은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공인인증서나 OTP(일회용 비밀번호), 계좌번호 없이 지인에게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다. 카카오뱅크와 무관하게 신한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과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은행을 품지 않더라도 자체 금융서비스를 펼칠 수 있는 경쟁력을 입증한 셈이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활용한 카카오페이, 뱅크월렛카카오 등 핀테크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카카오뱅크는 850만명에 달하는 카카오톡 가입자의 포섭이 어려워졌다. 다만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의 자회사로 편입돼 금융지주 산하의 전통적인 금융사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현재 카카오뱅크의 지분은 한국금융이 54%, 카카오와 KB국민은행이 10%씩 보유 중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카카오페이는 카카오의 자체적인 핀테크브랜드로 카카오뱅크 및 은행법 개정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사업”이라며 “전산시스템 구축, 인력채용, 사무실 마련 등 본인가 관련 업무를 원활히 진행하고 있으며 카카오는 플랫폼사업자로 시너지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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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뱅크 준비법인 사옥. /사진제공=KT |
◆현대증권 빠진 K뱅크
K뱅크는 카카오뱅크보다 악조건이 더 겹쳤다. KB금융그룹에 인수된 현대증권이 K뱅크의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알려져 K뱅크는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주주가 필요해졌다.
KB금융 관계자는 “카카오뱅크의 지분이 있어 한쪽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대증권이 지닌 K뱅크 지분 매각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8%의 지분을 보유한 KT가 K뱅크의 추가지분을 확보하면 좋겠지만 역시 은산분리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인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는 의결권이 있는 지분의 경우 4%(비의결권 주식 포함 10%)로 제한돼 있다.
K뱅크는 KT와 우리은행, 현대증권 등 21개사가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증권의 자리를 지분 10%를 보유한 우리은행이 채워주길 바라는 눈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K뱅크에선 우리은행이 전산시스템 전반을 맡은 총괄사업자(PM)에서 빠지면서 K뱅크에 파견된 우리은행과 IT자회사 우리FIS(에프아이에스)의 인력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과 우리FIS는 지난해 인터넷은행 예비인가부터 K뱅크 측에 인터넷은행 IT시스템 구축을 지원했다. 지난 1월 우리은행과 우리FIS는 인력 20여명을 선발해 K뱅크에 투입했고 우리FIS는 7명 안팎의 인원을 구성해 ‘K뱅크추진단’을 꾸렸다. 김석기 우리FIS 부장이 K뱅크 최고정보책임자(CIO)로 IT시스템 구축을 도왔다.
그러나 K뱅크는 우리은행과 우리FIS에 주전산을 맡길 것이란 기대와 달리 서버 및 인프라 구축부문만 우리은행에 맡겼다. 나머지 시스템 설치, 시스템 이행, 데이터베이스 설계, 미들웨어, 보안, 테스트부문은 뱅크웨어글로벌, KTDS, 이니텍 등의 컨소시엄 관계사에 맡겼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K뱅크에 파견된 직원이 돌아올지 결정되지 않았다”며 “우리은행은 우선 자체 모바일뱅크인 위비뱅크를 확대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은행 별도법인 가능성
일각에선 ICT기업의 인터넷은행 출범이 어려워진 상황에 처하면서 은행들이 자체 모바일뱅크를 별도법인으로 설립해 인터넷은행으로 출범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은행들이 카드를 분사한 것처럼 은행의 모바일뱅크를 인터넷은행으로 독립시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최근 우리은행(위비뱅크), KEB하나은행(원큐뱅크), 신한은행(써니뱅크), 기업은행(i-ONE뱅크) 등은 모바일뱅크 관련 사업부서를 확대하고 인터넷뱅킹 및 스마트폰뱅킹을 개편했다. 경쟁 은행들에 비해 ‘모바일뱅크’ 전략속도가 늦다는 평가를 받은 KB국민은행도 인터넷뱅킹 및 스마트폰뱅킹 개편사업에 본격착수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또 다른 인터넷은행을 계열사로 두는 것은 금융지주법, 은행법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단독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논하긴 이르다”며 “다만 카드사가 은행 내에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던 것처럼 모바일뱅크가 인터넷은행으로 출범하면 시중은행에 비해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고 사업을 확대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BNP파리바의 인터넷은행 ‘헬로뱅크’
세계 금융시장에선 금융그룹이 인터넷은행을 보유한 사례가 있다. 프랑스금융그룹 BNP파리바의 모바일은행 ‘헬로뱅크’(Hello bank)는 100여명의 행원이 일하고 있다.
헬로뱅크는 개인의 휴대전화번호가 계좌번호로 대체되는 등 모바일상의 서비스에 중점을 둬 2013년부터 프랑스, 벨기에 등 4개 유럽 국가에서 약 8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BNP파리바 순이익에서 헬로뱅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하지만 전체 은행 고객 가운데 헬로뱅크 사용자는 40%에 달한다. 현재 약 18만명의 고객을 보유 중이며 2017년까지 50만명 유치가 목표다.
세계 금융시장에선 금융그룹이 인터넷은행을 보유한 사례가 있다. 프랑스금융그룹 BNP파리바의 모바일은행 ‘헬로뱅크’(Hello bank)는 100여명의 행원이 일하고 있다.
헬로뱅크는 개인의 휴대전화번호가 계좌번호로 대체되는 등 모바일상의 서비스에 중점을 둬 2013년부터 프랑스, 벨기에 등 4개 유럽 국가에서 약 8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BNP파리바 순이익에서 헬로뱅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하지만 전체 은행 고객 가운데 헬로뱅크 사용자는 40%에 달한다. 현재 약 18만명의 고객을 보유 중이며 2017년까지 50만명 유치가 목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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