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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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짜리도 상관없어요. 하나만 가입해주세요."


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된 지 두달이 넘은 가운데 은행원들은 여전히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이처럼 읍소하고 있다. 본사가 각 지점에 비공식적으로 제시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지점 소속 행원들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원들은 ISA 계좌 실적 압박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본사에서 ISA 계좌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하고 있어서다.


은행권은 당초 본점 행원 1인당 50개, 영업점 1인당 100개 이상씩 ISA 계좌를 유치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행원의 반발이 심해지자 이를 재조정했다. 실제 한 은행원의 가족이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금융당국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은행은 공식적으로는 1인당 ISA 계좌 유치목표를 정하지 않았지만 많이 가입한 영업점에 인사고과를 비롯해 우대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사실상 목표 할당량을 정하지 않았지만 실적 압박은 여전한 셈이다.


이로 인해 다양한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은행은 영업점 실적 평가 시 직원과 가족(부모·배우자·자녀 등 직계 존·비속) 명의의 실적은 제외한다. 자폭 관행을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지침 때문이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선 본인을 비롯해 가족과 친척들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평소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 읍소하는 행원이 늘고 있다. A은행 행원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지인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촉해 ISA 가입을 요청하고 있다"며 "소문을 들은 일부 동창은 내 전화를 피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B은행 직원은 "초기엔 관심을 기울인 고객이 많았는데 지금은 문의 건수가 미미한 상태"라며 "전체 지점에서 우리 영업점의 ISA 계좌 가입 규모가 하위권 수준이다. 따라서 지점장을 비롯해 행원들이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고객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사실 지점 내 분위기는 말도 못할 정도로 침체돼 있다"고 토로했다.

C은행 관계자는 "3~4월에 비하면 (실적) 압박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부담은 여전하다"며 "대고객 마케팅이 아니라 대지인 마케팅에 주력하는 형국"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쟁은행과 서로 가입해주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다. A은행 관계자는 "평소 친분이 있는 경쟁은행 행원과 맞교환하듯 ISA 계좌에 가입했다"며 "일부 부서는 아예 단체로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불완전 판매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민병두 의원실에 제출한 ISA 금융사 가입금액별 계좌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14일부터 4월15일까지 136만2000여개의 ISA 계좌가 판매됐다. 그러나 이중 74%가 가입금액 1만원 미만인 깡통계좌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00원 이하의 초소액 계좌도 2.0%(2만8100여개)에 달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과당경쟁으로 무늬만 ISA 계좌인 깡통계좌가 속출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고객은 물론 은행까지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