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희망가, 그 서른네번째 울림
의사와 가수. 얼핏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와 노래로 생명을 살리는 가수가 만났다면? 지난 21일 인천 송도 트라이볼 야외무대서 펼쳐진 ‘생명존중 콘서트’가 그 역사적인 현장이다. 주인공은 가수 김재희와 김영모 인하대병원장.

‘사랑할수록’을 부르며 90년대 부활을 최고 그룹으로 이끌었던 김재희는 6년 전부터 자살 예방과 아동학대 방지를 외치며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생명존중을 내건 자선콘서트를 연 것.


그러나 기업이나 지자체의 든든한 후원없이 혈혈단신으로 콘서트를 열다 보니 노래연습부터 장소선정, 진행, 게스트 섭외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자선콘서트여서 공연 수익금도 전무했다. 

그런 그에게 인하대병원이 손을 내밀었다. 개원 20주년 기념행사를 생명존중 콘서트로 대체하면서다. 인천의 대표병원으로 자리매김한 인하대병원으로서는 20주년에 걸맞은 큰 행사를 치를 법도 했을 터. 하지만 수소문을 통해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가 자선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에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았다. 


[이사람] 희망가, 그 서른네번째 울림
“지금껏 개원 기념일은 병원 내부행사로 진행해왔죠. 그런데 올해는 20주년을 맞았고 뭔가 뜻깊은 기념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생명존중 콘서트를 여는 김재희씨를 알게 됐어요. 좋은 취지에 공감했고 지역사회에도 보람된 일인 것 같아 기념식에 들어갈 예산을 기꺼이 콘서트를 여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김영모 병원장의 선택은 옳았다. 생명존중 콘서트는 병원 임직원들의 공감을 얻었고 인천시민과 송도를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에 인간존엄의 소중함을 새기게 했다. 거대한 20돌 기념식은 없었지만 자살, 아동학대 등 생명 경시풍조로 신음하는 우리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사실 김재희에게 생명존중 콘서트는 가슴아픈 사연을 품고 있다. 앨범 100만장이 팔린 ‘사랑할수록’은 처음엔 그의 형 김재기가 불렀던 노래. 불의의 교통사고로 형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이 형을 대신해 그 노래를 불렀고 가수가 됐다. 하지만 형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절친이던 배우 겸 가수 최진영과 그의 누나 최진실, 그리고 ‘투투’로 활동하던 가수 김지훈까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김재희의 곁을 떠났다. 

“주위에 자살한 사람이 많다 보니 죽음의 고통 속에서 늘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등산을 시작했죠. 어느날 히말라야를 올라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살려줘’라고 소리쳤지 뭡니까? 그때 느꼈어요. 너무 힘들면 오히려 삶의 욕망이 더 생긴다는 것을…. 그 깨달음 이후 죽음에 가까이 가고자 한 사람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21일 인천 송도 트라이볼 야외무대서 펼쳐진 ‘생명존중 콘서트’. 이 콘서트는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가 주관한 자선행사. 인하대병원이 개원 20주년을 맞아 콘서트를 후원했다. /사진제공=인하대병원
지난 21일 인천 송도 트라이볼 야외무대서 펼쳐진 ‘생명존중 콘서트’. 이 콘서트는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가 주관한 자선행사. 인하대병원이 개원 20주년을 맞아 콘서트를 후원했다. /사진제공=인하대병원
생명존중 콘서트는 초기 ‘자살예방 콘서트’로 불렸다. 그도 그럴 게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친구들을 자살로 떠나보내야 했던 김재희는 그 아픔을 지난 3년 동안 총 33회에 걸친 생명존중 콘서트로 달래왔다. 송도 콘서트는 그 서른네번째 울림이다.

이번 콘서트를 하면서 크게 바뀐 게 있다면 인하대병원의 전폭적인 지원 외에 동료가수와 뮤지컬배우, 합창단 등 생명존중을 함께 외치겠다는 ‘친구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자살예방의 메시지를 담은 자작곡을 처음 소개한 것도 김재희로선 가슴벅찬 일.


'너와 내가 놓치면 떨어진다. 끈을 계속 갖고 가야 한다. 시작은 대화다'.

그가 가슴으로 쓴 자작곡 ‘끈’에 나오는 가사다. 부활의 4대 보컬로 이름을 날렸던 김재희. 생명존중을 향한 그의 노래는 이제 우리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소중한 끈이 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