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증권사 '우발채무' 심상찮다
장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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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자산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사업에 너도나도 나서며 우발채무를 키웠기 때문이다. 우발채무가 일정수준을 넘어선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이 침체로 돌아서면 금융투자업계 전반적으로 위기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금융당국은 우발채무가 과도한 증권사를 중심으로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 저축은행사태 재현될까 우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증권업계의 채무보증규모는 24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19조9000억원보다 4조원(22%) 이상 증가했다. 2011년 8조4000억원에서 3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채무보증액이 늘어난 원인은 증권사들이 장기 증시침체로 늘어나지 않는 주식매매수수료 수익을 대체하기 위해 부동산 PF대출 보증에 나섰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신용등급이 낮아 많은 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는 시행사나 건설사의 신용을 보강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영업활동을 한 것이다.
부동산 PF 보증수수료는 증권사에 쏠쏠한 수익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증권사들은 회사채를 발행할 때 평균 0.04%의 수수료를 받았다. 하지만 부동산 PF와 같은 구조화증권의 수수료율은 1~3%대에 육박한다. 같은 규모라면 1건만 성사시켜도 최소 회사채를 25번 발행한 것과 같은 수익을 얻는다.
실제 채무보증액이 급증한 지난해의 경우 전체 증권사의 기업금융(IB) 관련 수수료가 2014년 9283억원에서 32.4% 증가한 1조2294억원을 기록했다. 증권사의 수수료수익 중 IB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16.2%에서 지난해 3분기 말 29.1%로 늘어났다.
하지만 채무보증은 잠재적 빚으로 간주되는 우발채무의 주된 요인이다. 우발채무는 현재 빚이 아니지만 미래에 특정 조건이 되면 발생할 수 있는 채무다. 예컨대 부동산경기가 나빠져 미분양이 속출해 분양대금으로 부동산 PF대출을 갚으려고 했던 건설사가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증권사가 보증을 선 조건에 따라 일정부분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발채무의 증가는 증권사 재무상태를 불안하게 만든다.
과거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도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였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이어지던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PF는 저축은행의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 PF가 부실화될 위험도 적었고 높은 수수료도 챙길 수 있었다. 그 결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여신규모는 2007년 상반기 8조3000억원에서 2010년 말 17조4000억원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부동산경기가 위축되면서 저축은행의 영화는 끝을 맺었다. 부동산 PF 자산의 부실은 급속도로 진행됐고 불과 몇년 새 30여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나오는 우려도 비슷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분양주택 가구 수는 2014년에 비해 50% 가까이 증가했다.
안나영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주요 증권사의 우발채무 중 부동산 PF 및 부동산담보대출확약 등 부동산 관련 비중이 68%에 달한다”며 “부동산업황이 저하되면 대규모 우발채무 현실화로 유동성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금감원 조사에 증권사 ‘긴장’
증권사의 우발채무가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 30일 금융감독원은 증권사가 부담하는 채무보증의 양적·질적 위험수준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우발채무비율이 높은 증권사를 위주로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증권사가 채무보증의 계약과 사후관리를 적절하게 했는지, 여신자산에 과도한 쏠림현상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또 자산건전성 분류와 충당금 적립은 일정기준으로 이뤄졌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메리츠종금증권과 대신증권을 시작으로 우발채무 위험이 높은 증권사를 순차적으로 검사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에서 증권사 건전성 관리에 문제가 있거나 위법사실이 나오면 제도 개선을 요구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조사로 우발채무비율이 높은 증권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비율이 100%를 넘는 증권사는 메리츠종금증권, 교보증권,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우발채무가 4조3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비중도 230%다. 우발채무가 현실화되면 이를 막기 위해 자기자본의 2배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감독당국의 경고로 지난해 말 5조원을 넘나들던 수준에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전체 증권사 중 가장 높다.
특히 메리츠종금증권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과 같은 유동화증권의 매입보증을 서는 등 유동성공여보다 직접 부동산 PF의 보증을 서는 신용공여에 치중했다. 기초자산의 신용도 측면에서 유동성공여보다 신용공여의 위험이 더 높다. 또 HMC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도 우발채무 중 신용공여비중이 높은 축에 속한다. 지난해 말 기준 HMC와 하이투자증권의 신용공여성 우발채무비율은 80%를 넘는다. 우발채무가 실제 발생하면 손실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큰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자구안으로 하이투자증권의 매각방안을 내놓은 만큼 하이투자증권의 재무건전성 관리가 더 시급하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한 이후 총 1조11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현재 장부가는 8200억원 수준이다. 투자손실을 메꾸기 위해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발채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과도한 우발채무 등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기업가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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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
◆ 저축은행사태 재현될까 우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증권업계의 채무보증규모는 24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19조9000억원보다 4조원(22%) 이상 증가했다. 2011년 8조4000억원에서 3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채무보증액이 늘어난 원인은 증권사들이 장기 증시침체로 늘어나지 않는 주식매매수수료 수익을 대체하기 위해 부동산 PF대출 보증에 나섰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신용등급이 낮아 많은 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는 시행사나 건설사의 신용을 보강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영업활동을 한 것이다.
부동산 PF 보증수수료는 증권사에 쏠쏠한 수익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증권사들은 회사채를 발행할 때 평균 0.04%의 수수료를 받았다. 하지만 부동산 PF와 같은 구조화증권의 수수료율은 1~3%대에 육박한다. 같은 규모라면 1건만 성사시켜도 최소 회사채를 25번 발행한 것과 같은 수익을 얻는다.
실제 채무보증액이 급증한 지난해의 경우 전체 증권사의 기업금융(IB) 관련 수수료가 2014년 9283억원에서 32.4% 증가한 1조2294억원을 기록했다. 증권사의 수수료수익 중 IB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16.2%에서 지난해 3분기 말 29.1%로 늘어났다.
하지만 채무보증은 잠재적 빚으로 간주되는 우발채무의 주된 요인이다. 우발채무는 현재 빚이 아니지만 미래에 특정 조건이 되면 발생할 수 있는 채무다. 예컨대 부동산경기가 나빠져 미분양이 속출해 분양대금으로 부동산 PF대출을 갚으려고 했던 건설사가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증권사가 보증을 선 조건에 따라 일정부분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발채무의 증가는 증권사 재무상태를 불안하게 만든다.
과거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도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였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이어지던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PF는 저축은행의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 PF가 부실화될 위험도 적었고 높은 수수료도 챙길 수 있었다. 그 결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여신규모는 2007년 상반기 8조3000억원에서 2010년 말 17조4000억원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부동산경기가 위축되면서 저축은행의 영화는 끝을 맺었다. 부동산 PF 자산의 부실은 급속도로 진행됐고 불과 몇년 새 30여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나오는 우려도 비슷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분양주택 가구 수는 2014년에 비해 50% 가까이 증가했다.
안나영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주요 증권사의 우발채무 중 부동산 PF 및 부동산담보대출확약 등 부동산 관련 비중이 68%에 달한다”며 “부동산업황이 저하되면 대규모 우발채무 현실화로 유동성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금감원 조사에 증권사 ‘긴장’
증권사의 우발채무가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 30일 금융감독원은 증권사가 부담하는 채무보증의 양적·질적 위험수준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우발채무비율이 높은 증권사를 위주로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증권사가 채무보증의 계약과 사후관리를 적절하게 했는지, 여신자산에 과도한 쏠림현상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또 자산건전성 분류와 충당금 적립은 일정기준으로 이뤄졌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메리츠종금증권과 대신증권을 시작으로 우발채무 위험이 높은 증권사를 순차적으로 검사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에서 증권사 건전성 관리에 문제가 있거나 위법사실이 나오면 제도 개선을 요구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조사로 우발채무비율이 높은 증권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비율이 100%를 넘는 증권사는 메리츠종금증권, 교보증권,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우발채무가 4조3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비중도 230%다. 우발채무가 현실화되면 이를 막기 위해 자기자본의 2배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감독당국의 경고로 지난해 말 5조원을 넘나들던 수준에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전체 증권사 중 가장 높다.
특히 메리츠종금증권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과 같은 유동화증권의 매입보증을 서는 등 유동성공여보다 직접 부동산 PF의 보증을 서는 신용공여에 치중했다. 기초자산의 신용도 측면에서 유동성공여보다 신용공여의 위험이 더 높다. 또 HMC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도 우발채무 중 신용공여비중이 높은 축에 속한다. 지난해 말 기준 HMC와 하이투자증권의 신용공여성 우발채무비율은 80%를 넘는다. 우발채무가 실제 발생하면 손실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큰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자구안으로 하이투자증권의 매각방안을 내놓은 만큼 하이투자증권의 재무건전성 관리가 더 시급하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한 이후 총 1조11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현재 장부가는 8200억원 수준이다. 투자손실을 메꾸기 위해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발채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과도한 우발채무 등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기업가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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