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전체 주택임차거래시장의 월세 비중이 46%로 5년 전보다 13.5%포인트나 올랐다. 최근 이어진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들이 전세를 꺼린 탓이다. 특히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의 월세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고 아파트 월세 비중 역시 최초로 40%대 고지를 밟았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자금으로 더 이상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워지자 월세로 돌파구를 찾은 반면 세입자들은 앉아서 코 베이며 주거비 부담 증가에 한숨 짓고 있다.


저금리 나비효과… 전세, 씨가 말랐다 


전셋집 하나 마련하는 게 직장인들의 첫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다. 전셋집 구하는 걸 내 집 마련을 위한 전초전으로 여기며 여러번 이사를 다녀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의 씨가 말랐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월세로 늘어난 주거비 부담은 소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최근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월세 거래량은 74만8000여건으로 전년 동기(77만1000여건) 대비 3.1% 감소했으나 5년 평균(72만4000여건) 대비로는 3.3% 증가했다. 지난 6월 거래량은 11만4984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8.5%, 전월 대비 5.2% 줄어들었지만 5년 평균(10만8000여건)에 비해서는 6.2% 늘었다.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특히 올 상반기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확정일자를 신고하지 않은 순수월세 제외) 비중은 46%로 전년 동기(43.4%) 대비 2.6%포인트 올랐다. 6월 거래량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6.1%로 전년 동월 및 전월(각각 45.2%) 대비 0.9%포인트씩 뛰었다.

월세 비중이 늘어난 이유는 저금리 때문이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7월까지 15개월 동안 2.50%에 머문 기준금리는 현재 1.25%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25%로 내렸지만 하반기 중 추가 인하 가능성도 점쳐진다.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자 집주인들은 전세를 꺼리고 월세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흔히 말하는 목돈 굴릴 요소가 사라져서다.

2030세대 ‘지옥고’에 직면하다


최근 ‘지옥고’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지옥고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말로 월세시대를 살아가며 주거비 부담에 직면한 2030세대의 생활고를 지칭한다.

서울 신길동에 사는 직장인 이규한씨(남·30)가 대표적인 케이스. 3년 전 취업차 상경한 그는 영등포역 인근 13.2㎡ 원룸을 전세 6000만원에 얻었다. 하지만 2년 후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월세 45만원으로 전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대출과 부모님 도움으로 어렵게 6000만원을 마련했던 터라 대출이자와 고정적인 월세지출이 부담스러웠다. 주변 공인중개업소를 매일 수소문했지만 6000만원짜리 전세는 없었다.


이씨는 결국 은행에 다니는 외삼촌의 도움으로 추가대출을 받아 1억3000만원짜리 전세로 이사했다. 전에 살던 방보다 크기가 조금 커졌지만 이씨의 빚은 두배로 늘었다. “학자금대출 원리금에 전세대출 이자까지. 결혼은 꿈도 못 꿔요.” 빚에 허덕이는 이씨의 푸념이다.

이처럼 2030세대들은 대학졸업을 위해 수천만원에 이르는 학자금대출을 받는다. 졸업 뒤 어렵게 취업해도 학자금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하고 저금리에 적금 하나 고르기도 마땅찮아 목돈마련에 애를 먹는다. 그러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마련하려면 또 대출을 받아야 하고 빚은 더 늘어난다.

어렵게 대출을 받아도 전세의 씨가 말라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근교로 눈을 돌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까 고민해보지만 출퇴근 걱정에 그동안 쌓인 빚도 감당이 안되는 처지임을 실감한다. 결국 남은 건 월세인데 집주인이 제시하는 월세를 내기 위해 월급의 절반을 지출해야 할 판이다.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월세시대 생존법] 월급 쪼그라든 ‘사글세 인생’

정부·여당 vs 야당 ‘이견차’… 해법 오리무중

서민은 주거비 부담이 늘어 울상이지만 집주인들도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경기도 성남에서 주택임대업을 하는 임모씨는 “돈을 벌려고 임대업을 하는 건데 초저금리 탓에 전세금으로는 목돈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며 “고정적인 월세 수입으로 눈을 돌리는 집주인이 늘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커졌지만 임대인의 재산권 보호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씨의 말처럼 임차인뿐만 아니라 임대인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분쟁 발생 시 임차인을 절대적 약자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각이 강해 정작 임대인의 권리보호는 뒷전인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정부·여당과 야당간 의견대립 때문에 정책적 뒷받침이 미흡한 탓이 크다. 그동안 야권과 정부·여당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대 국회 들어 ‘임차인 계약갱신청구권 1회 도입’과 ‘임대료 인상률 연 5% 제한’ 등을 중심으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5건을 잇따라 발의했다.

하지만 앞선 19대 국회에서는 여당과 정부의 끈질긴 반대로 법안이 폐기됐다. 두 제도는 전월세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한 핵심적인 장치로 손꼽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과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대차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된 뒤 단기간에 전셋값이 폭등한 사례를 들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정부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충하고 직장인 월세 소득공제, 저소득층 주거급여 확대 등 서민 주거비 경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야당의 계속된 대립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분쟁해결 실마리는 20대 국회 들어서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