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령화 가족>. 영화는 전쟁터와 같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자녀가 패잔병이 돼 엄마 곁으로 돌아오면서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의 교육, 결혼, 주거비용 등을 지원하며 양육하고 자녀는 나이 든 부모를 다시 부양하는 선순환구조였다. 부모가 늙으면 가족이 부양했고 아들딸이 연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사정이 좋지 않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지금은 20~30대 자녀를 오히려 나이 든 부모가 역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현실과 이런 자녀를 품으로 안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5060세대의 노후현실을 살펴봤다. 

[고수칼럼] '닌자가족' 뒷바라지하는 베이비부머

◆자녀 뒷바라지에 등골 휘는 5060세대

일본과 미국의 베이비부머는 50대가 되면서 소비를 줄이고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는 단카이세대(1947~1949년)로 불리며 1980년대 30대 시절 왕성한 소비를 했다. 그러다 이들이 40대가 된 1990년대부터 일본경제가 흔들렸다. 50대가 된 1990년대 후반부터 단카이세대는 자신의 노후대비를 위해 지갑을 닫고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베이비부머(1946~1964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성장의 혜택을 누렸던 세대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엄청난 주식과 토지를 보유했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주식과 부동산이 반토막 나기 시작하면서 소비보다는 저축을 택하기 시작했다. 미래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5060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는 어떤가.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일본과 미국처럼 전쟁 이후 세대로 사회적인 위치가 비슷하다. 하지만 소비패턴은 조금 다르다. 한국의 5060세대는 과거에 비해 수입이 늘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과 미국처럼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뒷바라지로 지출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이에 빚을 지는 사례도 파다하다. 돈이 없어서 빚을 지는 게 아니라 자녀교육, 결혼, 주거비용 지원에 지출이 커 빚을 지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녀 1명당 대학졸업 때까지 의식주·교육·용돈까지 합치면 평균 약 3억896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월 100만원가량을 자식부양비로 쓰는 셈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40~50대의 자녀교육비 부담은 50~60대 이후 노후준비 부족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결혼비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최근 2년 안에 결혼한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신혼부부의 결혼비용은 평균 2억7420만원으로 2014년(2억3798만원)보다 15% 늘었다. 이 중 주택마련 비용으로 1억9174만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비용의 60% 이상을 부모가 부담하는 경우도 33.5%다. 신혼부부 셋 중 하나는 결혼비용의 60% 이상을 부모가 부담하는 것이다. 5060세대가 자녀부양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수칼럼] '닌자가족' 뒷바라지하는 베이비부머

◆제 살까지 내주는 염낭거미와 흡사

대한민국 5060세대는 새끼를 위해 제 살까지 먹이로 내주는 늙은 염낭거미를 닮았다. 독거미의 일종인 염낭거미는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에게 제 살까지 먹이로 주는 습성이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25세 이상 성인 자녀를 부양하는 부모의 경우 최근 1년간 성인 자녀를 위해 월평균 73만7000원을 지출했다. 지출구간별로는 월 50만원 이하를 쓴다는 응답자가 56.2%로 가장 많았다. 100만원 이상 쓴다는 답변도 17.3%나 나왔다.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녀를 돌보느라 자신의 노후준비는 여전히 뒷전인 모습이다.


또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부모가 언제까지 자녀양육을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학졸업 때까지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49.6%, ‘결혼할 때까지 양육책임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0.4%였다. ‘취업할 때까지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15.7%였다.

게다가 어린 자녀를 둔 20~30대 부부의 82.6%는 조부모가 육아를 맡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손주를 보는 대가로 받는 보수는 평균 월 55만4000원에 그친다. 이마저도 다시 손주에게 지출되는 경우가 많다. 평생 자녀 뒷바라지하느라 대한민국 노년층의 삶이 불투명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준비할 틈 없이 맞는 노후에 ‘속수무책’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노후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대한민국 5060세대다. 자식에게 손을 벌리자니 자식의 삶 또한 고단하기는 매한가지. 기대수명은 점점 늘고 있지만 자산이 감소하는 시기는 미국·일본보다 10년 이상 빠른 60세부터다. 이런 상황을 빗대 중산층 가족이 일자리도, 소득도, 자산도
[고수칼럼] '닌자가족' 뒷바라지하는 베이비부머
없는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or Asset)가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결국 <고령화 가족>은 부자가 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늙어버린 이 시대 한국 중산층의 초상이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는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중 14%)에 진입한다. 자식 된 입장에서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부모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와 선물은 아마도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아닐까. 은퇴한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역시 경제적 자립이다. 부모의 노후준비는 결국 자녀의 미래와 직결된다. 자녀의 경제적 자립 또한 부모의 노후준비와 직결될 수 있음을 가족 모두 명심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추석합본호(제452호·제4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