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은 한옥의 아름다움과 전통문화체험, 각종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어 매년 수십만명이 다녀가는 전주의 대표 관광지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28일 볼거리·즐길거리로 가득 찬 이곳을 방문했지만 기대했던 풍경은 찾기 어려웠다. 각종 상권이 난입해 전통문화와 한옥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었고 곳곳에 위해요소가 득실거렸다. 국내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지만 한옥의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어 한옥 콘셉트의 거대한 스트리트 상권을 보는 듯했다.


한옥마을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사진=김창성 기자
한옥마을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사진=김창성 기자

한복 입고 신나게 누비는 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눈에 띈 풍경은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이다. 한옥마을 곳곳에 자리한 한복대여점에 가면 다양한 종류·색상의 한복과 궁중의상을 빌릴 수 있다. 관광객들은 한복과 궁중의상을 입고 한옥마을 곳곳을 누비며 한지공예,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객의 연령층과 국적도 다양했다. 아동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광객이 한옥마을을 가득 메웠고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관광객도 한옥마을의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바삐 움직였다.

여기저기 구경하며 한옥마을 중심인 사거리에 이르자 마치 서울 명동 한복판에 서 있는 듯 사방에 퍼진 관광객의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전주의 명물인 초코과자를 파는 한 제과점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정자에 앉아 쉬는 사람, 물레방아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어우동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 등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의 전주한옥마을은 그 어느 곳보다 활기가 넘쳤다.


“한옥스테이에서 나무냄새를 맡으며 하룻밤 자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어요. 방금 아이들과 한지공예 체험을 했는데 저도 처음이라 아이들만큼 신나고 재밌었습니다.”

경기도 오산에 사는 주부 장은빈씨(32)는 한옥마을에서 뜻깊은 추억을 쌓았다며 즐거워했다.


청연루에서 내려다 본 한옥마을 모습. /사진=김창성 기자
청연루에서 내려다 본 한옥마을 모습. /사진=김창성 기자

국보부터 사적까지… 곳곳에 숨 쉬는 역사

한옥마을을 둘러보던 중 유독 즐거워 보이는 여고생 4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각자 다른 색상의 한복을 입고 주변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우스꽝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지으며 한옥마을 곳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장난끼와 웃음이 가득 찬 이들의 얼굴은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의 모습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근처 경기전(사적 339호)으로 향했다. 이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국보 317호)을 봉안하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졌다. 울창하고 거대한 수목, 대나무 등과 기와지붕, 비석, 강렬한 붉은빛의 홍살문 등이 어우러진 경기전은 활기찬 한옥마을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왕조의 경건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차분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붐비는 거리로 나와 길 건너에 자리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 전동성당(사적 288호)을 찾았다. 각종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 역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성당 내부는 출입이 통제돼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빨간 벽돌로 구성된 성당 본관 건물은 서울 명동성당과 흡사했다.


북적거리는 한옥마을을 벗어나 근처 풍남문(보물 308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보 1호인 숭례문과 비슷한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으로 동서남북 출입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곳이다. 풍남문은 사람들로 가득한 한옥마을 입구에서 불과 100미터가량 떨어졌지만 몇몇 사람만 오갈 뿐 한산했다.

‘커피숍과 추로스’가 점령한 한옥마을

“전통문화체험 공간은 비좁은데 커피숍은 3층 건물이에요. 그냥 한옥상권 같네요.”

인천 용현동에 사는 대학생 이주현씨(남·25)는 한옥마을을 보며 느낀 아쉬움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씨의 말처럼 한옥마을 곳곳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에 너무 많은 외부상권이 들어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가게와 크고 작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한옥마을 곳곳에 자리했다. 한과나 전통주 같은 전통 먹거리가 아닌 맥주와 추로스가 한옥마을을 점령했다. 어느 한옥건물에는 ‘매매·임대문의’라는 현수막이 걸려 또 다른 상권 유입을 부추겼다.

한 식당은 전주 대표 먹거리인 콩나물국밥의 가격을 이해하기 힘들게 책정해 손님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일반 콩나물국밥 가격이 6000원인 반면 ‘5세 이하’ 어린이전용 국밥 가격은 불과 1000원 싼 5000원이었다. 식당을 방문한 직장인 윤다혜씨(여·27)는 “덩치 큰 씨름선수가 6000원짜리 국밥을 먹는 동안 서준이·서언이는 5000원짜리 어린이국밥을 먹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된다”고 꼬집었다.


한옥마을 곳곳에 주차된 차량들. /사진=김창성 기자
한옥마을 곳곳에 주차된 차량들. /사진=김창성 기자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주차행렬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주한옥마을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차 없는 거리로 지정했지만 이곳을 방문했던 토요일과 일요일 풍경은 주차대란을 방불케 할 만큼 차량통행과 주차행렬이 줄을 이었다.

외부상권 유입으로 의미가 퇴색된 한옥마을만큼 관광객의 의식 수준도 엉망이었다. 곳곳에 쓰레기통이 있었지만 사적과 보물 주변에는 관광객이 그냥 버린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전주한옥마을이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추석합본호(제452호·제4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