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산수화 중 하나로 꼽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 고화는 안평대군이 꿈속 도원에서 논 광경을 당대의 유명화가 안견이 전해듣고 작품으로 완성했다는 걸작이다. 역사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역사적 고화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실화를 볼 수 없다. 몽유도원도가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 

2015 일본 민간박물관 반환 ‘덕혜옹주 당의’(왼쪽), 1966년 한일협정 반환 ‘강릉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2015 일본 민간박물관 반환 ‘덕혜옹주 당의’(왼쪽), 1966년 한일협정 반환 ‘강릉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왜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일본의 문화재로 지정된 것일까. 이유는 몽유도원도가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다는 증거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1955년께부터 일본 덴리대학이 소장 중이다.

한국의 문화재임에도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국외 소재 문화재는 몽유도원도만이 아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알려진 ‘조선종’은 정황상 400여년 전 일본인들이 훔쳐간 문화재지만 지금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우리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인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 역시 국내가 아닌 프랑스에 있다. 

이외에도 전세계 각지에 많은 우리 문화재가 흩어져 있는 상태다. 이 문화재들은 어떤 이유로 국내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2005년 독일 오틸리엔수도원 반환 ‘겸재정선화첩'(금강내산전도).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2005년 독일 오틸리엔수도원 반환 ‘겸재정선화첩'(금강내산전도).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외 문화재 환수, 왜 어렵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올 3월1일 기준 해외에 있는 국내문화재는 16만4454점으로 추정된다. 약 20여개국에 흩어져 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약탈을 일삼은 일본이 7만1375점으로 가장 많다.

물론 이는 추정치다. 수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정부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문화재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환수노력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하지만 환수과정은 험난하다. 우리 정부가 문화재 권리를 주장하려면 해당 문화재가 불법적으로 유출됐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지난 1970년 유네스코에서 체결된 국제협약에 의거, 도난이나 밀거래 문화재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밟아 반환요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절에 유출된 문화재가 워낙 많아 관련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다. 같은 맥락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1893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왜, 어떻게 건너갔는지에 대한 증거자료가 없어 소유권을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2013년 미국 사립박물관 반환 ‘석가삼존도’.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2013년 미국 사립박물관 반환 ‘석가삼존도’.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우리 정부가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문화재 환수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22억여원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올해 예산은 35억여원이다. 국외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문헌조사에 드는 비용을 제외하면 경매시장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발견하더라도 매입을 시도하기 어려운 액수다. 

골동품 경매시장의 한 관계자는 “입증자료를 떠나 국외 소재 문화재는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큰 돈을 들여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있다”며 “정부가 특별히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에 큰 관심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민간인들이 자신의 자산으로 고액 문화재를 구매해 국가에 기증하는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 정부의 국외 문화재 소재파악 능력에도 의구심이 생긴다. 문화재청은 프랑스로 넘어간 지 1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정리의궤’가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 소장됐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정리의궤를 소장한 프랑스국립도서관 측이 지난해 정리의궤를 PDF 파일 형태로 전세계에 무료 공개했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커버스토리]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문화재들

◆환수된 문화재 관리도 아쉬워

국외에서 환수한 우리 문화재의 활용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종배 의원(새누리당)은 지난 7월 “각 국립박물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소장 중인 해외환수 문화재 중 겨우 2.3%만 전시됐고 국립고궁박물관도 8.2%만 전시했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나마 42.2%인데 이 역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앞으로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를 위한 협상에서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지금까지 환수받은 문화재가 국내에서 잘 관리·활용되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라며 정부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환수 문화재 활용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제공=김상엽
/사진제공=김상엽
[미니인터뷰]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제협력실장

“우리 문화재, 환수만이 능사 아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국외 소재 문화재들이 약탈이나 도난에 의해 옮겨졌다는 증거는 없는 상태다. 실제로 과거 유럽선교사들은 우리의 생활 속 물건을 ‘약탈’이 아닌 ‘선의’로 가져가기도 했다. 환수작업을 진행하는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제협력실장은 국외 소재 문화재를 두고 환수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세계에 16만여점의 우리 문화재가 있지만 이 문화재들이 꼭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죠. 실제로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 가운데는 약탈에 의한 것이 아닌 나라 간 교류로 우리가 선물한 것도 많고 그들이 국내에서 정당하게 구입한 것도 많습니다.”

김 실장은 대영박물관을 예로 들며 우리 문화재가 가진 홍보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 대영박물관의 경우 연간 800만명이 방문하는 곳”이라며 “이곳에 한국문화재 전시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창출하는 국가홍보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덴마크의 경우 국립박물관에 ‘한국실’을 만든다는 조건 아래 우리나라가 스스로 113점의 유물을 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외 소재 문화재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황파악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국외에 있는 한국문화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조사를 통한 실태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며 “국민이 우리 문화재에 더 많은 관심을 보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2년 7월 문화재청 산하의 특수법인 재단으로 설립됐다. 문화재 환수에 앞서 국외 소재 문화재의 현황, 반출경위 조사, 국외 고미술상·경매소 등 모니터링 업무, 해외박물관 등에 소재한 한국 문화재의 보존지원 등의 활동을 펼친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추석합본호(제452호·제4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