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포커S] 산업지도 바꾸는 ‘가성비의 힘’
허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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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서 시작된 '가성비' 열풍, IT·자동차·부동산 등 모든 산업으로 확산
경기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며 소비절벽으로 내몰리는 소비자가 늘었다. 소비절벽을 깨는 최선의 방법은 소득을 높이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국내 가구의 월평균 소득증가율이 최근 1년간 0%대로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소비자가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를 좇아 합리적 소비를 하지 않으면 마이너스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이에 발맞춰 ‘가성비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기업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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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랜드 당진 어시장점. /사진제공=이마트 |
◆가성비 열풍 확산
합리적 소비자는 단순히 가격만 저렴한 상품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상품을 원한다. 이들이 찾아낸 이른바 ‘가성비 갑’ 제품에 대한 정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유되며 가성비를 좇는 소비문화 확산에 기여한다. 이런 트렌드 변화에 따라 소비자 반응에 민감한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기존 마케팅 전략이 변화되는 분위기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18일부터 가격대비 기대 이상의 품질을 제공하는 가성비 높은 상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뜻밖의 플러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품질은 좋은데 가격까지 부담없는 상품을 만난 순간, 가격이 저렴한데 기대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만난 순간, 홈플러스에만 있는 상품을 만난 순간 등 고객이 느끼는 기분좋은 놀라움을 ‘뜻밖의 플러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풀어냈다.
뜻밖의 플러스 상품 면면을 살펴보면 해외 유명기업들이 만든 아이스크림, 냉동피자, 데일리 와인 등 세계 각지의 단독 직수입상품부터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 자체브랜드(PB)상품들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은 고객들이 가성비 높은 상품을 홈플러스에서 발견하며 느끼는 기분 좋은 놀라움을 표현한 것”이라며 “유통업의 본질인 가격 경쟁력을 기본으로 기대 이상의 품질을 제공하는 가성비 높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야심작으로 꼽히는 이마트 PB상품 ‘노브랜드’는 상품수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한편 최근에는 단독 매장까지 선보였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용인 기흥구 보라동에 노브랜드제품만 판매하는 창고형 할인매장 콘셉트의 전문점을 처음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충남 당진 어시장점, 스타필드 하남까지 매장수를 늘리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노브랜드는 최근 중국시장에 수출하는 등 해외에서도 상품성을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도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통하며 인기가 높다”며 “상품력만으로 다른 상권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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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서울역점 ‘테’ 매장. /사진=뉴스1DB |
롯데마트는 지난 3월 기존 PB의류 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세련된 감성까지 담은 데일리룩브랜드 ‘테’(TE)를 선보였다. 테는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 또는 ‘트렌드 인 에브리데이’(Trend in Everyday)의 약자로 바쁜 도시인의 일상 속에서 여유로운 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테는 기존 PB의류의 한계로 지적됐던 평범함과 저가 이미지를 탈피한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진 디자이너들과 접점을 늘려 브랜드 콘셉트에 맞는 상품을 소량으로 즉각 생산하는 형태를 취했다.
롯데마트 의류 상품기획자들이 직접 글로벌브랜드의 해외 생산공장을 방문해 원단 종류, 스타일 및 매입 물량 등을 현장에서 결정한 후 국내로 다이렉트 소싱하는 방식이라 트렌드와 가성비를 모두 만족시키는 전략이라는 평을 듣는다.
편의점업계도 가성비를 갖춘 PB상품 개발 경쟁에 가세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지난 1월 PB상품 통합 브랜드 ‘헤이루’(HEYROO)를 론칭하고 음료, 라면, 장난감, 과자 등 다양한 상품 카테고리에서 높은 가성비로 기존 PB, NB(National Brand) 상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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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야커피 한국수출입은행점. /사진제공=이디야커피 |
◆판매 전략 변화 불가피
제과업계에선 오리온의 행보가 눈에 띈다. 제품의 양을 늘리거나 가격을 낮추는 방식의 가성비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우며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있어서다.
오리온 카스타드는 경쟁제품 대비 15%가량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며 소비자 사이에서 대표적인 ‘가성비 갑’ 간식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출시한 더 자일리톨은 경쟁제품 대비 1000원가량 가격을 낮췄으며, 더 자일리통 용기껌은 기존 76g에서 102g으로 가격변동 없이 양을 34% 늘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른바 ‘다·나·까 3총사’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는 ‘다이제샌드’ ‘나’ ‘까메오’는 최근 중량을 조정하고 가격을 12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춰 g당 가격을 기존 대비 3% 인하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저성장 고착화와 경기 불황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돼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가성비 트렌드가 확산됐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만큼 앞으로도 소비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국내 커피전문점 최초로 2000호점(용인 신갈점)을 돌파한 이디야커피는 커피업계의 '가성비 갑 브랜드'로 통하며 급성장했다. 2001년 1호점인 중앙대점을 낸 지 12년 만에 국내 최초로 1000호점을 오픈했고, 다시 3년 만에 매장이 1000개가 늘었다.
이디야커피의 놀라운 성장세는 합리적인 가격에 커피를 제공한다는 원칙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커피전문점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디야커피는 가격 대비 맛이 좋은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성장 시대에는 판매·소비 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가성비 열풍이 IT, 자동차, 부동산 등 전 산업 영역으로 확산되며 앞으로도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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