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9-인구절벽] ‘첫 울음’ 들리지 않는 대한민국
허주열 기자
10,278
공유하기
우리나라의 일하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든다.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 가속화가 맞물린 탓이다. 당장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하는 ‘인구절벽 시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이는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예고한다. 생산과 소비의 주역이 줄면 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흐름이 갈수록 빨라진다는 것.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암울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 |
서울 소재 한 병원의 텅 빈 신생아실. /사진=뉴스1 DB |
◆유례없는 초저출산 장기화의 그늘
최근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이 50개 국가의 고령화와 경제성장을 비교 분석한 결과 60세 이상 고령인구가 10% 증가하면 국내총생산(GDP)은 5.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련된 노동자의 은퇴가 전체 노동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는 5107만명(외국인 포함)이다. 0~14세 유소년이 691만명(13.9%),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657만명(13.2%)이다. 2010년과 비교하면 유소년 인구는 97만명(2.3%) 감소한 반면 고령인구는 121만명(2.2%) 늘었다.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3623만명(72.9%)으로 같은 기간 0.1%(72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는 3703만9000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년부터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통계청은 예측했다. 주요 경제활동인구인 25~49세는 2009년부터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구절벽’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해리 덴트는 인구절벽 현상이 발생하면 생산·소비의 동반감소 등의 요인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돼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구절벽이 초래하는 문제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인구절벽 시대로 접어든 일본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 경제와 소비 규모가 줄어드는 장기침체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OECD 국가 중 끝에서 두번째다. 통상 출산율 1.3명 이하가 3년 이상 지속되면 초저출산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15년간 이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인구절벽을 야기하는 또 다른 축인 고령화의 진행속도는 더 빠르다. 일본은 노령자 비율이 7%를 넘는 고령화사회에서 14% 이상인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4년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보다 6년이나 빠른 18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이 추세라면 고령인구의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시기도 일본의 11년보다 2년 빠른 9년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준비는 매우 부족하다. 지난달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고령자(53.1%)가 노후준비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 절반 이상(56.3%)은 노후를 준비할 능력이 아예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준비 없는 기대수명 연장은 결국 생산가능인구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짙다. 지난해 건강보험상 고령자 진료비는 전체(58조170억원)의 36.8%(21조3615원)이며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43만원으로 전체 1인당 평균 진료비(115만원)보다 약 3배 많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장수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노령연금 수급자 비율이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국민연금이 지출해야 할 보험급여는 약 1.16%포인트 증가한다. 이에 따라 노령연금 소요재정은 2020년 13조5000억원에서 2060년 175조7000억원으로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 관계자는 “생산인구의 감소는 당장 철강·자동차·건설 등 주요 제조업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 |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월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저출산 기본계획 중점대책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
◆내년부터 인구절벽 악몽 현실화
문제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령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미래의 생산가능인구인 유소년인구(0∼14세)가 꾸준히 줄어든다는 것은 곧 인구절벽의 장기화를 의미한다.
의학의 발달 등으로 수명이 늘어나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면 해법은 출산율을 늘리는 것뿐이다. 이를 고려해 정부도 다양한 처방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2006년부터 10년간 151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1.2명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약 19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난임시술비 지원확대와 남성 육아휴직급여 확대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출산율 감소는 난임보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환경 탓에 출산을 포기해 생기는 현상이며 남성 중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도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초등돌봄 전용교실 확대, 전환형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충, 신혼부부 맞춤형 주택공급 등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다른 대책도 나왔지만 실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일부에 그친다. 출산율 감소 원인에 대한 진단이 틀리다 보니 대책도 현실성이 다소 부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기존의 출산대책은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핵심적 이유인 주거·양육비 부담 등 경제적 문제를 외면했다”며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인구절벽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 |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