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 엘리엇, 삼성 승계지지 노림수
허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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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 16: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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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 이재용’ 지배체제 개편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가 뜻밖의 명분을 얻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소송까지 제기하며 강하게 반대했던 벌처펀드 엘리엇이 1년 만에 입장을 180도 바꿔 지배체제 승계를 주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엘리엇의 자회사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승계 시나리오를 담은 공개서한을 보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삼성전자 분할(지주회사 - 사업회사) 후 삼성물산과 합병 ▲삼성전자 사업회사 미국 나스닥 상장 ▲분할한 사업회사의 30조원 특별 배당 ▲독립적인 사외이사 3명 선임 등이다.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62%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지분 3.49%)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지분 0.59%)보다는 많다. 엘리엇의 목소리가 가진 파급력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일부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엘리엇 지지 의사를 이미 밝힌 만큼 엘리엇의 주장은 앞으로 더욱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부정적이었던 엘리엇이 돌연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명분은 삼성의 불확실한 지배구조 때문에 삼성전자 주가가 저평가 됐고, 이를 빨리 해소해야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위한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넘어야할 산이 여러개 있지만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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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뉴시스 |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엘리엇의 요구가 삼성전자가 앞으로 추진해야 할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방향과 크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엘리엇이 이재용 체제 강화에 나설 명분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엘리엇은 세계를 무대로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악명높은 벌처펀드다. 이 부회장 측에만 이로운 주장을 할 리가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엘리엇의 제안은 삼성이 가려워 하는 부분을 나서서 긁어주고 자신들은 막대한 돈을 챙기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30조원 특별배당과 나스닥 상장이 이뤄지면 엘리엇은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또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요구도 관철될 경우 이 부회장 측 인사가 아닌 자신들이 추천하는 인사를 밀어넣는 방식으로 경영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엘리엇이 구체적 행동에 나설 시점을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로 보고 있다. 법률상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논의되는 이달 27일 임시 주총에선 엘리엇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내년 3월이면 자격을 갖추게 된다.
아울러 이때쯤이면 스스로 지분을 확대하거나 우호세력을 규합해 임시주총을 소집(지분 1.5% 이상)할 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가운데 양측의 적과의 동침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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