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20일 지상파방송(KBS1·EBS1 제외)과 유료방송(케이블·IPTV·위성) 간의 원활한 재송신 협상을 위한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상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의체’를 구성해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에 나선 지 1년2개월 만에 지침을 내놓은 것. 하지만 실효성 없는 두루뭉술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장고 끝에 무수(無手)를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지상파방송 소관)와 미래부(유료방송 소관)가 전날 발표한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상 가이드라인’은 ▲재송신 협상의 원칙과 절차 ▲성실협상 의무 위반에 대한 판단기준 ▲정당한 사유없는 대가를 요구하는지 여부(재송신 대가 산정 시 고려요소)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간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은 재송신 협상을 자율적으로 진행하며 잦은 갈등으로 블랙아웃까지 유발해 국민의 시청권을 저해해 왔다. 이에 따라 정부 주무부처가 시청권 보호를 위한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당사자인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모두 결과물이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지상파방송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방송협회는 입장자료를 통해 “이번 가이드라인이 시청자 권익을 보호하고 협상에 대한 원칙과 절차를 제시해 사업자들간 성실한 협상을 유도하는 선에서 적절히 활용되길 바란다”면서도 “가이드라인의 수준을 넘어 대가 산정 자체에 개입하는 것은 자율적 협상을 저해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손지윤 미래창조과학부 뉴미디어정책과 과장이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손지윤 미래창조과학부 뉴미디어정책과 과장이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또한 “가이드라인이 향후 협상이나 소송에 악용되거나 대가 산정과 계약체결 등 자율적 협상 영역에 개입하는 빌미로 연계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가 산정에 대한 이견이 지상파-유료방송 갈등의 핵심인데, 이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사실상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다. 

반면 유료방송업계는 다른 이유로 불만족을 표시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것.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지상파와 유료방송간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첫삽을 뜬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가이드라인은 협상에서 합리적인 대가 산정을 강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업계가 제안한 규제기관과의 강력한 조정력 및 합리적 대사 산정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기구 운영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통해 향후 지상파뿐만 아니라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간 윈-윈 할 수 있는 대가 거래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가 장기간 고심한 끝에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간의 갈등을 해소할 해법을 내놨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유명무실한 지침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직접적으로 법적 효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관련 법령의 해석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어 사업자 간 협상이 합리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명확한 법 집행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추가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앞으로 계속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