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인천-르포] 빛바랜 화려했던 주연들
인천=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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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6 | 0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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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찾은 인천의 옛 도심은 모두 역세권에 위치했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주민들은 과거 화려했던 모습과 정반대의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했다. 송도국제도시·청라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천이 화려해졌지만 옛 도심 주민들의 생활은 어두워졌다. 신도시 개발에 대해선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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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 도심 주안역 인근의 주거지역(주안5동). /사진=서대웅 기자 |
◆공단과 고층빌딩 사이 ‘컴컴한 주안’
인천 남구 주안역. 20여년 전만 해도 인천의 도심이었던 지역이다. 인천의 옛 도심은 동서를 가르는 경인선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로 나뉜다. 상권은 대부분 남부에 형성됐으며 주민들은 이곳을 ‘앞쪽’이라고 부른다. 주거지역인 북부가 ‘뒤쪽’이다.
주안역 6번 출구(뒤쪽)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동네 분위기가 다소 어두워진다. 주안5동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곳 건물의 대부분은 자줏빛을 띠는 4~5층짜리 조적식 벽돌건물이다. ‘가·나·다’로 동수가 붙여진 5층짜리 아파트도 눈에 띈다. 골목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안 제이타워(J-Tower)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장에서 울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주안동에서 나고 자란 편의점 매니저 정지은씨(28)는 주안에 대해 “이곳은 공장지대여서 애들 키우기가 쉽지 않다”며 “해가 지면 컴컴하고 사람도 거의 없어 치안이 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옛 도심이었을 때 주안의 모습을 묻자 정씨는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옛날에는 이곳 공단이 주민을 먹여 살렸다고 들었다”며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가 눈에 많이 띈다”고 전했다.
주안동 북면에 위치한 ‘수출산업제5차6차국가산업단지’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얘기다. 골목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이은정씨(가명·25)는 “공단이 발전했다면 주안동이 이 모양이겠냐”고 말했다.
서쪽으로 10여분 걸어 경인고속도로를 통과해 다시 20여분 걸으면 도화도시개발구역이 나온다. 30층은 될 법한 아파트가 건설 중이다. 인근에는 청운대학교와 인천비즈니스고등학교가 들어섰다. 앞서 주안동에서 보였던 높은 빌딩들이다. 이은정씨는 “저곳(도화동 개발구역)에 갈 수 있는 주민은 적어도 이곳(옛 도심인 주안)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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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구지하상가. /사진=서대웅 기자 |
◆인천의 명동, 가장 초라하게 변했다
택시를 타고 동인천역으로 이동했다. 동인천역은 주안으로 도심이 이동하기 전의 인천 중심가였다. 30여년 전이다. 택시기사에게 동인천역의 근황을 묻자 “뭐가 있겠어요. 죽었지 그냥”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고등학교가 연수구 등으로 이전하며 인구가 많이 빠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주안역과 동인천역 사이의 제물포 지역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학생이 많아서 그나마 유지됐는데 인천대학교가 (송도국제도시로) 떠난 다음에는 끝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인천역 1번 출구 앞 ‘동인천구지하상가’. 50여년 전 인천에 생긴 최초의 지하상가다. 100m 남짓인 이곳에 입점한 상점은 30여개. 오후 6시였지만 철문을 닫은 상점이 더 많았다. 퇴근을 준비 중인 상인도 보였다. 이곳을 지나는 주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가방가게를 운영하는 김경옥씨(62)는 40여년 전부터 인천 동구에 거주 중이다. 김씨는 당시의 이곳을 ‘인천의 명동’으로 회상했다. 그는 “사람들끼리 어깨가 닿아서 못 다닐 정도였다”며 “가장 번화했던 곳이 가장 초라하게 변했다”고 말끝을 흐렸다.
오후 6시30분. 지하상가에서 나와 바로 오른편에 보이는 ‘전통혼수거리’로 이동했다. 상가 팻말의 대부분은 ‘한복·혼수·커텐·이불’ 등이다. 이런 상가가 경인선 철길을 따라 300m가량 즐비하다. 하지만 이 시각 문을 연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가로등 빛이 약해 무서울 정도였고 3층짜리 ‘타올백화점’은 폐건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기자가 10여분간 걸으며 이곳에서 본 사람은 3명이 전부였다.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의 ‘전통혼수거리’ 네온사인만 반짝 빛났다.
인근 송현중앙시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시에서 상가 사이에 천장을 만들고 전등을 밝게 해 분위기는 다소 밝았지만 이곳 역시 문을 닫은 곳이 더 많았다. 수도국산(송현산) 아래에 위치한 이곳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국산 달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분위기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건 2005년 달동네가 없어지고 솔빛주공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다. 2900여가구가 생겼지만 이들은 재래시장을 외면했다.
수도국산에서 43년간 거주 중인 송현중앙시장 내 ‘수도정육점’ 주인 고은석씨(43)는 “기존 주민이었다면 이곳을 찾았을 테지만 아파트가 세워진 후 그곳 주민들은 대형마트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고씨에 따르면 이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달동네 원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고씨는 “예전에 땅이 있어 보조금이 나왔어도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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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 도심 인천역 북면에 위치한 판자촌. /사진=서대웅 기자 |
◆송도로 갈 수 없는 옛 도심 주민들
이날 기자가 만난 옛 도심의 주민들은 송도국제도시·청라신도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가보지 못한 탓이다. 송현중앙시장의 고은석씨는 “송도엔 갈 수도 없어요. 수준 차이 나서”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준’이란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인천시의 신도시건설 등 재개발사업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인천시민을 위한 개발이 아닌 다른 지역의 ‘돈 많은 사람’을 위한 사업이란 게 골자다. 주안에서 만난 정지은씨는 “서울에서 송도로 가는 길은 편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정작 주안에서 가려면 교통편이 없다”며 “그래서 친구들과 부평에서 만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기자와 대화를 나눈 택시기사는 “송도에서 손님을 태우면 보통 강남이나 인천고속버스터미널로 간다”고 전했다. 제3경인고속화도로를 통과해 강남순환고속도로를 거치면 1시간 안에 강남에 도착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송도나 청라에 사는 사람은 인천을 잘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제물포에서 살다가 8세 때부터 연수구에서 살고 있는 박영수씨(29)는 “송도에 종종 가는 편인데 갈 때마다 ‘별천지’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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