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와 비메모리반도체 1위 인텔이 반도체시장의 패권을 놓고 한바탕 전면전을 치를 분위기다. 인텔이 지난해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라는 신기술로 30여년 만에 메모리시장 재도전을 선언했고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3D 낸드플래시 양산능력으로 메모리시장 수성을 확고히 하면서 모바일AP 등 비메모리반도체시장 공략을 강화한다는 대응전략을 내놨다. 반도체 최강자 인텔의 전례없는 공세 앞에서 삼성전자는 ‘실적 효자’ 반도체사업을 흔들림없이 유지할 수 있을까.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트가 지난달 15일 밝힌 2016년 4분기 기준 매출 상위 20대기업 순위를 살펴보면 인텔이 563억1300만달러로 확고한 1위고, 2위는 435억3500만달러의 삼성전자다. 3위는 TSMC로 상위 두 기업보다 많이 처지는 293억24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퀄컴과 브로드컴이 150억달러대 매출로 4·5위다. 6위는 전년도에 4위를 기록했던 SK하이닉스다.

단순히 순위만 놓고 보면 20년 넘게 반도체시장의 1·2위를 독점해온 인텔과 삼성전자의 시장 나눠먹기가 올해도 변함없이 재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황이 심상치 않다. 차세대 메모리 패권을 노리는 인텔의 신무기가 가시화됐고 삼성전자는 응전을 준비 중이다.


그간 인텔은 ‘x86 시리즈’로 잘 알려진 CPU 제품군을 중심으로 수익률이 높은 비메모리반도체시장을 주도하면서 주기적으로 메모리시장 진입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초반의 RDRAM이다. 미국의 반도체설계기업 램버스(Rambus)와 함께 만든 차세대 메모리 RDRAM은 한때 우월한 성능으로 D램시장을 제패하는가 싶었지만 주요 반도체·PC기업들이 모인 국제 반도체공학 표준협의기구(JEDEC)가 DDR메모리를 표준으로 밀면서 쓴맛을 봤다.

이후 플래시메모리 표준경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재연됐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도시바 등은 낸드(NAND)타입을 표준으로 추진했고 인텔, AMD, IBM 등은 노어(NOR)타입을 내세웠다. 대용량에 저가격을 구현한 낸드플래시가 시장의 승자가 됐고 노어플래시는 생산이 중단됐다. 오늘날 SSD를 비롯해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기기의 필수저장장치로 자리잡은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6.3%의 시장점유율로 2위 도시바(20.1%)에 크게 앞선 독보적 1위를 구가하고 있다(올 2분기 기준, D램익스체인지 조사).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의 구조. /사진제공=인텔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의 구조. /사진제공=인텔

◆인텔의 권토중래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


메모리전쟁에서 연거푸 패배한 인텔은 와신상담 끝에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지난해 7월 인텔과 마이크론이 합작해 공개한 ‘3D 크로스포인트(XPoint) 메모리’ 기술이 그 주인공이다.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는 현재 메모리시장의 양대 주력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만 결합한 차세대 메모리다. D램은 전원이 공급될 때만 데이터가 유지되는 휘발성메모리로 빠른 속도가 강점이지만 대용량 구현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비휘발성메모리로 대용량이 용이하지만 읽고 쓰는 속도가 D램에 비해 느리다. 3D 크로스포인트메모리는 D램보다 10배 높은 집적도를 가져 대용량 구현이 가능하고 낸드플래시보다 소자의 반응속도가 1000배 빠르며 내구성도 1000배 뛰어나다.

마법같은 성능을 가능케 한 것은 베일에 가려진 3D 크로스포인트 설계다. 중첩된 셀(Cell) 위아래로 금속회로를 가로세로로 교차해 적층했는데 설계의 핵심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소재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텔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역할을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 하나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전통적인 폰 노이만 형 컴퓨터의 필수구조로 생각되던 ‘CPU - 램 - 저장장치’ 구조를 ‘CPU - 램’으로 단순화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우선 고성능을 요구하는 기업서버용 D램·낸드플래시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미 이 기술이 적용된 SSD 제품군 ‘옵테인’(Optane) 프로토타입이 지난해 공개돼 인텔의 고성능 SSD보다 7배 빠른 성능을 과시한 바 있다. 정식 옵테인 SSD는 올해 안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국내 전문가들 “과대포장일수도…”

과연 인텔의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가 반도체시장에 일대 격변을 가져올 수 있을까. 국내 반도체업계의 평가는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것. 반도체업계의 한 전문가는 “3D 크로스포인트 메모리 기술이 과대포장된 감이 있다”며 “완전히 새로운 신기술은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졌던 PRAM 기반 기술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PRAM(Phase-change RAM, 상변화 메모리)은 열을 가할 때 비정질상태와 결정질상태가 교차하는 칼코게나이드 유리 소재를 활용한 차세대 메모리로 D램의 빠른 속도와 비휘발성이라는 플래시메모리의 강점을 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열린 한 기술심포지엄에서 인텔과 마이크론의 조인트벤처 IM플래시의 미트 키번 CEO는 “3D 크로스포인트의 주요 재료는 칼코게나이드이며 그외에 기존 메모리에 사용되지 않은 100여개의 신소재가 사용된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D램과 낸드플래시를 동시에 대체한다”는 인텔측의 청사진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D램보다 대용량에 낸드플래시보다 빠른 속도라는 장점은 반대로 D램보다 느린 속도와 낸드플래시보다 작은 용량이라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이 전문가는 “고성능 서버용 SSD로는 사용될 수 있겠지만 대중적으로 사용되려면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의 초고성능 하이엔드 SSD 'Z-SSD' . /사진제공=삼성전자
내년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의 초고성능 하이엔드 SSD 'Z-SSD' .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메모리 막고, 비메모리 친다”

인텔의 선공에 맞설 삼성전자의 대응전략은 ‘공방일체’다. 메모리반도체시장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면서 인텔의 본진이랄 수 있는 비메모리반도체시장에 대한 공략도 병진한다는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3D낸드 양산기술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현재 48단 낸드를 유일하게 양산 중이고 64단·96단 기술도 이미 확보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8월 공개한 세계최초 4세대(64단) V낸드의 양산을 올 연말 시작하며 ‘Z-SSD’ 등 4세대 V낸드 기반 SSD는 내년 중 출시할 예정이다.

비메모리반도체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 중이다. 이 관계자는 “업계 최초 10나노 핀펫 공정으로 자체 모바일AP ‘엑시노스’와 퀄컴의 AP ‘스냅드래곤 835’ 수탁생산(파운드리)을 시작했고 이미지센서 매출도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라며 “모바일AP와 이미지센서를 중심으로 비메모리시장에서 입지를 늘려나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