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경제부총리로 내정되면서 금융당국의 금융개혁이 중단, 성과연봉제 추진에 제동이 걸렸으나 시중은행 이사회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지난 12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시중은행은 긴급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수협은행은 설명회를 통해 이사회에 성과연봉제 추진안을 보고했다.


시중은행은 연봉 최고·최저 차등 폭을 평균 20~30%로 정하고 2018년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이를 기반으로 노조와 임금체계 개선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성과연봉제와 금융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사진=뉴시스 DB
성과연봉제와 금융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사진=뉴시스 DB

그러나 시중은행이 성과연봉제를 계획대로 시행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연말 시중은행의 임금 및 단체협약협상(임단협)이 사실상 중단된 데다 내년 은행별로 CEO 교체 등 주요이슈가 산적해 임금체계 개편이 어려워 보인다.
은행권에선 성과연봉제가 은행 임직원과 노조의 갈등을 조장할 뿐 시행시기를 점치기 어려워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임단협 중단, 은행장 교체시기 맞물려

성과연봉제는 집단성과체제 속에서 무임승차하는 경우를 방지하고 일 잘하는 직원을 우대하기 위한 제도다. 지난 7월 은행연합회는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시중은행은 이를 기반으로 세부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 문제는 성과연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임단협이 진행되기 어려운 점이다. 현재 임단협 타결을 위한 노사교섭을 진행하는 시중은행은 한곳도 없다. 성과연봉제의 세부방안을 논의할 임단협이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전에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은행연합회가 주도하는 사용자협의회에서 산별교섭을 진행한 뒤 각 지부에 가이드라인과 함께 교섭권을 부여해 은행별 상황에 맞춰 노사가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통상 12월 내 협상을 타결한 뒤 연내 소급분을 반영하는 식이다. 그러나 금융노조가 각 은행별로 개별 협상하지 않도록 교섭권을 주지 않는 데다 금융노조의 협상 파트너인 사용자협의회도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어 임단협 진행이 어려워졌다.

특히 우리·신한·KEB하나은행은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은행장의 임기가 만료돼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성과연봉제를 조기 시행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된다. 새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들이 조만간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구성하고 내년 3월 정기주총을 열어 차기 행장을 결정한다. 또 내년 중 지주사 설립을 추진할 계획으로 하반기에는 금융지주 회장 선임작업에 돌입할 전망이다.


차기 우리은행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추대되면 또 한차례 행장을 신규 선임하거나 KB금융처럼 회장이 행장을 겸임해야 한다. 우리은행이 내년 3월부터 하반기까지 은행장과 회장 선임작업에 들어가 임단협을 통한 성과연봉제 도입이 뒤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도 마찬가지다. 조용병 신한은행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임기가 모두 내년 3월 종료된다. 조용병 행장은 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떠오른다. 조 행장이 차기 회장에 내정되면 신한은행은 서둘러 은행장 선임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임단협을 진두지휘할 은행장이 내년 초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올 연말 은행별 노조의 교체시기가 맞물린 점도 성과연봉제 조기시행에 걸림돌이다. 최근 우리·KB국민·KEB하나은행은 선거를 거쳐 새로운 노조위원장을 뽑았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는 강성 집행부인 데다 세곳 모두 내년 초 출범할 예정이어서 당장 사측과 논의하기 어렵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노조가 각 지부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나 대다수 시중은행의 임단협이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장 교체를 앞둔 일부 은행은 노조가 반발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포커S] 은행 성과연봉제, '노조 큰산' 넘을까

◆운신 폭 좁은 임종룡, 추진동력 잃어

성과연봉제를 강행해온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입지도 불안하다. 임종룡 위원장의 거취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오는 내년 초까지 미지수다. 따라서 임 위원장이 금융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더라도 현정부 들어 추진된 금융정책들이 힘을 잃을 것이란 관측이 높다.

특히 성과연봉제는 대통령이 직접 추진한 금융정책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국민과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은 만큼 정책 전반에 걸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간은행뿐 아니라 내년부터 시행예정인 금융공기업도 성과연봉제 도입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연봉제는 금융당국이 도입에 앞장서고 은행연합회가 시중은행의 경영진을 설득하고 있다. 시중은행은 노사협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금융공기업처럼 개인 동의서를 받아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방식은 불법성 논란에 휘말린 상태. 근로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사합의가 필요하다고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어서다.

기업은행 노조는 내년 1월1일부터 성과연봉제를 시행키로 한 이사회 의결에 효력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소송을 법원에 냈다. 직원동의서를 토대로 이사회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이 무효라는 본안소송도 제기했다. 법원이 기업은행 노조의 가처분 신청에 손을 들어줄 경우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도 시중은행의 성과연봉제 동참을 설득하는 데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노동법상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은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노조 가입률이 50%를 넘으면 개인이 아닌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하고 은행 이사회가 의결했지만 노조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 성과연봉제 시행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