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수익률 9000%" 베이징의 신종 다단계
원종태 특파원의 China Report
베이징(중국)=원종태 머니투데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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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 베이징에서 ‘다단계 판매’가 여론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신징바오 같은 유력 일간지는 기자를 다단계 조직의 신입회원으로 위장시켜 ‘잠입 르포’까지 내보낼 정도다. 중국 경제가 힘들다 보니 다단계 판매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오후 3시 베이징 텐안문에서 30km 떨어진 옌자오 둥펑하와이난안아파트에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쳤다. 경찰특공대는 아파트단지 곳곳에서 단체생활을 하던 다단계 판매 조직원 200여명을 검거했다.
중국 전역에서 원정 온 이들은 일명 ‘4만9800위안 민간 상호 재테크’로 불리는 신종 다단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미 경찰이 지난해 12월 600여명에 이어 올해 8월 800여명의 다단계 판매 조직원을 잡아들였지만 옌자오의 다단계 위세는 여전하다. 베이징의 베드타운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아파트 임대료가 저렴해 옌자오는 다단계 판매조직들의 주 무대로 악명 높다. 20~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곳 아파트에서 집단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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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특히 ‘4만9800위안 재테크’로 불리는 신종 다단계 판매 조직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 조직은 자신들의 사업이 “리커창 총리의 ‘대중창업, 만중창신’(모두가 창업을 하고 혁신을 이루자는 경제 슬로건) 정신을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정당화할 정도다. 중국정부가 2020년까지 농민 7억명을 중산층으로 양성하는 정책을 펴는데 자신들도 이 정책에 한몫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조직원은 장성한 자녀들까지 서슴지 않고 새 조직원으로 영입할 정도로 다단계에 눈이 멀었다. 도대체 ‘4만9800위안 재테크’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수익률 9000%' 일확천금에 빠진 사람들
지난달 28일 옌자오 동마오빌딩의 한 강의실. ‘4만9800위안 재테크’로 불리는 다단계 판매 조직원들은 옌자오 일대 아파트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낮에는 이곳에서 강의를 들었다. 일명 ‘백만장자 되기’ 강의였다.
이 조직은 다른 다단계 판매조직과 달리 물건을 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조직원의 사생활도 침해하지 않는다. 조직원들은 자유롭게 자기 생활을 하면서 조직이 정해준 ‘목표’를 달성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이 다단계 조직은 조직원들에게 “우리는 절대 다단계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결정적 카드를 슬쩍 보여준다. 누구나 단돈 4만9800위안(약 849만원)만 내면 최대 450만위안(약 7억6675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9000%에 달하는 수익률이다.
그러나 이 천문학적 수익률의 근거는 다름 아닌 ‘다단계 판매’ 방식에 있다. 이 다단계 조직은 조직원 등급을 A→B→C1→C2→C3 총 5등급으로 나눴다. 가장 낮은 등급인 A단계는 일단 3명의 새 조합원을 영입하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한 조직원이 무조건 자기 밑으로 3명의 새 조직원을 영입하면 A등급이 된다.
이후 이 3명이 다시 각자 자신 밑에 3명씩 조합원을 영입하면 B등급으로 올라간다. 다시 이 9명이 자신 밑에 3명씩 조합원을 영입해 27명이 되면 C1 등급을, 그 27명이 또 3명씩 모아 81명이 되면 C2 등급을, 그 81명이 다시 3명씩 영입해 243명이 되면 C3 등급이 되는 식이다.
이 다단계 조직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엄청난 수익 배분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다른 다단계와 달리 물건을 팔지 않는 대신 ‘입회비 4만9800위안’으로 수익구조를 단순화했다.
만약 조직원이 새로운 조직원을 영입해 4만9800위안의 입회비가 들어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우선 이 신입회원 영입을 추진한 사람에게 6600위안을 지급한다. 이후 A등급 조직원들이 5000위안을 나눠 갖고, B등급 조직원들은 4000위안을 나눠 받는다. 이런 식으로 C1등급은 8000위안을, C2 등급은 1만위안을 갖고, 마지막 C3 등급은 단 1명밖에 없으므로 1만4000위안을 독차지한다. 조직원들에게 배분되는 금액은 4만7800위안으로 나머지 2000위안은 ‘자선기금’ 명목으로 회사에 납부한다. 이렇게 산하에 243명을 모두 채워 C3 등급이 되면 450만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결국 신입회원을 243명까지 늘려가는 ‘다단계 판매’ 방식과 물건을 팔지 않고 ‘4만9800위안’만 내면 되는 단순 구조가 이 다단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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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들까지 회원 영입, 세뇌가 왜곡한 현실
이렇다 보니 이 조직의 백만장자 강의는 연일 1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넘친다. 내몽고에서 목축업을 했던 50대 남성 류치씨(가명)도 일확천금의 꿈만 믿고 800km를 달려 이곳으로 왔다. 그는 내몽고에서 양 2000마리를 키웠는데 이곳에서의 월 수입이 더 많다고 했다. 이미 숙부와 사촌동생을 불러 회원으로 가입시킨 류 씨는 조만간 친아들도 데려와 회원으로 가입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쿤밍의 화이트칼라 출신인 20대 여성 류롱씨(가명)는 이 다단계 판매를 아예 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는 “4만9800위안 재테크는 다단계 판매가 아니라 내가 낸 돈 이상을 벌 수 있는 새로운 게임”이라고 밝혔다.
조직원들의 허황된 꿈은 이 조직이 수십차례 이상 반복학습으로 세뇌시킨 결과다. 백만장자 강의에 나선 한 강사는 “이것은 투자가 아닙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죠. 이것은 돈을 ‘임시 보관’했다가 다시 돌려주는 새로운 사업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다단계사업은 실체조차 분명하지 않아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베이징박애연맹투자발전공사는 유령회사로 법인 등록 주소지만 있을 뿐 모든 회사 업무는 제3의 장소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조직원들은 수익금 분배 등 문제가 생겨도 따로 찾아가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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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경찰의 단속에도 이 같은 불법 다단계가 중국 전역에서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경찰 수사를 받은 다단계 조직만 30개가 넘는 상황이다. 이에 지방정부 차원의 단속을 뛰어넘는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베이징의 반 다단계 시민단체들은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다단계를 뿌리 뽑으려면 베이징시는 물론 허베이성과 텐진시 등 인근 지방정부까지 연합해 단속에 나서야 한다”며 “경제적 폐해와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다단계 판매는 중국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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