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은 허무맹랑한 수단으로 남을 속여 한몫 챙긴 인물이다. 대동강 물을 자기 것인 양 속여 한양의 한 졸부에게 황소 60마리 가격과 맞먹는 돈을 받고 팔았다. 지금은 필요한 물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이 당연한 시대. 수돗물도 그렇고 생수 등도 마찬가지다. 물을 가지고 수익을 얻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곳곳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식품, 아워홈, 신세계푸드. 이들의 공통점은 식음료제조 및 식자재유통을 하는 식품기업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점은 '물장사'에 뛰어들었다는 것. 두유제품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은 최근 심천수를 출시하며 생수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12월 생수제조업체 제이원을 인수해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고, 아워홈은 지난해 12월 아워홈 지리산수를 출시해 자사 온라인몰인 아워홈몰에서 판매 중이다.

생수시장은 전형적인 레드오션으로 꼽힌다. 생수시장에서 경쟁하는 업체만 전국 70여개, 브랜드는 무려 200여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물장사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사진=이미지투데이 @머니S MNB, 식품 유통 · 프랜차이즈 외식 & 유망 창업아이템의 모든 것
/사진=이미지투데이 @머니S MNB, 식품 유통 · 프랜차이즈 외식 & 유망 창업아이템의 모든 것

◆ “물=돈” 뜨거워지는 시장

기업들이 물시장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세 때문이다. 생수시장은 1995년 먹는물관리법이 제정되고 생수 판매가 합법화된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샘물협회에 따르면 2002년 2330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생수시장은 10년 만인 2013년 5400억원으로 커졌다. 지난해엔 7000억원에 육박했다. 15년 새 4배로 커진 셈. 2020년에는 1조원대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돗물에 불신이 커졌고 사먹는 물을 이상하게만 여기던 소비자들도 그냥 물이 아닌 좋은 물을 찾게 됐다”며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생수를 사먹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도 생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꾸준한 성장세에 힘입어 생수 종류도 다양해졌다. 대기업은 물론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체도 자사브랜드(PB)를 단 생수를 앞다퉈 내놓았다. 생수전쟁이란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최근 생수시장 진출을 선언한 정식품(심천수), 아워홈(지리산수), 신세계푸드(미정) 외에도 농심(백산수), 팔도(지리산 맑은샘), 롯데칠성음료(아이시스), 하이트진로음료(석수), 풀무원(풀무원샘물) 등이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오리온도 생수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과 대형마트는 일찌감치 PB제품으로 생수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마트는 이마트e블루와 봉평샘물, 홈플러스는 맑은샘물, 롯데마트는 초이스엘 등 PB생수를 판매하고 편의점 CU는 헤이루 미네랄워터, GS25는 함박웃음 맑은샘물, 세븐일레븐은 깊은산속 옹달샘물을 판다. 특히 편의점 PB생수는 연평균 20%씩 판매가 증가할 정도로 효자 상품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가격에 비해 제조원가가 낮은 점도 기업이 생수시장에 뛰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생수는 취수시설을 개발할 때 드는 비용과 생수 판매이익의 20%를 공제하는 세금 외에는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2리터짜리 생수 한병에 들어가는 수질개선부담금 4.4원, 뚜껑 2원 등을 포함해 생수 한통의 제조원가가 70~80원 정도”라며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하는 데다 제조원가까지 낮으니 너도나도 해볼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신규 업체와 기존 업체간 주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연말에 국내 1위 먹는 샘물 ‘제주 삼다수’의 판권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때문. 삼다수는 1998년 출시 이후 생수시장에서 부동의 1위(점유율 45%)를 고수해온 브랜드다.

삼다수는 제주개발공사가 생산해 4년 동안 위탁판매할 업체를 선정하는데 올해 말 광동제약과의 위탁판매계약이 종료된다. 삼다수 판권을 손에 넣으면 단숨에 생수시장 1위 업체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눈독들이는 업체가 많다. 실제 2012년 입찰 당시 광동제약 외에 CJ제일제당, 롯데칠성음료, 코카콜라음료, 아워홈, 남양유업, 웅진식품, 샘표 등 다수 업체가 참여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도 이런 경쟁이 재현될 조짐”이라며 “삼다수 판권이 향후 생수시장 재편의 주요 요소이기 때문에 아예 연말 삼다수 입찰 경쟁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미리 생수시장에 진출한 업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같은 물, 다른 가격

하지만 시장 진출 과열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영업이익률이 낮아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수익이 날 수 있는 생수사업의 특성상 여러 업체가 각축전을 벌일 경우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뛰어들고 보자는 식의 사업진출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도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천차만별인 가격이다. 효능과 맛을 가늠할 수 없는 물이 브랜드에 따라 두배가 넘는 가격 차이를 보인다. 한국샘물협회에 따르면 삼다수와 이마트 PB제품 생수의 경우 각각 910원과 483원(2ℓ)에 판매된다.

더 황당한 것은 한 수원지에서 퍼낸 물이 각각 다른 이름을 달고 비싸게 팔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 경기도 연천군, 충북 옥천군 등 같은 지역 취수원에서 뽑은 샘물이 상표만 바꿔 달아 여러 제품으로 유통 중이다. 가격은 850원, 680원, 550원으로 제각각이다.  

생수업체 한 관계자는 “가격에는 유통비용의 차이가 반영됐다”면서도 “그보단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자제품은 가격에 따라 성능이나 디자인이 차별화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생수는 맛이나 효능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잣대가 없다”면서 “여러 업체가 가격 경쟁을 벌이다 결국 규모의 경제를 갖춘 상위 업체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설합본호(제472호·제4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