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유통업계의 화두는 단연 ‘중국’이었다. 수많은 유통업체가 만리장성을 두드렸고, 두드릴 예정이었다. 성공 사례는 비록 손에 꼽혔지만 업체들은 중국 신드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TV홈쇼핑업계도 마찬가지. CJ홈쇼핑(현 CJ오쇼핑), GS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빅3는 앞다퉈 대규모 투자를 결행했다. 당시 이들은 가장 매력적인 해외시장으로 어김없이 중국을 꼽았다. 


그들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 초반에 우려한 프로그램 제작방법, 중국인 소비성향, 배송 등의 문제가 하나하나 걸림돌로 작용했다. 여기에 최근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한 불똥이 홈쇼핑업계로 번지면서 더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머니포커S] 한국 홈쇼핑 ‘대륙 잔혹사’

◆ 금한령, 홈쇼핑까지 번져

홈쇼핑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지난해 말 한국연예인을 모델로 쓰는 상품이나 한국음악 등을 방송하지 말라는 구두 지침을 내린 이후 홈쇼핑을 통한 중국 내 한국 제품 판매가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홈쇼핑업체들은 그동안 국산제품을 판매할 때 한류스타를 모델로 내세우거나 국내 아이돌가수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베이징 등 주요 도시 홈쇼핑업체에 “한국 제품 편성을 줄이고 방송에 한국인 모델을 쓰면 안된다. 한국에서 제작된 자료화면도 내보내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제품 판매에 고충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CJ오쇼핑의 중국 내 합작법인인 동방CJ는 최근 쿠쿠 전기밥솥 판매방송에서 해당 제품의 광고모델인 배우 김수현의 이미지를 모두 삭제했다. 코웨이의 화장품브랜드 리엔케이 제품 판매방송을 내보낼 때도 배우 최지우가 출연한 영상을 제외시켰다.

일부 홈쇼핑은 한국 상품 판매를 줄이거나 판매를 아예 중단하기 시작했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홈쇼핑에서 한국제품을 팔지 말라는 얘기”라며 “지난해 말 이런 지침이 내려온 이후 시간당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귀띔했다.


중소기업 납품업체 한 관계자도 “최근까지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압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안다”며 “금한령이 장기화될 경우 홈쇼핑업체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뒤통수’ 치는 현지 합작사


더 큰 문제는 국내 홈쇼핑업체들이 중국 내에서 처한 상황이다. 그동안 중국 기업과 합작하는 형태로 중국에 진출했지만 합작사들의 지나친 요구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현대홈쇼핑은 합작사 가유홈쇼핑과의 갈등으로 지난해 4월부터 현대가유홈쇼핑의 판매방송을 못하고 있다. 가유홈쇼핑은 현대가유홈쇼핑이 매출과 이익 등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사업종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홈쇼핑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3개 홈쇼핑 법인을 운영하는 CJ오쇼핑도 2012년 동방CJ 지분 26% 중 11%를 현지 미디어사에 매각해야 했다. 사업이 순항하자 중국 측에서 지분 매각을 요구한 것이다.

롯데홈쇼핑도 중국 럭키파이에 대한 정리작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는 2010년 산둥럭키파이 등 15개 회사 지분을 보유한 중간 지주회사인 럭키파이를 1900억원에 사들였다. 인수대금 중 1200억원이 웃돈(영업권)이었다. 거액을 투자했지만 경영권을 확보하진 못했다. 3년 만에 인수한 회사들이 부실 회사로 전락하자 업계에선 “롯데가 중국에 속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더구나 롯데홈쇼핑은 중국 내에서 5년간 물건을 팔았지만 현금으로 회수하지 못하고 채권만 쌓아둔 것으로 전해졌다.


◆ 신천지가 신기루로 전락

전문가들은 초반의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홈쇼핑업계의 중국 진출 바람은 국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홈쇼핑이 전무한 중국을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본 판단이 배경이었다.

하지만 위험변수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국의 방송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국영인 만큼 정부의 지휘감독 아래 프로그램이 제작되며 광고 하나하나까지 정부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또 외국회사에 방송채널 운영권을 주지 않으며 위탁형태로 경영권을 줄 뿐이다. 그만큼 국내업체의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

취약한 물류와 배송 인프라, 낙후된 결제시스템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집앞까지 배달되는 우리나라의 홈쇼핑 배송망과 넓은 땅덩어리를 지닌 중국과의 갭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또 ▲프로그램 제작방법이 우리와 매우 상이한 점 ▲직접 매장에 나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성향 등도 변수로 거론됐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일부 유통업체가 중국에서 홈쇼핑사업을 벌였지만 손을 털고 나온 것도 낙후성을 탈피하지 못한 취약한 배송망 때문”이라며 “초기 물류비용 때문에 오히려 판매가가 국내보다 20% 이상 높아지고 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어 의외의 대량 재고가 쌓이는 등 변수가 적지 않았던 만큼 진출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사드 문제 등 실질적인 위험요소가 산적해 미래 전망도 불확실하다. 중국 내 홈쇼핑 관계자는 “제품에 따라 판매량이 다르지만 중국 홈쇼핑채널에서는 1시간 동안 방송해도 100개 미만으로 팔리는 경우도 있다”며 “한국 제품의 통관까지 까다로워지는 가운데 중국이 또 어떤 옥죄기 카드를 쓸지 알 수 없어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