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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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외국계 투기 자본이 국내기업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4일 ‘감사위원 분리선출·집중투표제 도입 시 이사회 구성 주요 기업의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내고 외국자본의 국내기업 이사회 장악 우려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 도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경연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도입 시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이사 한 명을 무조건 이사회에 포진할 수 있는 기업은 10대 기업 중 절반에 달했다. 특히 매출액 기준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에서 이사를 선임할 경우 외국기관이 연합해 이들이 선호하는 이사 최소 1인을 선임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요청하면 주주총회에서 투표를 실시해 표를 많이 얻은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제도다. 이사를 뽑을 때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지 않고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한다.


예컨대 5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당 5개의 의결권이 주어지는데 이때 주주는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후보에게 5표를 모두 몰아줄 수도 있고 여러 명의 후보에게 분산 투표할 수도 있다.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부터 순차적으로 이사에 선임되는 방식이다.

한경연은 헤지펀드가 이 같은 집중투표제를 악용할 수 있다고 본다. 칼아이칸과 엘리엇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06년 칼아이칸은 다른 헤지펀드와 연합해 KT&G 주식 6.59% 매입했다. 칼아이칸은 당시 KT&G의 집중투표제를 악용해 헤지펀드 측 사외이사 1인을 이사회에 진출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칼아이칸은 KT&G에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회계장부 제출, 자회사인 한국인삼 공사의 기업공개 등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총 2조8000억 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했고, 칼아이칸은 12월 주식매각 차익 1358억과 배당금 124억 등 총 1482억 차익을 취득한 뒤 떠나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헤지펀드 엘리엇도 2012년 미국의 우량기업인 BMC소프트웨어 지분 9%를 취득 한 후 경영에 개입해 이사 10인 중 2인을 자기 사람으로 교체했다. 이를 발판으로 엘리엇은 끊임없이 회사 매각을 요구했고 결국 BMC소프트웨어는 2013년에 사모펀드에 넘어갔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과거에는 헤지펀드들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이사회 과반수를 장악한 후 핵심 자산을 매각하여 단기 이익을 극대화 하는 기업사냥꾼이란 인식이 강했다”며 “최근에는 대상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지분만을 확보하고 자기 사람 1~2명만을 이사회 진출시켜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주요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하도록 해 주가를 상승시켜 차익을 취득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 도입 시 10대 기업 중 6곳은 헤지펀드 등 외국계 투자자들이 연합해 기업 당 3~5명 가량의 감사위원을 교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총수와 임원 등 내부자, 전략적 투자자(주식 대량 보유 개인, 연합기업), 연기금을 포함한 국내기관투자자를 합쳐도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기아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의 경우 외국 기관이 요구하는 감사위원을 모두 선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윤경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감사위원 선출 등 의결권 대결에 있어 현실적으로 대주주 등 국내 투자자들은 3% 의결권 제한을 크게 받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엘리엇 매니지먼트, 소버린 등 단기투기자본으로 알려진 기관투자자는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외국계 연합의 실체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