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와 약가를 책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현직 위원간의 뒷거래 정황이 포착됐다. 제약사로부터 뒷돈을 받은 심평원 위원이 신약 건강보험급여 등재와 가격결정 과정에서 내부정보를 제약사에 제공하고 약가가 높게 산정되도록 힘을 쓴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된 것. 이는 제약업계에 만연한 제약사-의·약사간 리베이트 거래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불법행위다. 특히 이번 사건은 심평원의 공정성을 뒤흔드는 사건인 만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뒷돈 받은 심평원 전·현직위원 ‘덜미’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은 지난달 27일 심평원 상근위원들의 의약품 심사 관련 비리 등을 수사한 결과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상근위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비상근위원으로 재직하며 신약 건강보험급여 등재, 약가 결정 과정에서 특정 제약사에 유리한 약가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뇌물 3800만원을 약속받고 1억원가량의 현금과 자문료 등을 수수한 모 대학교 임상약학대학원장 A씨(61)를 뇌물·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사진=머니S DB
/사진=머니S DB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1월부터 2015년까지 제약사 임직원들에게 심평원 신약 등재 심사정보를 제공해 주고, 약가를 높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현금 8000만원 및 술값, 호텔마사지비·식대·골프비 2000만원가량 등을 수수했다. 또 그는 B제약사로부터 보험약가를 높게 받게 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은 대가로 3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법인카드, 여행경비, 골프비 등 1390만원을 수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A씨는 심평원 심사위원 신분으로 원가 140원 정도되는 B사 신약을 400원 이상이 되도록 도와줄 경우 성과급 3000만원을 지급 받기로 약속하는 등 신약 등재와 약가 결정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키는 범행을 저질렀다”며 “심평원 위원직 임기가 만료된 이후에는 제약사의 신약 등재 관련 용역 업무를 수행하며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상근위원 C씨(의사)에게 약 600만원의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A씨는 심평원 위원 재직 중 업무와 관련된 4개 제약회사로부터 연구용역을 유치해 소속대학 산학협력단이 4억1000만원가량을 수수하게 한 사실도 확인됐다. 다만 이 혐의는 형법상 제3자 배임수재 처벌규정이 신설(2016년 5월29일)되기 이전의 범행이어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A씨의 구속 기소에 따라 그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제공한 C씨, 뇌물을 건넨 B·D·L 제약사 고위인사들도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휴온스, LG생명과학(현 LG화학 생명과학부) 본사를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당시 제약업계에서는 기존 리베이트 혐의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약가 산정 과정의 불법로비가 문제였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무너진 신뢰… 재발 방지책 마련 분주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평원 심사 관련 내부통제시스템을 점검하고 유사비리 발생을 차단할 보완책 마련 필요성을 확인했다”며 “심평원에 비위사실을 통보하고 관련 제도개선 필요성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심평원 측은 검찰 수사 결과 내부인사의 중대한 비리가 확인된 만큼 재발 방지책을 포함한 입장자료를 조만간 발표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업계에선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제약사에 내려질 처분과 그에 따른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국내 상위제약사 한 관계자는 “심평원은 병·의원이 청구한 진료내역심사, 제약사 개발 신약에 대한 보험 급여 등재 및 보험약가 결정, 각종 의약품 유통관리 등 의·약분야의 각종 심사·평가업무를 담당한다”며 “심평원이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뒷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의약품 급여 심사 자체와 제약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제약사는 결정권을 가진 기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과도한 경쟁과 일부 관계자의 일탈이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를 야기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심평원 연루 불법 영업행위 외에 모 제약사로부터 주사제 처방, 판매 확대 청탁 대가로 2회에 걸쳐 현금 1억2000만원을 수수한(의료법 위반) 부산지역의 모 병원장 E씨(47)도 지난해 12월 구속기소했다. 또 해당 제약사로부터 성장호르몬제 처방, 판매 확대 청탁 대가로 18회에 걸쳐 현금 1억100만원을 받은 서울 모 병원 의사 F씨(70)를 지난달 24일 불구속기소했다.

리베이트 쌍벌죄·투아웃제 도입 등 불법 영업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에도 여전히 리베이트 영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방식의 불법행위까지 등장한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노바티스 불법 리베이트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국내외 제약사 모두 아직은 리베이트 영업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며 “실제 리베이트 영업이 적발되더라도 리베이트 규모에 비해 벌금이 훨씬 적은 경우가 많은데 리베이트 적발 시 해당 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 차단, 벌금액 인상 등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