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티 베이론 슈퍼스포츠 /사진=부가티 제공
부가티 베이론 슈퍼스포츠 /사진=부가티 제공

시속 430㎞. 2010년 부가티 베이론 슈퍼스포츠가 넘어선 속도다. 당시 이 차는 최고시속 431㎞를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W형 16기통 8.0리터 엔진에 쿼드터보가 힘을 보태 무려 1200마력(hp)의 성능을 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2.9초. 가속할 땐 1.4G의 횡가속도를 견뎌야 한다. 차의 성능도 놀랍지만 이 차를 다루는 운전자도 일반인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자동차가 아니라 비행기에 가깝다.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차의 자세를 잡아주는 스포일러는 비행기 날개의 역방향으로 설계된다. 빠른 속도로 달릴 때 하체에 생기는 양력을 억제하기 위해 공기의 힘을 활용, 차체를 꾹 눌러 주행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와 함께 네 바퀴 모두에 힘을 줘서 최대한 접지력을 높였고 이런 힘을 견디는 특별한 타이어도 장착했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요건을 모두 갖춰 놀라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형태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시속 430㎞를 목표로 만들어진 차가 있다. 글로벌 고속철도시장을 겨냥해 개발, 시운전까지 성공한 동력분산식 열차 HEMU-430X(해무)다.

시속 300㎞를 넘나들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2시간30분 시대를 연 고속철도 ‘KTX’는 프랑스 알스톰사가 만든 TGV(떼제베)와 같은 모델이다. 이후 KTX를 국산화한 KTX-산천(I, II)이 투입됐지만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HEMU-430X는 구조를 바꿈으로써 기존의 여러 한계를 뛰어넘은 독보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베이론과 공통점이 있다.


◆더 빨라졌지만 여러바퀴로 안심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4륜구동차의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산이 많고 비와 눈이 잦은 기후의 영향이 크다. 굽은 길, 미끄러운 길에서도 동력을 노면에 최대한 골고루 전달할 수 있어 인기가 식지 않는다.


동력분산식 열차 /사진=코레일 제공
동력분산식 열차 /사진=코레일 제공

비슷한 이유로 세계 고속철시장에서는 연평균 발주량 중 75%를 차지할 만큼 동력분산식이 대세다. 현대로템에 따르면 동력분산식 고속철은 열차 앞·뒤칸에 동력장치가 없어 열차 전체에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객실로 구성할 수 있다. 또 엔진이 고르게 배치돼 선로와의 접지력이 늘고 가·감속 성능이 크게 개선된다.

앞서 설명했듯 HEMU-430X와 KTX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력의 집중(또는 분산) 여부다. KTX는 동력집중식으로 힘을 내는 동력차가 객차를 끄는 형태다. 이와는 달리 동력분산식인 HEMU-430X는 동력차를 따로 두지 않고 객차 아래 동력장치를 나눠 설치한 게 특징이다.

KTX-산천은 시속 300㎞에 도달하는 데 316초가 걸리지만 KTX와 최고시속이 비슷한 동력분산식 열차는 230초가 걸린다. 역간 거리가 짧고 곡선구간이 많은 우리나라 선로에 최적화됐다는 평이다.


자동차로 치면 앞바퀴굴림방식(전륜구동) 또는 뒷바퀴굴림방식(후륜구동)과 네바퀴굴림방식(4륜구동) 등 구동방식에 따른 가속성능을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HEMU-430X) /사진=머니투데이DB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HEMU-430X) /사진=머니투데이DB

조만간 우리나라 철길을 달릴 동력분산식 고속철도는 시속 350㎞급이다. HEMU-430X를 개발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활용, 양산형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레이싱카나 고성능 스포츠카에서 쌓은 노하우를 양산형 차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기술이전방식이다.

또한 고속철도의 앞뒤 열차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갖췄지만 자동차처럼 거추장스러운 ‘날개’가 필요없다. 자동차와 달리 수백명이 한꺼번에 탑승하는 데다 상당부분 부품이 무거운 철로 만들어져 양력보다 중력이 커서다.

최근 고성능 스포츠카는 4륜구동방식이 대부분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의 성능을 즐기면서도 안전을 함께 챙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동차와 목적이 조금 다르지만 고속철도 역시 운송효율을 높이기 위해 동력을 분산했고 결과적으로는 운동 성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슈퍼카와 고속철의 속도 향상 비결은 결국 같은 곳에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