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거주하는 직장인 42만명이 매일 1시간30분을 출퇴근하는데 보낸다. 1년으로 계산하면 17일에 달하는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는 셈이다. 정부가 경기도민들의 편리한 출퇴근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제도 등을 시행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머니S>가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실태를 살펴보고 국토부의 새 철도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와 우려를 들어봤다.<편집자주>

"가방이 꽤 크네. 너 오늘 고생 좀 하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월요일 오전 7시20분. 출근버스 동행취재를 위해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 광화문 회사로 출근하는 친구 A를 정류장에서 만났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기자의 백팩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버스에서 백팩이 나를 힘들게 할 거란 얘기였다. 가방 무게 탓에 힘이 들 내 어깨를 걱정하는 듯했다. 일단은 웃어넘겼다.


그는 분당 율동공원 건너편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1150번 버스를 탄다. 정류장에 도착한 지 5분 만에 버스가 왔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는 기쁨도 잠시, 버스 안에 가득 서 있는 승객과 승차를 위해 우르르 달려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에 걱정스런 마음이 생겼다. 친구가 기자의 팔을 잡고 속삭인다. "야 뛰어. 늦으면 타지도 못해." 그렇게 기자는 간신히 1150번 버스에 올라섰다. 입구까지 승객이 가득 차 교통카드를 찍기도 버거웠다. 바닥은 승객들이 들고 탄 우산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흥건했다. 전쟁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사진=김정훈 기자
/사진=김정훈 기자

◆'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현실

1150번 버스는 용인에 위치한 한국외국어대학교가 기점이다. 그곳에서 출발해 경기 광주시 신현리를 거쳐 분당을 지나 광화문으로 향한다. 분당에 버스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용인·광주시민들이 좌석을 점령한 후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지만 적어도 이 버스에서만큼은 용인·광주시민이 분당시민의 부러움을 산다. 친구는 넋두리를 쏟아냈다.

"4~5년 전에는 1150번 버스에 이 정도로 사람이 많진 않았어. 가끔 운이 좋으면 앉아서 가기도 했거든. 그런데 광주나 용인 인근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면서 인구가 많아진 거지. 이제는 새 아파트 분양 소식이 들리면 덜컥 겁부터 난다니까. 오늘은 운이 좋아 탔지만 버스에 승객이 꽉 차 못탈 때도 많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앉아서 갈 수 있게 분당이 아닌 용인에 집을 얻을 걸 그랬어."


버스는 분당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서현역에 도착했다. 일부 승객이 하차를 위해 움직인다. 우리가 탄 버스는 입출구가 하나인 탓에 하차승객이 앞으로 몰렸다. 그 순간 몸집이 제법 나가는 기자의 백팩이 하차하는 승객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친구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좁디좁은 버스 안에서 백팩은 민폐 그 자체였다.


/사진=김정훈 기자
/사진=김정훈 기자

뒷문이 없는 버스가 많은 이유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수도권 출퇴근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당시 광역버스 입석금지제를 시행했다. 그 부담은 버스회사 몫이었다. 버스 공급에 애를 먹던 버스회사들은 뒷문을 폐쇄하고 그 공간에 좌석을 만들었다. 또 부족한 버스 충당을 위해 버스회사들은 뒷문이 없는 관광버스 등을 임대해 출근시간대에만 광역버스로 이용했다. 뒷문 없는 광역버스가 도로를 다니게 된 이유다.

하차 승객에게 길을 터주던 기자의 백팩은 결국 앉아있던 50대 남성 승객의 머리를 건드렸다. 그런데 이 승객은 별일 아닌 양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런 일이 다반사인 듯했다. 서현역에서 내린 승객이 꽤 많았지만 버스는 여전히 만원이다. 내린 인원만큼 이곳에서 승객들이 승차한 탓이다. 그런데 이곳 풍경이 가관이다. 정류장에서부터 아파트단지 입구까지 줄이 이어져 있었다. 모두 강북으로 향하는 버스승객이었다. 얼굴에는 모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서라도 원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섞인 듯했다.

버스는 판교IC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했다. 비까지 내려 속도는 더욱 더뎠다. 당분간 정차역이 없어 앉을 희망조차 사라진 입석승객들은 모두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30여분을 서있던 기자의다리가 아파왔다. 친구는 한남대교까지 20~30분, 광화문까지는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귀띔했다.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만 1시간 이상이다. 


쪽잠을 청하거나 휴대폰 동영상을 시청하는 좌석승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친구가 왜 그토록 서울살이를 원하는지 체감했다.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느낌이다. 여기저기서 코골이 소리가 들렸다. 출근버스는 그렇게 피곤을 가득 싣고 서울로 향했다.

/사진=김정훈 기자
/사진=김정훈 기자

◆이유 있는 '퇴근 지옥'

저녁 7시. 퇴근 동행을 위해 친구를 을지로 인근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을지로입구역에서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1150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친구는 기자에게 "퇴근 때는 무조건 앉아서 갈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나쁜 소식도 있단다. "앉아서 갈 순 있어. 근데 출근 때보다 20~30분 더 걸려."


1150번 버스의 종착지이자 순환역은 서울역이다. 한국외대에서 출발해 서울역을 찍고 다시 출고지로 돌아온다. 을지로 정류장에서 귀가버스를 타도 집 방향과 반대인 서울역을 한번은 거치고 와야 한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경기광역버스는 이용승객이 많은 서울역이 종착지다. 따라서 퇴근은 출근 때보다 10~20분 더 소요된다.

퇴근 러시아워에 걸려 차가 막히는 점도 변수다. 특히 한남대교로 향하기 전 지나야 하는 남산1호터널은 지독한 교통체증으로 유명하다. 경부고속도로도 퇴근시간이면 나들목(IC)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기가 버겁다.


"한번은 차가 막혀 남산1호터널에서만 20분 이상 갇힌 적도 있어. 앉아서 가는 대신 버스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고통이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휴대폰을 잘 안보잖냐. 책을 읽자니 멀미가 나고… 잠만 잔다, 잠만."

분당은 경기도에서도 비교적 교통편이 잘 갖춰진 도시다. 지하철 신분당선·분당선이 있어 강남 접근성이 좋고 강북으로 가는 버스도 많은 편이다. 다만 넘쳐나는 승객을 버스가 모두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일부 정류장 승객은 앉아서 가는 것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분당이 이 정도면 타 도시의 출퇴근도 쉽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승차 1시간20여분 만에 율동공원 정류장에 도착했다. 퇴근 후 정류장으로 가는 시간,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 등을 계산하면 친구가 회사를 출발해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출근시간과 합치면 하루 중 2~3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한 셈이다. 

시계는 어느덧 밤 9시를 가리켰다. 친구와 집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술잔을 기울였다. 몸도 몸이지만 출·퇴근 전쟁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지쳐간다는 친구. '버스 쪽잠'이 많아져 체력은 좋아졌다는 우스갯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 밤이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9호(2017년 8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