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대한민국] 외벌이도 맞벌이도 힘든 2030세대
허주열 기자
13,812
2017.09.19 | 06:01:00
공유하기
#1. 30대 중반의 워킹맘 A씨는 지난해 초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복직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하려 했지만 대기자가 너무 많아 민간업체를 통해 베이비시터를 구했다. 평일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아기를 돌보는 대가로 월 16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본인과 남편 모두 야근이 잦아 추가수당을 주는 경우가 많다. 베이비시터비용과 출퇴근비용 등을 감안하면 A씨의 월급 중 손에 남는 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대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되기에는 그간 공부하고 일한 게 아까워 여기서 멈출 수 없다.
#2. 경기도 부천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B씨(32)는 외벌이로 본인과 아내, 두 딸 등 4명의 생계를 책임진다. 직장동료였던 아내는 첫째를 임신한 후 9개월 때까지 일하고 직장을 그만둔 뒤 전업주부가 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는 B씨 아내에겐 먼 나라 얘기였다. 2년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고 어깨가 더 무거워진 B씨는 주말에도 근무를 자처해 주 6일 이상 일한다. 쉬는 날엔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아주다 지쳐 잠들면 어느새 출근시간이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인 경우 초저출산 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16년째 초저출산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국민들이 아기를 낳기 싫어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의 희망출산율은 각각 2.25명, 2.00명으로 합계출산율보다 훨씬 높다. 아기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 여건이 안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올해 새로운 부모 72만명, 행복하지 않다
그럼에도 출산을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매년 줄지만 올해에도 36만명가량이 태어날 전망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72만명이 새로운 부모가 된다.
아이 낳을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 나은 상황이지만 출산을 선택한 부모의 삶도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기 힘든 환경적 요인은 차치하더라도 육아에는 상당한 금전적 지출뿐 아니라 막대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 |
/사진=이미지투데이 |
맞벌이부부와 외벌이부부는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선 맞벌이부부는 출산 직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일하는 동안 아이를 부모에게 맡길지, 베이비시터를 고용할지 선택해야 한다. 물론 친가나 처가에서 아이를 봐주겠다고 할 때가 더 낫다.
올 초 6개월간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30대 초반의 C씨는 결혼 전부터 출산할 경우에 대비해 친정집 근처로 신혼집을 얻었다. 첫째 출산 후 친정어머니와 육아를 함께하던 C씨는 본인과 남편 모두 야근이 잦은 탓에 복직 후 평일은 거의 아이 얼굴을 보지 못한다. 금요일 퇴근 후에야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일요일 저녁까지 돌본다. 베이비시터에게 맡겼다면 불안했을 테지만 자신을 키운 부모에게 아이를 맡겨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이 근처에 살지 않거나 손주 육아를 거부할 경우 맞벌이부부의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시급 8000~1만2000원을 지불하고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 정부에서 비용 중 최대 75%를 부담하는 아이돌보미사업을 실시 중이지만 혜택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가 고용한 아이돌보미는 전국적으로 1만9000여명에 불과해 신청 후 혜택을 받으려면 대부분 최소 1~2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베이비시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아이의 유치원·초등학교 등하교를 도와주는 ‘등하원 도우미’를 구하기도 하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를 맡길 시설도 부족하다. 2015년 기준 전국 어린이집 유형별 비중은 ▲국공립어린이집 6.2% ▲사회복지법인 3.3% ▲법인단체 2.0% ▲민간개인 34.4% ▲가정 51.9% ▲직장 1.8% ▲협동조합 0.4% 등이다. 따라서 부모가 선호하는 국공립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은 전체 보육아동의 11.4%에 불과하며 75.2%가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가정어린이집을 이용한다.
결국 부모들은 대부분 임신육아종합포털사이트에서 집 근처 국공립어린이집을 찾아 입소대기를 걸어놓고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민간·가정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보낸다.
유치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공립 유치원수는 4678개(52.4%)로 사립(4252개, 47.6%)보다 많지만 원아 수를 비교하면 국공립은 23.6%, 사립이 76.4%다.
믿을 만한 시설도 부족하지만 육아할 시간 자체가 부족한 맞벌이부부도 많다. 한국의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한다.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대다수 육아부부는 퇴근 후 밀린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 지쳐 잠이 든다.
◆일과 가정 양립 어려워… 초저출산 사회
외벌이부부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한정된 수입으로 가족 3~4명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이른바 잘나가는 자영업자, 고소득전문직, 공기업·대기업 직장인 등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지만 매달 적자가 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아빠가 많다. 이들은 이 전쟁의 결말을 알지 못한 채 고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문가들은 어렵게 출산을 선택한 부모가 추가 출산을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여성의 사회참여가 더 높아져야 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지원과 함께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OECD 국가 비교 연구를 보면 출산 수준이 높은 국가의 여성취업률이 높은데 이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야 출산율이 높다는 의미”라며 “현금·보육서비스·시간 지원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해 저출산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6호(2017년 9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