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복지정책이 얼마나 선진화됐는지 궁금하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비스수준을 보면 된다. 노인·아동·여성·장애인 등은 우리 사회에서 신체·경제적으로 약자일 뿐 아니라 제도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다. 유례없이 고령화 속도가 빨라 노후빈곤이 심각한 대한민국에서 여성·장애인의 노후빈곤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머니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연중기획시리즈 ‘노후빈곤, 길을 찾다’를 마련했다. 이번호에는 ‘여성·장애인의 노후빈곤’ 문제를 파헤쳤다. 여성·장애인의 길 위의 삶부터 성범죄와 임금착취의 현실을 살펴보고 새정부의 복지정책을 들여다봤다. 또 전문가를 만나 해법도 들어봤다.<편집자주>



#1. “너 혹시 임신했니?” “그런 것 같아” 지난 8월23일 장대비가 내리던 오후. 서울 용산구 주택가의 한 공원에서 50대로 추정되는 두 여성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 평소 공원에서 기거하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기에 두 사람이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자가 다가가 “이 동네 사신 지 오래됐나요”라고 묻자 그들은 대답 없이 떠났다. 서울역 노숙인지원단체 관계자는 “여성노숙인들이 성폭행과 임신 등에 노출되기도 하고 아기를 낳아서 지자체 지원금을 받은 후 유기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의 안전이 위태롭다”고 설명했다.

#2.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김지영씨(78·가명)는 지체장애 2급인 아들과 함께 산다. 두 사람은 외출도 하지 않고 쓰레기더미에 갇혀 살며 지자체의 도움마저 거부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지자체 직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김씨 모자를 설득해 청소와 반찬 등을 지원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해 신뢰를 쌓았다”며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는 복지서비스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박세연 기자
/사진=뉴시스 박세연 기자

여성빈곤층과 장애인은 사회·경제적으로 최하위계층에 속한다. 노동의 의지가 있어도 신체적 약자라 일하기 어렵고 일자리를 얻어도 차별받기 십상이다. 이들 대부분은 노후에도 정부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 특히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와 이로 인한 임신문제도 심각하다.


◆‘길 위의 삶’ 잇는 여성·장애인

2010년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노숙인정책의 성별영향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노숙인은 60%가 실직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반면 여성노숙인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46.7%) 외에 가족문제(43.3%)도 빈곤의 주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문제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정신질환에 의한 갈등 등이 포함된다.


보고서는 여성노숙인의 80~90%가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밝혔다. 남성노숙인의 18.6%, 재활시설 이용자의 32.8%가 정신질환을 앓는 데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여성이면서 장애인인 경우 가정 안에서조차 보호가 아닌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가 여성장애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44명(68.8%)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노후에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젊은 시절에도 고용과 임금의 차별을 받으며 노후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나이가 들수록 임금착취의 정도가 더 심해져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16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2.4%로 남성장애인보다 27.9%포인트나 낮았다. 고용의 질도 떨어진다. 여성장애인의 비정규직 비율은 72.2%로 남성장애인보다 14.8%포인트 높았다. 여성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은 102만2000원으로 남성장애인 임금(190만8000원)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경우다. 만약 여성·장애인이 길거리생활을 하다가 성폭행이나 성매매로 자식을 낳으면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노숙인 2세로 태어난 아이가 보호시설로 보내지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길 위의 삶’을 잇게 되면 결국은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를 더 키울 수밖에 없다. 민소영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정책을 자활이나 취업에 집중하다 보니 성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하다”며 “이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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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지자체 투트랙지원 필요

여성·장애인의 노후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경제적인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원정책을 운영하느냐다. 현재 노숙인 지원정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이원화돼 이를 통합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테면 중앙정부는 시설 지원을 위한 예산을 늘리고 지자체는 노숙인 관리와 찾아가는 복지서비스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가가 노숙 위기에 처한 여성을 보호하는 시설을 확대하고 노숙인 지원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여성노숙인의 독립된 보호시설이 부족한 데다 지원 자체가 남성에 맞춰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복지선진국, 여성·장애인 권리존중

복지선진국에서는 취약계층의 노후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정부지원 외에도 전문후견인제도 등을 도입해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독일은 정부가 전문후견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일본은 지자체와 지역커뮤니티의 후견사업이 활성화됐다.

이현곤 새올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한국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는 재산관리능력이 부족한 장애인과 저소득 노인들이 전문후견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특히 치매나 정신장애를 앓는 독거노인 중에는 정부에서 지원받는 연금마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많아 복지재원이 제대로 쓰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가족후견인이 많고 전문후견인의 비율이 낮은데 앞으로는 공공후견인을 지원하는 정책이 많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신체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차별금지도 중요한 과제다. UN의 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사람의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을 보장한다. 우리 정부의 아동권리헌장도 UN 협약에 따라 모든 아동이 출신이나 배경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사회와 국가는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3호(2017년 8월30일~9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