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사실상 단독후보로 연임이 확정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지난 14일 사실상 단독후보로 연임이 확정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금융지주사와 노동조합이 최고경영자(CEO) 인선을 놓고 충돌했다. 차기 회장 인선작업을 진행 중인 금융회사는 노조와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고 이미 내정된 곳은 노조가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 금융회사와 노조 간 대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번 CEO 선임과정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합리적인 주장일까, 악습의 반복일까.

◆영향력 키우는 노조… 곤혹스런 경영진

차기 회장 선임을 두고 갈등이 증폭된 곳은 KB금융지주다. KB금융 노조는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을 업무방해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KB금융 노조는 “사용자 측이 지난 5~6일 윤 회장 연임 찬반투표를 진행했을 때 단말기 17대를 이용, 중복응답 형태로 찬성표를 늘러 여론왜곡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KB금융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KB금융 관계자는 “노조와 사측에서 이번 의혹을 놓고 공동조사를 요구할 것”이라며 “만약 노조가 제기한 의혹과 관련된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3년의 임기 동안 내부조직 안정화와 실적개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임 회장과 행장이 남긴 내부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오랜 숙원과제인 옛 LIG손해보험과 현대증권 인수에 성공하면서 비은행부문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내부직원의 신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KB금융 노조는 공개적으로 그의 연임을 반대했다. 이로 인해 차기 회장 인선작업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으나 다행히 이변은 없었다. KB금융지주 확대지배구조위원회(확대위)가 사실상 그를 새 회장으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KB금융 확대위는 지난 14일 오후 국민은행 명동 본점에서 회의를 열고 윤 회장을 비롯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등 3명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김 사장과 양 사장이 인터뷰를 고사하면서 윤 회장만 심층평가를 위한 면접을 보게 됐다. 사실상 단독후보로 오른 셈이다. 확대위는 오는 26일 3차 회의를 통해 윤 회장의 연임을 확정할 계획이다. KB금융 노조는 경영진에 지주 회장과 은행장 분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BNK금융지주는 낙하산 논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BNK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8일 새 회장으로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내정했다. 그는 오는 27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새 회장에 선임될 예정이다. 하지만 김 내정자 역시 노조와의 갈등으로 안갯속을 걷는 형국이 됐다. 김 내정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에서 경제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BNK금융 자회사인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노조는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부산은행 노조는 “낙하산 인사를 막지 못하면 시민과 상공인이 보듬어 키운 BNK금융이 정치권 꽃놀이패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며 “출근저지와 총파업 등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주총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김 내정자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지완 전 하나금융 부회장이 내정된 것은 보은인사”라며 “내정자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성수 신임 수출입은행장. /사진=뉴스1 DB
은성수 신임 수출입은행장. /사진=뉴스1 DB

◆도 넘은 밥그릇 싸움… 인사시스템도 문제


노조에 속앓이하는 곳은 금융지주뿐만이 아니다. 은성수 신임 수출입은행장도 노조의 반대로 나흘째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노조는 은 행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노조는 은 행장이 정부측 인사인 데다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시절 성과연봉제를 강하게 추진했다는 이유를 들어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최 위원장은 “물리력을 동원한 전형적인 갑질”이라며 “노조의 행동은 불합리하다. 왜 취임을 막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은 행장은 다행히 지난 15일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진통 끝에 정상출근했다. 현 행장에 임명된지 닷새만이다.


금융회사와 노조 간 갈등은 뿌리가 깊다. 국내 금융지주가 회장 선임절차를 밟을 때 노조와 갈등을 빚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전문가들은 노조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경영진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금융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소 연구위원은 “특정 금융회사가 잘했다,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며 “중요한 것은 낙하산 인사라 할지라도 충분한 자격요건과 경영능력을 갖췄다면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민간출신이든 정부출신이든 그 능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전 정권에선 낙하산 인사를 선임해도 노조가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이번 정권에선 유독 강하게 반대한다”며 “노조가 신뢰를 받으려면 일관성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꼬집었다.

금융회사가 노조와 갈등을 빚는 이유로 국내 금융권의 CEO 인사시스템과 관치금융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금융회사 CEO는 추천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임한다. 그런데 국내 금융회사는 추천위원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특정 후보가 낙점됐다는 설이 나온다”며 “이는 특정 인물을 밀어주기 위한 작업으로 의심받는다. 인선작업을 합리적으로 하려면 이 같은 문화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6호(2017년 9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