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식이 돈이 되는 시대다. 낙서하듯 그린 그림이 수백억원의 가치를 지닌 캐릭터로 탈바꿈하고 천문학적인 액수가 걸린 송사로 번지기도 한다.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을 손에 넣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퍼붓는 일도 흔하다. <머니S>가 한국 IP산업을 고찰했다. IP의 확장성과 정부의 대응책을 살펴보고 금융·IT업계의 현황도 점검했다. 아울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IP시장의 경쟁실태를 통해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지식재산권(IP) 산업이 크게 성장하며 이와 관련한 소송도 급증하는 추세다. 인류역사에서 오랜 시간 그 물질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지식’에 ‘소유’의 개념이 더해지니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국경과 문화에 따라 IP관련 법률과 인식이 달라서 불거진 분쟁도 많다. 따라서 산업계는 IP소송을 ‘비즈니스’로 인식한다. IP시대에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나의 재산권을 지키는 일도 중요해서다.


◆ 다양한 IP소송, 성격 파악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며 IP소송은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에 반해 국내기업들의 대응은 소극적입니다. 권한 출원과정에서부터 충분히 대비하지 않고 무효소송에도 취약하죠. 반대로 권한 침해 소송에 걸렸을 때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성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국내기업의 IP소송 대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공대를 졸업한 로스쿨 1기 출신 변호사로 특허청에서 심사관을 지내는 등 탄탄한 경력을 보유한 IP분야 전문변호사다. 바른은 최근 오 변호사와 같은 전문변호사를 대거 영입하는 등 IP분야 역량 강화에 적극적이다.

오 변호사는 “IP는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 디자인권 등 다양한데 각각의 권한은 성격이 다르다”며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각 권한의 성격에 맞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디자인권 소송을 회상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빌트인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디자인권 침해 금지 가처분 소송에 걸려 공급이 묶여버린 가구업체가 의뢰인이었다. 그는 해당 디자인권이 무효함을 주장하기 위해 이전에도 비슷한 디자인이 있었다는 걸 증명해야 했는데 디자인의 구성이 유사한 사례를 제시했음에도 번번이 기각돼 애를 먹었다.


오성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최윤신 기자
오성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최윤신 기자

이유를 찾기 위해 미술전공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심미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찾았던 사례들은 디자인의 구성이 상당히 유사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 디자인권을 기술특허와 동일한 선상에서 놓은 탓에 범한 오류였다. 결국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유사한 디자인으로 인정되는 사례를 해외에서 찾아 승소를 이끌어냈다.

오 변호사는 “디자인권뿐 아니라 상표권과 특허권, 저작권의 침해와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각기 다르다”며 “특허권은 기술개발 노력의 대가라고 볼 수 있고 상표권은 발명이나 창작보다 대중인지도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이런 성격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타적사용권’이라고 볼 수 있는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권한을 출원할 때부터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허 출원의 핵심은 ‘특허청구범위’다. 특허권자가 가지는 독점·배타권의 범위를 결정하는 사항인데 비용을 낮추기 위해, 혹은 빠른 출원을 위해 핵심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아무런 가치 없는 특허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다보니 특허 무효율이 과도하게 높다.

그는 “특허 출원 과정에서 제출하는 도면은 참고용일 뿐 ‘기술적 사상’이 그 가치의 핵심”이라며 “기술개발 이후 특허를 출원할 것이 아니라 개발과 동시에 특허출원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IP침해 배상, 현실성 고려돼야



국내기업들이 IP와 관련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에는 구조적 문제도 크다. 우선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많지 않다보니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실제로 업계에선 해외와 달리 국내의 특허권 침해에 대한 배상액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오 변호사는 “특허 침해에 대한 배상은 소극적 손해를 기준으로 산정되는데 우리나라 특허의 경우 시장이 크고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서 산정되는 배상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부터 시행된 특허법 132조 개정안을 통해 손해배상액 입증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허법 132조 개정안은 침해 소송시 소송 당사자에게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의무화하고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특허를 침해하고도 영업비밀을 사유로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제대로된 손해액이 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개선한 것.

악의적인 특허침해에 대해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오 변호사도 이에 대해 일부 동의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형사법상 특허침해죄가 있으므로 징벌적손해배상을 즉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비즈니스적 성격이 강한 특허법의 특성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형사처벌을 없애고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소송이 아니라 조정이나 중재 등 대안적 해결방안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조정과 중재는 당사자간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특허 침해가 고의적이지 않은 경우 전문가의 조정을 통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양측이 모두 상생할 수 있다. 특히 3심까지 갈 경우 수년이 소요되고 많은 비용이 드는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오 변호사는 “현 시점에서 특허권 등 IP는 비즈니스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며 “악의적인 침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강화하고 불가피한 영역에선 합리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우리나라 IP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3호(2017년 11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