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사진=머니S DB
한국투자증권. /사진=머니S DB

초대형 투자은행(IB)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시작으로 1년 넘게 추진한 것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 첫발을 내디딜 주인공은 인가를 신청한 5개사 중 한국투자증권으로 낙점됐다.

물론 모두 초대형 IB로 지정될 예정이지만 한국투자증권만 핵심사업인 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은 시장선점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증권사들도 사업인가를 받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내실을 다질 계획이다. 앞으로 시장의 승자는 누가 될까.

◆5개사 중 발행어음 ‘한투’ 먼저

지난 1일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한국투자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안을 통과시켰다. 이달 8일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인가안이 처리되면 한국투자증권은 그날부터 바로 어음을 발행해 자금조달이 가능해진다. 사실상 은행과 비슷하게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기업금융에 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단기금융업은 자기자본의 200%까지 발행어음을 조달할 수 있는 라이선스다. 자기자본 4조원을 웃도는 한국투자증권은 약 8조원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이는 주로 ELS(주가연계증권)나 RP(환매조건부채권)로 자금을 조달하는 한국투자증권의 새로운 자금 확보수단이 될 전망이다.

초대형 IB 인가를 신청한 다른 대형증권사 4곳(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KB증권·삼성증권)은 이날 초대형 IB 지정안에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단기금융업 인가에서는 빠졌다. 초대형 IB 지정은 대주주 적격성이 법적 요건은 아니지만 단기금융업 라이선스는 대주주에 대한 심사가 필요하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삼성증권을 제외한 3개 증권사의 단기금융업 인가를 검토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3곳도 곧 발행어음 업무를 허가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은 실질적 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단기금융업 인가 심사가 보류됐다.

앞서 5개 대형증권사들은 초대형 IB로 거듭나기 위해 덩치를 늘렸다. 20여년 전부터 국내 자본시장에서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IB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증권사들이 자기자본을 늘릴 생각을 하지 않자 금융당국이 쓴 고육지책이다. 초대형 IB 자본기준을 4조원, 8조원으로 정한 것의 근거가 명확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미래에셋대우는 대우증권을 인수하고 네이버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자기자본을 7조15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고객예탁자금을 통합해 운용하고 수익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IMA(종합투자계좌)업무를 할 수 있는 자기자본 8조원선에 가장 근접한 증권사다. NH투자증권은 2014년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부터 4조원을 넘겼고 KB증권도 현대증권과 통합하며 4조원대에 진입했다. 삼성증권은 33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자기자본 4조원을 맞췄다.

금융위 관계자는 “단기금융업 인가심사를 마친 한국투자증권이 먼저 증선위 안건에 상정됐다”며 “나머지 3곳도 인가심사를 진행 중이지만 언제 심사가 끝날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칼’ 가는 미래에셋·NH·KB

한국투자증권이 초대형 IB의 핵심인 발행어음사업을 시작하면 시장선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IB 신청 전 ‘종합금융투자실’이라는 운용부서를 신설해 사업을 준비했다. 따라서 금융위 정례회의를 통과한 후 빠른 시일 내에 1조원 규모까지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5개 대형사 중 유일하게 상반기 기준 연환산 ROE(자기자본이익률) 10%대를 기록했고 IB부문의 이익비중도 20%대에 달한다. 초대형 IB사업을 전개하기 좋은 조건이라는 얘기다.

강승건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발행어음 운용을 위한 자금조달과정에서 IB부서의 전체 이익 기여도가 높아질 전망”이라며 “내년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IB와 트레이딩 영역에서의 대형사 집중현상을 한국투자증권이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다른 증권사도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방안’이 발표된 후 초대형 IB에 진입하기 위해 1년간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는 합병 전 만든 초대형투자은행추진단을 본부로 격상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해왔다. 추진단에서는 늘어난 자기자본의 수익성 강화를 위해 기업 신용공여를 확대하고 중소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중이다. 또 SOC 투자, 인수금융, 해외 프로젝트금융 등의 영역을 확장할 방침이다.

NH투자증권도 지난해 12월부터 CFO 직속 TF를 설치하고 지난 6월에는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과 운용을 담당할 전략투자운용부를 신설했다. 초대형 IB 취지에 맞는 모험자본 공급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지난 7월 신기술사업금융업 인가도 취득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오는 8일 금융위 정례회의를 통과하면 NH투자증권은 초대형 IB로 지정되기 때문에 먼저 기업고객 대상 일반 환전업무부터 시작할 예정”이라며 “금융당국에서 단기금융 업무 관련 심사를 진행 중인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차분히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KB증권은 기업금융본부 내에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운용할 기업금융투자팀을 신설했다. 또 KB국민은행과 함께 기업금융 특화 복합점포인 CIB(기업투자금융)센터를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낼 방침이다. 은행으로 찾아오는 기업고객을 상대로 성장기업을 발굴하고 기업 생애주기에 맞는 종합금융서비스로 IB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3호(2017년 11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