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 혹은 달콤 ‘떡볶이도 요리다’라는 슬로건으로
강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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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 0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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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 혹은 달콤 <걸작떡볶이> 김복미 대표·정지상 본부장
론칭 2년 만에 전국 70여개 매장. 물론 매장 수를 빠르게 확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몇 백 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리고 브랜드를 걸작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서로의 곁을 한층 더 끈끈하게 지켜나가고 있을 뿐이다.
고교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일
“지금,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면접관 앞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늘 따뜻하고 평화로울 줄로만 알았던 가정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건강악화로 어느 날 갑자기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고 집안 살림까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대학진학 또한 꿈꿀 수 없게 돼버렸다. 딸만 다섯 중 막내.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도 모자라건만, 그녀는 모든 걸 혼자 해나가야만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부모님에게도 귀여운 투정 한 번 부릴 수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 때 잘 나가던 영화매거진 ‘스크린’에서 회계와 세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취직이 가장 쉬운 관리직을 찾게 된 거죠. 하지만 이 일을 어느 정도 배우고 알게 되니 스스로의 더 큰 발전이나 성장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이직을 했던 거 같아요.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에서부터 건설회사 등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에 몸담으며 각각의 기업문화, 수익구조와 재무상태 등등을 알게 됐지요. 그렇게 6년여 넘게 배웠던, 회계와 세무 관련 업무는 지금 <걸작떡볶이>를 경영하는데 있어서도 큰 기반이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한 가지 일만 오래 해오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아우르지 못하게 되는 단점이 생길 수 있다. 팀 또는 기업을 이끈다는 건,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업무들을 전체적으로 총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며 움직이는 일.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그녀는, 이것저것 다양한 기업문화와 업무들을 익히며 어릴 때부터 경영과 운영에 대한 기초적인 사항들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됐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도 홍보와 마케팅 관련서적들을 많이 찾아봤죠. 그 분야의 일을 너무 해보고 싶었거든요. 지하철 타고 2시간여 출퇴근을 하면서 홍보·마케팅 책들을 꾸준히 읽었어요. 그리고는 2005년, 스물여섯 되는 해였던가. 우연히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에 들어가게 됐고, 입사한지 3개월째 됐을 때 그 회사의 본부장님이 저를 불러 “홍보마케팅 일을 잘할 거 같은데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죠. 너무 뛸 듯이 기뻤어요.”
업무능력이라는 건 언제나 양면이 존재한다. 그 업무를 늘 해오던 사람은 기술적으로 능수능란하겠지만 새로운 걸 만들어 내거나 이를 뒷받침해줄 열정이 식어있을 수 있다. 반면, 그 업무를 간절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기술적으로 부족할지언정 새로운 시선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이를 뒷받침하는 에너지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일 테고. ‘언젠가는 홍보마케팅 일을 해보고 싶다’고 되뇌며 매순간 열심히 책 찾아 읽고 공부했던 스물여섯의 그녀는, 기다려왔던 기회를 이렇게 꽉 붙들게 된다.
월급만 받고 사는 건 내 성향 아니니까
그녀는, 블로그와 SNS 등의 바이럴 마케팅에서부터 방송과 신문, 매거진 등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관련 업무들을 맡기 시작했다. 누구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 하나 없었기에 모든 걸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히고 실패하며 배워나갔다.
“한 달 중 15~20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매일 밤을 새웠죠. 그래도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독특하고 재미있는 주제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각 방송국 작가들에게 배포한 후 방송출연섭외를 받기도 하고, 제가 직접 구상·기획한 형식으로 홈페이지와 SNS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어떠한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으니 일하는 재미에도 푹 빠져있었죠. 그러다가 2007년, 스물여덟 되던 해에 불가피하게 퇴사를 하게 됐어요. 한 때 150여개 매장을 오픈, 운영하기도 했던 유명 외식브랜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빠르게 성장했다가 또 그만큼의 속도로 쇠락해가는 걸 보면서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한 후엔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백 명 직원들이 소속된, 급식·외식·식재료유통사업을 하는 큰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도 자체 공모전을 기획, 진행하거나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 했지만 너무나 안정적인 곳이어서였는지 그녀는 이내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한 곳에서 정체되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뭔가 더 큰 것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2년 정도 다녔을까. 서른한 살에 무작정 회사를 박차고 나왔어요. 월급만 받고 사는 건 내 성향이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홍보대행사를 직접 운영해볼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그보다는 남편과 함께 직접 외식브랜드를 만들어 시작해보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걸작떡볶이>의 정지상 본부장이 바로 그의 남편. 26~27세에 직접 자신의 매장을 운영하며 치킨 맛을 내는데 있어 자신만의 노하우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첫 매장이 잘 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사내커플로 우연히 그녀를 만나 업무·사업적인 파트너십으로까지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운영전략과 홍보 및 마케팅은 김복미 대표가, 메뉴개발과 구성 등의 부분은 정지상 본부장이 나눠 맡으면서 그들만의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구상, 준비하게 된다.
신혼집 보증금으로 11평짜리 치킨 집 오픈
드디어 2010년, 일산에 36.3m²(11평)짜리 치킨 집을 오픈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 권리금 700만원을 주고 들어간 곳인데, 신혼집을 얻기 위해 마련한 보증금까지 전부 이곳에 썼다. 첫 달 매출은 1500~2000만원.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작은 규모의 매장인데다 둘이서 처음 시작한 것이기에 이 정도 매출이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스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노력의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았다.
“첫 매장은 <오플치킨>이라는 상호였어요. 기능성 치킨이 가능성 있겠다고 생각해서 ‘오메가3플러스’를 첨가해 만들었죠. 그래서 이름도 <오플치킨>이었고요. 그런데 기능성 치킨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메뉴구성을 살짝 변경한 것이 배달 중심의 돈가스·스테이크 전문점이었지요. 탕수육과 닭 강정을 아이템으로 한 <한입쏙치킨>이라는 브랜드로 또 한 번 변화도 줬었고요. 그렇게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저희는 매출이 얼마 나오는지가 아니라 향후 가맹사업으로의 확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단순히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크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거죠. 게다가 홍보마케팅전문가와 치킨전문가가 만났는데, 그냥 그런 결과물로는 흡족하지가 않았어요.”
그 중에서도 <한입쏙치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숍인숍으로 창업할 수도 있게 만든 브랜드였기에 한 때 전국 40여개 매장을 오픈, 운영할 정도로 이와 관련한 물류와 유통까지 안정적으로 확대시켜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정통 브랜드’를 선보이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더 나아가 유명 치킨 브랜드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시장 안에서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어려울 거라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1990년대부터 제공형태와 메뉴단위, 맛 등등의 카테고리별로 세분화하여 발전하기 시작했죠. 때문에 그 틈새에서의 차별성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던 거예요. 그런데 떡볶이는 틈새가 많아보였어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떡볶이 브랜드들이 1세대거든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빅 브랜드가 많지 않고, 카테고리의 틈새는 많아 보여서 나름의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우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녹아있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 누구나 좋아할만한 ‘국물이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메뉴구성, 매장의 디자인, 인테리어 등에 이르기까지 30대의 트렌디한 주부들을 타깃으로 하여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려 했다.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트렌디한 30대는, 20대와 40대 소비자들까지 한 번에 끌어들일 수 있는 연령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즉시 ‘떡볶이도 요리다’라는 슬로건으로, 정지상 본부장이 다양한 메뉴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순살 닭과 깻잎을 넣고 끓인 ‘국물닭볶이’에서부터 찜닭 형태의 ‘간장닭볶이’, 부드러운 소스의 ‘크림떡볶이’까지. 뿐만 아니라 치킨을 비롯한 닭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정지상 본부장이 직접 맛을 잡은 ‘걸작순살치킨’, ‘걸작순살깐풍치킨’ 등도 치킨전문점 수준의 퀄리티로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하고자 했다.
그렇게 많은 연구와 개발, 준비를 한 끝에 <걸작떡볶이>는 2014년, 브랜드 론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시작해 현재 <걸작떡볶이>는 1개 직영점을 포함해 전국에 총 71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몇 백 명 생계를 책임진 부담, ‘더 열심히’의 이유
“평소에 운전을 할 때도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 후회할 때도 있지만, 제 맘대로 운전하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며 배우는 것도 많거든요. 인사이트는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배달의 민족’이나 ‘에어비앤비’도 그렇듯이 앞으로는 온, 오프라인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기존의 틀을 모두 바꿔버릴 거라 생각해요. 과거의 것을 고집하는 순간 도태되는 사례들도 점점 더 많아지겠죠. 그리고 그 전에 무엇보다 저는 <걸작떡볶이> 각 매장의 안정적인 유지,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쓸 거예요. 브랜드 하나를 운영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손님, 점주의 가족, 직원, 협력업체 가족 등등 단순계산만 해도 몇 백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끔씩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죠. 회사명인 ‘위드인푸드’에서 ‘인’은 ‘사람’의 의미를 담은 것이기도 한데, 이처럼 앞으로도 사람 중심의 회사·브랜드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도중 그녀의 말 속에는 유독 ‘저만의’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내 의견은 이렇다’는 겸손함, 그리고 ‘세상엔 많은 색깔이 있지만 내 색깔은 이거다’라는 자신감이 이 표현 안에서 동시에 느껴진다. 하나하나 차분하게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는 김복미 대표와 정지상 본부장의 파트너십, 단순히 떡볶이에서만 그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아주 잠시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론칭 2년 만에 전국 70여개 매장. 물론 매장 수를 빠르게 확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몇 백 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리고 브랜드를 걸작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서로의 곁을 한층 더 끈끈하게 지켜나가고 있을 뿐이다.
고교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일
“지금,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면접관 앞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늘 따뜻하고 평화로울 줄로만 알았던 가정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건강악화로 어느 날 갑자기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고 집안 살림까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대학진학 또한 꿈꿀 수 없게 돼버렸다. 딸만 다섯 중 막내.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도 모자라건만, 그녀는 모든 걸 혼자 해나가야만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부모님에게도 귀여운 투정 한 번 부릴 수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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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월간외식경영 |
“그렇게, 한 때 잘 나가던 영화매거진 ‘스크린’에서 회계와 세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취직이 가장 쉬운 관리직을 찾게 된 거죠. 하지만 이 일을 어느 정도 배우고 알게 되니 스스로의 더 큰 발전이나 성장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이직을 했던 거 같아요.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에서부터 건설회사 등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에 몸담으며 각각의 기업문화, 수익구조와 재무상태 등등을 알게 됐지요. 그렇게 6년여 넘게 배웠던, 회계와 세무 관련 업무는 지금 <걸작떡볶이>를 경영하는데 있어서도 큰 기반이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한 가지 일만 오래 해오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아우르지 못하게 되는 단점이 생길 수 있다. 팀 또는 기업을 이끈다는 건,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업무들을 전체적으로 총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며 움직이는 일.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그녀는, 이것저것 다양한 기업문화와 업무들을 익히며 어릴 때부터 경영과 운영에 대한 기초적인 사항들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됐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도 홍보와 마케팅 관련서적들을 많이 찾아봤죠. 그 분야의 일을 너무 해보고 싶었거든요. 지하철 타고 2시간여 출퇴근을 하면서 홍보·마케팅 책들을 꾸준히 읽었어요. 그리고는 2005년, 스물여섯 되는 해였던가. 우연히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에 들어가게 됐고, 입사한지 3개월째 됐을 때 그 회사의 본부장님이 저를 불러 “홍보마케팅 일을 잘할 거 같은데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죠. 너무 뛸 듯이 기뻤어요.”
업무능력이라는 건 언제나 양면이 존재한다. 그 업무를 늘 해오던 사람은 기술적으로 능수능란하겠지만 새로운 걸 만들어 내거나 이를 뒷받침해줄 열정이 식어있을 수 있다. 반면, 그 업무를 간절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기술적으로 부족할지언정 새로운 시선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이를 뒷받침하는 에너지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일 테고. ‘언젠가는 홍보마케팅 일을 해보고 싶다’고 되뇌며 매순간 열심히 책 찾아 읽고 공부했던 스물여섯의 그녀는, 기다려왔던 기회를 이렇게 꽉 붙들게 된다.
월급만 받고 사는 건 내 성향 아니니까
그녀는, 블로그와 SNS 등의 바이럴 마케팅에서부터 방송과 신문, 매거진 등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관련 업무들을 맡기 시작했다. 누구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 하나 없었기에 모든 걸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히고 실패하며 배워나갔다.
“한 달 중 15~20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매일 밤을 새웠죠. 그래도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독특하고 재미있는 주제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각 방송국 작가들에게 배포한 후 방송출연섭외를 받기도 하고, 제가 직접 구상·기획한 형식으로 홈페이지와 SNS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어떠한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으니 일하는 재미에도 푹 빠져있었죠. 그러다가 2007년, 스물여덟 되던 해에 불가피하게 퇴사를 하게 됐어요. 한 때 150여개 매장을 오픈, 운영하기도 했던 유명 외식브랜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빠르게 성장했다가 또 그만큼의 속도로 쇠락해가는 걸 보면서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한 후엔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백 명 직원들이 소속된, 급식·외식·식재료유통사업을 하는 큰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도 자체 공모전을 기획, 진행하거나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 했지만 너무나 안정적인 곳이어서였는지 그녀는 이내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한 곳에서 정체되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뭔가 더 큰 것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2년 정도 다녔을까. 서른한 살에 무작정 회사를 박차고 나왔어요. 월급만 받고 사는 건 내 성향이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홍보대행사를 직접 운영해볼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그보다는 남편과 함께 직접 외식브랜드를 만들어 시작해보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걸작떡볶이>의 정지상 본부장이 바로 그의 남편. 26~27세에 직접 자신의 매장을 운영하며 치킨 맛을 내는데 있어 자신만의 노하우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첫 매장이 잘 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사내커플로 우연히 그녀를 만나 업무·사업적인 파트너십으로까지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운영전략과 홍보 및 마케팅은 김복미 대표가, 메뉴개발과 구성 등의 부분은 정지상 본부장이 나눠 맡으면서 그들만의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구상, 준비하게 된다.
신혼집 보증금으로 11평짜리 치킨 집 오픈
드디어 2010년, 일산에 36.3m²(11평)짜리 치킨 집을 오픈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 권리금 700만원을 주고 들어간 곳인데, 신혼집을 얻기 위해 마련한 보증금까지 전부 이곳에 썼다. 첫 달 매출은 1500~2000만원.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작은 규모의 매장인데다 둘이서 처음 시작한 것이기에 이 정도 매출이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스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노력의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았다.
“첫 매장은 <오플치킨>이라는 상호였어요. 기능성 치킨이 가능성 있겠다고 생각해서 ‘오메가3플러스’를 첨가해 만들었죠. 그래서 이름도 <오플치킨>이었고요. 그런데 기능성 치킨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메뉴구성을 살짝 변경한 것이 배달 중심의 돈가스·스테이크 전문점이었지요. 탕수육과 닭 강정을 아이템으로 한 <한입쏙치킨>이라는 브랜드로 또 한 번 변화도 줬었고요. 그렇게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저희는 매출이 얼마 나오는지가 아니라 향후 가맹사업으로의 확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단순히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크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거죠. 게다가 홍보마케팅전문가와 치킨전문가가 만났는데, 그냥 그런 결과물로는 흡족하지가 않았어요.”
그 중에서도 <한입쏙치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숍인숍으로 창업할 수도 있게 만든 브랜드였기에 한 때 전국 40여개 매장을 오픈, 운영할 정도로 이와 관련한 물류와 유통까지 안정적으로 확대시켜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정통 브랜드’를 선보이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더 나아가 유명 치킨 브랜드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시장 안에서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어려울 거라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1990년대부터 제공형태와 메뉴단위, 맛 등등의 카테고리별로 세분화하여 발전하기 시작했죠. 때문에 그 틈새에서의 차별성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던 거예요. 그런데 떡볶이는 틈새가 많아보였어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떡볶이 브랜드들이 1세대거든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빅 브랜드가 많지 않고, 카테고리의 틈새는 많아 보여서 나름의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우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녹아있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 누구나 좋아할만한 ‘국물이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메뉴구성, 매장의 디자인, 인테리어 등에 이르기까지 30대의 트렌디한 주부들을 타깃으로 하여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려 했다.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트렌디한 30대는, 20대와 40대 소비자들까지 한 번에 끌어들일 수 있는 연령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즉시 ‘떡볶이도 요리다’라는 슬로건으로, 정지상 본부장이 다양한 메뉴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순살 닭과 깻잎을 넣고 끓인 ‘국물닭볶이’에서부터 찜닭 형태의 ‘간장닭볶이’, 부드러운 소스의 ‘크림떡볶이’까지. 뿐만 아니라 치킨을 비롯한 닭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정지상 본부장이 직접 맛을 잡은 ‘걸작순살치킨’, ‘걸작순살깐풍치킨’ 등도 치킨전문점 수준의 퀄리티로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하고자 했다.
그렇게 많은 연구와 개발, 준비를 한 끝에 <걸작떡볶이>는 2014년, 브랜드 론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시작해 현재 <걸작떡볶이>는 1개 직영점을 포함해 전국에 총 71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몇 백 명 생계를 책임진 부담, ‘더 열심히’의 이유
“평소에 운전을 할 때도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 후회할 때도 있지만, 제 맘대로 운전하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며 배우는 것도 많거든요. 인사이트는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배달의 민족’이나 ‘에어비앤비’도 그렇듯이 앞으로는 온, 오프라인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기존의 틀을 모두 바꿔버릴 거라 생각해요. 과거의 것을 고집하는 순간 도태되는 사례들도 점점 더 많아지겠죠. 그리고 그 전에 무엇보다 저는 <걸작떡볶이> 각 매장의 안정적인 유지,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쓸 거예요. 브랜드 하나를 운영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손님, 점주의 가족, 직원, 협력업체 가족 등등 단순계산만 해도 몇 백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끔씩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죠. 회사명인 ‘위드인푸드’에서 ‘인’은 ‘사람’의 의미를 담은 것이기도 한데, 이처럼 앞으로도 사람 중심의 회사·브랜드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도중 그녀의 말 속에는 유독 ‘저만의’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내 의견은 이렇다’는 겸손함, 그리고 ‘세상엔 많은 색깔이 있지만 내 색깔은 이거다’라는 자신감이 이 표현 안에서 동시에 느껴진다. 하나하나 차분하게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는 김복미 대표와 정지상 본부장의 파트너십, 단순히 떡볶이에서만 그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아주 잠시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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