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밀집지역인 구로구 대림동·남구로·가리봉 일대는 서울 안에 있지만 서울이 아닌 듯한 곳이다. 골목마다 한자로 쓰인 빨간 간판이 즐비하고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더 많이 들린다. 게다가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흉악범죄의 소굴로 표현돼 거주민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굳이 그곳을 방문하려 하지 않는다.


현지에 사는 조선족들은 편견이라며 아우성이다. 반면 인근 거주민들은 조선족 밀집지역이라 자녀교육 등이 걱정되고 낮은 집값도 신경 쓰인다고 토로했다. 서울 곳곳에 재개발·재건축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대림·남구로·가리봉 일대는 범죄도시 오명을 쓴 채 서울 안의 외딴섬으로 남았다.


대림역 인근 상권을 순찰하는 순찰차. /사진=김창성 기자
대림역 인근 상권을 순찰하는 순찰차. /사진=김창성 기자

◆범죄소굴 묘사된 대림동

지하철 2·7호선 대림역을 나오면 주변은 온통 빨간 간판에 한자투성이 빌딩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입에선 중국말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직업소개소 앞 일자리 게시판을 바라보는 조선족의 눈은 바빠 보였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낙후된 동네로 인식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에서는 범죄소굴로 묘사돼 조선족이 집단 반발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림 일대는 사람들이 꺼리는 데다 주택이 노후화돼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저렴하다. 대림역 인근 A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역 주변 주택가의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단칸방 월세는 대체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45만원에 형성됐다. 방 두개짜리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곳도 있지만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보증금 5000만~6000만원에 월세 70만~80만원인 곳도 있었다. 주택 상태나 위치, 층수, 방 개수 등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하지만 편차는 크지 않다.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림역 일대는 전통적인 조선족 밀집지역이고 예전에는 사람들의 편견을 만든 사건사고도 많았던 지역”이라며 “최근 개봉된 영화에서 범죄소굴처럼 묘사돼 좋지 않은 이미지가 다시 한번 각인됐지만 워낙 집값이 싼 지역이라 시세 흐름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파트·다세대 공존하는 남구로

대림역에서 서쪽으로 10분가량 걸으면 4차선도로 양옆으로 브랜드아파트 단지가 있다. 조선족 밀집지역인 대림역 일대와 가리봉동 사이에 자리한 남구로의 주거지역이다.


이곳은 촘촘하게 늘어선 다세대주택과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단지 4곳이 뒤섞여 있다. 또 대림역 일대와 가리봉동과 달리 조선족 밀집지역의 느낌은 크지 않다. 주변에 빨간 간판도 안보이고 중국말도 들리지 않는다. 대림역 일대는 수시로 경찰차가 골목 곳곳을 순찰했지만 남구로의 주거지역은 내국인 지역 느낌이 더 짙었다.

대림동 일대에 비해 일반적인 주거지역 느낌이 더 강했지만 남구로 일대 거주민도 고민은 많다. 가리봉동과 대림역 일대를 오가는 길목인 데다 조선족 거주지역 느낌이 덜할 뿐 아예 없지는 않아서다.

이곳 역시 대림역 일대와 마찬가지로 서울 인기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쌌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자료에 따르면 인근에 들어선 아파트 가운데 가장 브랜드력이 뛰어난 1244세대 규모의 삼성 래미안아파트는 지난달 27일 기준 전용면적 56㎡ 평균 매매가가 4억500만원이다. 가장 큰 면적인 109㎡는 5억8000만원대에 평균 매매가가 형성됐다. 재개발·재건축 이슈로 10억원 이상 훌쩍 뛰어넘는 서울 인기지역 집값에 비하면 절반 수준의 가격이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 윤모씨는 “재건축 이슈로 들썩이는 다른 곳과 달리 서민 밀집지역인 남구로는 집값에 크게 민감하지 않다”며 “다만 조선족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등하교길 안전통학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가리봉동 조선족 밀집지역. /사진=김창성 기자
가리봉동 조선족 밀집지역. /사진=김창성 기자

◆범죄도시 각인 가리봉동

가리봉동은 대림역 일대와 함께 서울에서 조선족 밀집지역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다. 이곳은 대림역 일대와 마찬가지로 빨간 간판이 즐비한 상권과 노후화된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다. 인근 남구로 일대와 달리 아파트단지도 없다. 수년 전만 해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골목을 가득 채웠지만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신축빌라가 들어서며 동네 분위기가 조금 개선됐다.

그럼에도 가리봉동이 품은 암울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아직도 곳곳에 제대로 정비 안 된 폐건물이 방치됐고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의 주무대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가리봉동의 암울한 기억을 다시 들췄다.

집값 역시 고공행진 중인 인기지역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KB국민은행 부동산시세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가리봉동의 3.3㎡당 평균 집값은 911만원.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을 낼 만한 비교 대상이 많지 않지만 3.3㎡당 3000만원을 이상 호가하는 인기지역 아파트 분양가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이다.

도보 10분 거리에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등 첨단 업무지구가 있지만 가리봉동의 축 처진 분위기를 보면 먼 나라를 보는 듯하다. 가리봉동 주민 강모씨는 “예전처럼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던 때는 지났다”며 “집값 흐름에 민감한 동네도 아니라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8호(2017년 12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