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뉴시스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력으로 한국 산업이 휘청이고 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전지·모듈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한데 이어 반도체, 철강,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로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전방위 통상압력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적극적인 대응수단을 강구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세탁기는 시작… 통상압박 어디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3년간 연간 120만대를 초과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형 가정용 세탁기 수입물량에 최대 50%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발동을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선 연간 120만대의 한국산 세탁기 수입물량에 대해서 첫해 20%, 2년째 18%, 3년째 16% 관세를 추과 부과한다. 초과물량에 대해서는 첫해 50%, 2년째 45%, 3년째 40% 관세를 부과한다.

또한 태양광전지에 대해서도 향후 4년간 2.5GW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 첫해 30%, 이듬해 25%, 3년째 20%, 4년째 15% 관세를 추가 부과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같은 통상압력 범위가 다른 산업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현지 반도체업체인 넷리스트와 테세라 테크놀로지 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ITC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대한 관세법 위반 여부도 조사 중이다. SSD는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를 부품으로 사용하는 저장장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의 영향력이 높은 제품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각각 38.0%, 10.8%를 기록했다. 전세계 낸드시장의 절반을 우리나라 업체가 장악한 셈이다.

SSD 제조 부문에서도 삼성전자는 글로벌 1위, SK하이닉스는 7위를 차지하고 있다. ITC의 조사가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 외에도 ITC는 한국, 중국, 캐나다, 그리스, 인도, 터키 6개 국가에서 수입한 대형 구경 강관에 대한 반덤핑·상계 관세 조사도 진행 중이다. 미국 업체들은 한국산 제품에 23.52%의 덤핑 마진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ITC가 자국 기업의 손을 들어줄 경우 우리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미 FTA에도 영향 미칠까

미국 정부의 전방위 통상압력은 현재 양국이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 협상으로 번질 전망이다. 미국 측은 현재 한미 FTA의 가장 큰 문제로 자동차 무역과 농산물을 지목하고 있다.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은 한국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자동차의 수입 쿼터 확대, 자동차 수리 이력 고지와 배출가스 기준 등 비관세장벽으로 지목하고 있는 규제를 대폭 풀 것을 요구할 전망이다.

농산물 부문에서도 한국시장의 적극적인 개방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공동위 특별회기에서 우리 정부에 농산물 수입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세탁기와 태양광전지·모듈 등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선 WTO에 제소하고 세이프가드 조치 대상국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적극 협의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의 제소는 오는 7일 이후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는 WTO 제소 뿐만 아니라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도 제소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IT에 우리 기업들이 제소해 승소판정을 받아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부 우위 전통이 지배하는 미국 헌법구조상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정을 이행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CIT소송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고 중국, 태국, 베트남정부와도 손잡고 국제적인 여론형성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미 FTA 재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세이프가드 제한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 국제협력실장은 “조속한 합의를 우선하기보다는 보호주의를 배제하고 자유무역을 수호할 수 있는 협상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