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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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 설날. 아이들은 세뱃돈 받을 생각에 들뜨겠지만 어른들은 차례상 차리는 일로 분주한 날이다. 

전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한국만큼 제사에 신경 쓰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명절마다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표면적 이유’도 결국 제사이지 않은가.


그처럼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제사다. 명절 스트레스의 주범이자 시집증후군의 원흉이며 결혼 기피대상으로 제사 지내는 집, 종갓집 장남이 거론되기도 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게 종교문제다. 종교마다 제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므로 종교가 다른 부부는 제사 문제로 가정불화를 겪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제사의 의미가 예전보다 희미해졌다. 과장을 보태면 제사 때문에 모였던 친지들이, 이제는 오랜만에 얼굴 좀 보려고 만났다가 제사를 지내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따라서 요즘은 제사를 간소화해서 지내거나 제사 자체를 거르는 집이 많아졌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날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제사를 대하는 종교의 태도도 많이 달라져 최근에는 조화로운 지점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종교별로 제사를 대하는 태도와 명절 차례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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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불교에서는 유교에서처럼 이렇다 할 가정 제사의식이나 차례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유교에서는 <예기(禮記)>라는 책에서 인륜의 대사라 할 수 있는 관혼상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불교에서는 그 나라의 전통과 풍습을 존중해 불교 특유의 가정 제사의식을 세우지 않는다. 2011년 불교장례문화연구원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6.4%가 가정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답했다.


불교식 제사는 어떻게 지낼까. 조계종 포교원에서 신도들을 위해 준비한 ‘명절 차례상 지침’을 참고해보자.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는 술 대신에 차례(茶禮)라 해서 정성이 담긴 차와 음식을 준비한다. 그 다음에 향과 초를 준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미타경> 등을 독송한 뒤 초헌을 올리고 삼배를 한 다음 아미타불 명호를 부른다. 이어 진수와 동시에 중헌을 하고 삼배한 뒤 반야심경을 봉복하고 천도원문을 작성해 읽는다. 마지막으로 종헌을 한 뒤 삼배로 끝을 맺고 상을 거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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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을 통해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풍속이라고 밝혔으며 로마 가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각 민족의 문화와 풍습을 존중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도 조상에 대한 효성을 나타내는 전통문화라 해 제사를 허용했다. 

또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는 제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에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


천주교 신자는 제사 전에 복장을 단정히 하고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제사상에는 십자가와 조상의 사진, 이름을 올린다. 향을 준비한 다음 성가를 부르며 성호를 긋고 두번 절한 뒤 분향하고 잔을 올린다. 조상을 기리는 말을 하거나 성경을 읽은 후에는 두번 절하고 나서 묵상한다. 국그릇 대신 냉수를 올린 다음 작별 배례를 하고 마지막 성가를 부르며 제사를 마친다.

천주교회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예식은 허락했지만 ‘신주(神主)’를 모시는 것은 금지했다. 위패에 신주라는 글씨를 쓰거나 혼령을 불러들이는 축문을 읽는 행위는 금한 것이다.

◆개신

개신교는 전통적으로 차례를 금했지만 최근 들어 제사를 일정 부분 용인하는 추세다. 예컨대 ‘절은 못해도 제사상은 차릴 수 있다’는 식이다. 

크리스천투데이에 따르면 이은선 안양대 교수는 2014년 한 세미나에서 "교회는 추모예배의 성격을 잘 가르쳐 건전한 신앙과 함께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제사의 우상숭배적 요소를 제거하더라도, 제사가 가진 효도와 조상 기림, 가족공동체 유지 등의 미풍양속을 어떻게 지속할지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2011년 김명혁 목사는 크리스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종교간 갈등을 대결로 푸는 건 옳지 않고, 제사를 드리지 말자고 하면서 다른 종교의 풍습을 '마귀적'이라 몰아세우는 등의 투쟁적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제사상을 차릴 수도 있고 제사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바울도 제사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절만 못하겠다고 하면 된다. 본질이 아닌 부분을 양보하면 상대방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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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의 경우 명절 당일 교당에 모여 합동 향례를 올린다. 향례는 원불교 예법에 따라 진행되며 불단에 음식은 올리지 않는다. 불단에는 꽃과 향초만 올린다고 한다. 합동 향례가 끝나면 담소를 나누거나 간단히 식사하고 헤어진다고.

설날의 전통 분위기와 원불교의 의례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훈 전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는 1997년 발표한 논문 '민속 의례와 원불교 의례'에서 이런 의견을 개진했다.

김 전 교수는 “원불교 신정절 행사에서는 전래 풍속인 차례의 아름다운 옛 향내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어 "설날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조상을 숭배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행위"라며 "새해를 맞이한 첫 행동이 차례로 나타나며 무엇보다도 먼저 했다는데 의미가 있고 한국인의 의식을 나타낸 것이므로 이 같은 의식을 원불교 의례와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도교

천도교는 맑은 물을 한그릇 떠놓고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특이한 점은 제사상을 벽 쪽이 아니라 절하는 사람 쪽으로 향하게 둔다. 조상의 영혼은 제사 때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후손들 속에 살아 숨쉬고 있으니 나를 향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