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보다 채소를 선호하는 채식시대가 열렸다.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던 과거와 달리 기후환경변화에 대비하거나 개인의 도덕적인 신념에 따른 가치소비를 위해 채식주의자를 선언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관련시장도 커지며 새로운 경제를 창출하고 있다. 이에 <머니S>는 우리나라 채식시장의 현황을 살피면서 특별한 채소경제의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사진=박흥순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사진=박흥순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베지노믹스가 뜬다-하] 하루 만에 끝난 '채식 도전기'

기자에게 육류는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다.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육질과 한입 베어 물면 터져 나오는 육즙은 분명 ‘삶의 즐거움’이다. 삼시세끼 고기반찬을 먹기 위해 일을 하며 첫 월급의 절반을 육식으로 지출했다. 간혹 TV에 등장하는 채식 프로그램을 볼 때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건강에 더 좋지 않다’며 혀를 찬다. 한때 2주간 매일 프라이드치킨을 먹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는 소위 ‘고기성애자’다.

그런 기자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채식을 자처했다. ‘채식을 하겠다’고 주변에 알리니 ‘다른 사람은 다 해도 너는 못한다’는 비웃음이 돌아왔다. 가까운 지인 중 한명은 “(그럴리 없지만) 채식주의자가 되더라도 고기 먹는 것을 지적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채식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지난 1월 말 완전한 채식 단계인 ‘비건’(유제품, 난류, 어류, 조류 섭취 불허용)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기자가 방문한 비건 식당은 서울 이태원에 있는 곳으로 채식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당초 계획했던 비건 식당이 방문 하루 전 문을 닫는 바람에 급히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인터넷으로 찾아본 두번째 식당 평가는 칭찬으로 가득했다. 기대감을 가지기 충분했다. 생애 첫 비건 식당 방문이었지만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앞섰다. 콩고기에 대한 상상을 하며 식당 문을 연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비싸고 낯선 채식체험

저녁 나절 방문한 식당은 온통 식물로 가득했다. ‘정육식당에서 고기로 인테리어 하는 기분이네’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녹색 풀 사이에 자리잡고 앉았다. 종업원이 건네 준 메뉴판을 받아 들고 한참 고민했다. 렌틸콩, 버섯미트볼, 퀴노아, 케일, 로메인이라는 낯선 단어가 가득 찬 메뉴판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와닿는 음식은 없었다. ‘뭘 먹어야 할까. 아니 먹을 수 있을까. 빵은 없나’라는 생각도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칠리치즈버거, 두부시저랩, 렌틸베지볼,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값은 4만3000원. 채식이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어긋났다. 통상 시중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메뉴와 비슷한 가격에 눈앞이 아찔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채식 수요가 적어 가격이 비싸다.


/사진=박흥순 기자
/사진=박흥순 기자

주문한 음식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동행한 이와 함께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양은 꽤 푸짐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새 없이 기자의 포크와 나이프는 칠리치즈버거로 향했다. 육식에 길들여진 탓일까. 채소만으로 구성된 패티와 유부칠리콩, 캐슈넛으로 만든 소스의 조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패티는 특유의 탄력이 없었고 입안에서 쉽게 부서졌다. 마치 콩국수를 먹었을 때 느낌처럼 입안에 거친 분말이 남는 느낌을 받았다. 곁들임으로 나온 감자칩이 버거보다 맛이 좋았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두부시저랩에 손을 댔다. 각종 채소를 토르티야로 감싼 생김새는 마치 모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치킨 랩 같았다. 다만 그 속을 채운 채소의 두께가 성인 남성의 주먹과 비슷해 먹기가 쉽지 않았다. 돌돌 말린 토르티야를 풀어헤치자 시저샐러드 소스가 고약한 향을 풍겼다. 눈을 질끈 감고 한술 들어 입안에 털어 넣자 불현듯 삼겹살이 생각났다. 잘 구워진 노릇한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어울릴 것이라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채식시장이 커지면서 채식 인구가 늘고 레시피도 다양해졌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채소만을 사용해 만든 요리는 더 한계가 있을 터.


끝으로 렌틸베지볼에 손을 뻗었다. 이 메뉴는 렌틸콩, 옥수수, 체다치즈, 양배추 피클, 쌀 등을 한데 버무린 음식으로 외형은 얼핏 비빔밥과 비슷했다. 볼을 끌어안고 음식을 잘 섞은 뒤 한입 먹자 느끼한 마요네즈 밥과 토르티야의 중간이라는 생각이 났다. 밥알 사이사이 섞인 나초가 전해주는 염분 이외에 다른 강렬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건강해지는 맛이다.

/사진=박흥순 기자
/사진=박흥순 기자

고기와 소스의 강렬한 맛이 그리운 시간이었다. 주문한 모든 음식에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려웠고 결국 많은 양의 음식을 남겼다.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선언한 이들을 경외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첫번째 채식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채식 특별하지 않아요”

식당 종업원 A씨는 “채식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남긴다”며 “채식에는 비건, 락토, 오보, 락토 오보 등 다양한 단계가 있는데 처음부터 비건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채식이라는 부담감에 십중팔구 실패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식을 특별한 행위가 아닌 일상의 일부분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최근 채식이 일상화되면서 산업이 급성장했지만 육식문화가 발달한 국내에서 채식주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기자도 처음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혹자들의 눈에 기자는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스스로 ‘락토 베지테리언’이라 칭한 직장인 B씨도 “3년 전 처음 공장식 축산을 알게 되고 채식을 선언했을 때 난감했던 적이 많았다”며 “이후 채식주의자인 나 때문에 동료들이 신경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려 점심식사는 도시락으로 혼자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식은 슬프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지 개인의 신념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9호(2019년 2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