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 객실을 재현한 인천 중구생활사전시관. /사진=한국관광공사
대불호텔 객실을 재현한 인천 중구생활사전시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인천광역시 중구, 오랜 세월 공터로 있던 자리에 옛 주인이 돌아왔다. 1978년 철거된 대불호텔이 40년 만인 지난 2018년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

대불호텔 모습을 재현해 꾸민 이곳은 대불호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관,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2관으로 구성된다. 관람 동선은 3층으로 이뤄진 1관을 지나 자연스레 2관으로 이어진다.


중구생활사전시관에서 먼저 할 일은 대불호텔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세월을 돌아보는 일이다. 흥했다 망하고, 다시 성했다 쇠하는 그 과정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 130여년 전 개항장 인천과 많이 닮았다. 이는 우리가 살아내야 할 팍팍한 인생과도 많이 닮았다.

◆대불호텔의 90년 흥망성쇠


대불호텔 자리에 개관한 중구생활사전시관. /사진=한국관광공사
대불호텔 자리에 개관한 중구생활사전시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역사는 1888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물포항(인천항)에서 멀지 않은 일본 조계에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세워지면서다. 파란 눈의 이방인은 이곳을 호텔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렀다. 식사하고 잠을 자는 공간이지만 초가로 지은 우리네 주막이나 다다미 깔린 일본 여관과 달랐다. 객실에는 침대가 놓이고 서양 음식이 제공됐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한 종업원의 맞춤 서비스는 대불호텔의 명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비망록>에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셨다”며 투숙 경험을 남겼다. 대불호텔이 ‘깨끗하고 매혹적인 건물’이라 극찬한 영국인 탐험가 새비지 랜도어 역시 <코리아 혹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현대적 말씨를 사용하는 종업원’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당시 대불호텔 서비스를 보여주는 전시물. /사진=한국관광공사
당시 대불호텔 서비스를 보여주는 전시물. /사진=한국관광공사
대불호텔 객실료는 상등실 2원50전, 일반실 2원으로 다른 호텔이나 여관보다 비쌌지만 이런 인기에 힘입어 11개 객실은 늘 만실이었다. 당시 한국인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23전이었다.

10여년간 호황을 누린 대불호텔은 189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놓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경성(서울)까지 우마차를 타고 12시간 이상 걸렸는데 기차를 이용하면 1시간40분 내외로 줄었기 때문이다. 굳이 하룻밤을 인천서 머물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또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서양인 왕래가 감소한 것도 대불호텔 쇠퇴의 악재로 작용했다.


중구생활사전시관 제1전시관. 중화루 간판이 보인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중구생활사전시관 제1전시관. 중화루 간판이 보인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일본인 무역상 호리 히사타로가 소유한 대불호텔은 뢰씨 일가를 비롯한 중국인들에게 넘어가 베이징요리 전문점 ‘중화루’로 다시 태어났다. 호텔에서 중국집으로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중화루는 인천을 넘어 경성까지 이름을 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불호텔 경영에 악재로 작용한 경인선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하지만 40여년을 승승장구하던 중화루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60년대 들어 청관거리 경기가 급격히 나빠진 것. 중화루 폐업 후 월세방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3층 벽돌 건물은 1978년, 지은 지 90년 만에 결국 철거되고 만다.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중구생활사전시관 1관에는 대불호텔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당시 호텔 객실과 연회장을 재현한 공간이 있고,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카메라와 회중시계 같은 진귀한 소품도 전시됐다. 1층 전시관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마감해 대불호텔 유구를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흥미롭다.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은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공간이다. 당시 상류층 주택을 재현한 전시물부터 이발소, 다방, 극장까지 중구에 실재한 건물과 시설을 기반으로 꾸며, 전시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인천 중구 여행팁

인천개항박물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인천개항박물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중구생활사전시관을 돌아본 뒤에는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를 찬찬히 걸어보자. 중구생활사전시관 옆으로 조선은행이라 이름 붙은 옛 인천일본제1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7호)과 인천일본제18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50호), 일본제58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19호)이 나란히 자리한다. 청일전쟁 후 경제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한 이들 일본은행 건물은 현재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본제18은행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일본제1은행은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각각 운영된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하는 일본제18은행에서는 답동성당과 존스턴 별장처럼 현재 인천 중구에 있거나 과거에 있던 근대건축 모형이 전시돼, 개항 당시 인천의 모습을 상상하기 좋다. 부둣가 창고를 지역 예술인의 창작 공간으로 꾸민 인천아트플랫폼,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한중문화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월미공원 전망대. /사진=한국관광공사
월미공원 전망대. /사진=한국관광공사
월미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한국전통정원이다. 월미공원 입구 왼쪽에 있는 한국전통정원에는 창덕궁 부용지, 안동하회마을의 양진당, 담양 소쇄원, 함안의 국담원 등 우리나라 대표 전통 건축물을 재현했다. 인천 앞바다와 영종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월미전망대와 월미문화관도 놓칠 수 없다. 공원 정문에서 1.4km 떨어진 월미전망대 앞 정상광장까지 걸어가거나 물범셔틀카를 이용하면 된다. 물범셔틀카 이용료는 왕복 어른 1500원, 어린이 800원(편도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이다.

신포국제시장. /사진=한국관광공사
신포국제시장. /사진=한국관광공사
신포닭강정. /사진=한국관광공사
신포닭강정. /사진=한국관광공사
신포국제시장은 19세기 말 푸성귀전에서 비롯됐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배추와 무, 양파 등 각종 채소를 팔던 자리에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된 것. 개항 이후 인천항으로 들어온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서울에 화신백화점이 있다면 인천에는 신포시장이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번성했다.

신포시장으로 불리던 이곳은 2010년 3월에 문화 관광 시장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신포국제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포국제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는 먹거리에 있다. 그중에도 닭강정이 명물. 양념치킨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에 처음 선보였으니, 그 매콤한 맛을 지켜온 시간이 어느덧 40년에 가깝다. 최근 젊은 고객의 입맛을 고려해 순한 카레 맛 닭강정을 내놓은 게 변화라면 변화다.

☞당일 여행 코스
중구생활사전시관-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월미공원-신포국제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날: 중구생활사전시관-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월미공원-신포국제시장
둘째날: 송도센트럴파크-인천시티투어-소래포구 <사진·자료=한국관광공사(2019년 5월 추천 가볼 만한 곳-‘신상’ 여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