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초원, 자전거의 일장춘몽
대자연 앞의 숙연한 품고 이태준 열사로 향하다


몽골 울란바토르 동쪽 엘덴솜 대초원을 달리는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몽골 울란바토르 동쪽 엘덴솜 대초원을 달리는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한동안 몽골 꿈을 꿨다. 솔직히 말하자면 ‘몽골몽(夢)’은 ‘초원몽’이었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대초원에 압도된 탓이다. 그곳에서 인간과 그의 무리는 한낱 점이나 선에 지나지 않았다. 몽골의 푸른 대초원에서 자전거여행을 한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럼에도 대초원을 누빈 근육은 이따금 꿈틀댔다. 몽골몽은 지독할 것 같진 않다. 다만 대초원을 향한 꿈은 잿빛 일상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리라.

몽골의 초원은 푸르다. 자전거여행 나흘 내내 비가 내렸다. 비는 초원에 푸른 생기를 불어넣었다. 말, 소, 양, 염소, 낙타는 푸른 풀과 물과 공기에 생동을 더했다. 초원의 산것들은 하늘과 땅이 내린 것에 생명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몽골 대초원과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몽골 대초원과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몽골의 5대 가축은 사람의 손을 탔음에도 자연의 것만으로 초원을 누빈다. 유목민은 가축을 멀찍이 두고 지켜볼 뿐이다. 이들은 서로가 필요할 때면 잠시 어깨를 맞댄다. 이들에게서 간섭은 어쩌면 드넓은 초원을 살아가는 힘일 수 있겠다. 최소한의 간섭은 소통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솔롱고스 두바퀴, 대초원의 귀빈 되다

인구수 320만명, 가축수 6600만두. 면적은 한반도의 7배. 인간보다 가축이 훨씬 많다는 드넓은 몽골의 대초원을 달렸다. 몽골서 귀하다는 비가 이어졌다. 비를 몰아온 ‘솔롱고스’의 두바퀴는 귀빈 취급을 받았다. 솔롱고스는 우리를 무지개의 나라라고 하는 몽골의 친숙한 표현이다. 연속된 비에 대기는 더욱 맑아져 청량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하위르깅 다와 습지를 달리는 자전거여행객들. 7월 말임에도 야생화가 천지다. /사진=박정웅 기자
비가 내리는 하위르깅 다와 습지를 달리는 자전거여행객들. 7월 말임에도 야생화가 천지다. /사진=박정웅 기자
맑아진 대기에 먼 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애써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도 좋았다. 물이 귀해 혹독하다던 초원의 삶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평온해 보이는 초원, 그곳에서 바퀴를 구를수록 뭔가가 비워진다는 감상이 잦았다. 물론 한낱 여행자의 시선과 잣대로만 초원의 삶을 말할 순 없겠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 동쪽, 세계 최대규모의 기마상인 칭기즈칸 기마상(높이 40m)이 대초원에 우뚝 솟았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원시의 초원을 간직한 몽골. 자전거여행객들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테를지국립공원을 비롯해 몽골의 젖줄인 툴강 일대의 초원을 누볐다.

강을 건너는 자전거여행 지원차량. /사진=박정웅 기자
강을 건너는 자전거여행 지원차량. /사진=박정웅 기자
특히 오지 중의 오지인 하위르깅 다와에서의 우중 라이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라이딩 후 그곳을 자동차로 빠져나오는 데만 2시간가량이 걸렸다. 몽골 자전거여행의 묘미는 자연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초원의 망망대해에서 만난 한 유목민 가족의 환대는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것이었다.

◆몽골 자전거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거북바위가 반기는 테를지국립공원. /사진=박정웅 기자
거북바위가 반기는 테를지국립공원. /사진=박정웅 기자
임은영씨(52)는 초원을 달리는 내내 한결같은 표정이었다. 폭우가 쏟아져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거나 바퀴가 박힌 습지에서 진흙범벅의 얼굴이 됐는데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몽골여행은 15년 전 초등생이던 자녀와 몽골을 찾은 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임씨는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온통 초록 세상이다. 탁 트인 전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빌딩숲에 갇혀 사는 것과 비교가 된다. 초원이라는 대자연 앞에 머리가 숙여졌다. ‘청량함’이나 ‘깨끗함’…. 초원에서 느낀 기운을 한마디로 정리할 표현이 떠오르질 않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자전거여행을 와서, 또 자전거를 타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면서 “몽골사람들의 좋은 기운에 도시생활에서 놓친 무엇인가를 되짚은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의 맑은 눈을 봤다”고도 했다.

대초원의 게르를 찾은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대초원의 게르를 찾은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최희락씨(71)는 승마 체험을 뒤로 한 채 숙박지 게르에서 단잠을 청했다. 그런 그가 다음날 찾은 유목민의 게르에선 주인장이 내준 말에 덥석 오르더니 초원을 내뺐다. 알고 보니 과거 생활체육대회 등을 휩쓴 수준급 승마인이었던 것.

25년 전 말을 타러 온 경험이 있다는 최씨는 이번에 “별을 보러 왔다”며 “그때 우연히 본 환상적인 밤하늘이 지워지질 않았다”고 했다. 승마여행에서 보너스로 받은 25년 전 밤하늘의 인상이 그의 등을 떠민 셈이다. 그는 “이제는 주객이 전도됐다. 밤하늘에 대한 충격으로 몽골에 대한 기억은 말에서 별로 바뀐 것”이라고 했다. 연속된 비에 최씨는 초원의 밤하늘을 다음으로 기약했다.


엘덴솜 대초원의 칭기즈칸 기념상 뒤편 언덕에 오른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엘덴솜 대초원의 칭기즈칸 기념상 뒤편 언덕에 오른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김영희씨(61)는 이번 여행을 단단히 별렸다고 했다. 이번이 첫 해외 자전거여행이어서다. 또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지난 2년간 자전거를 거의 타질 못했다는 것. 그는 “자전거 바퀴를 초원에 맞는 것으로 교체해서 연습까지 했다. 몽골의 대초원을 달린다는 생각에 잠까지 설쳤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자전거 실력에다 만반의 준비까지 갖춘 그의 자전거는 경쾌했다. 변덕스런 날씨와 초원의 다양한 지형지물을 가리지 않았다.

김씨는 폭우가 쏟아진 툴강과 수많은 개천을 거뜬하게 건넜다. 그는 “여기(몽골)가 체질”이라고 했다가 “툴강에서는 실은 살짝 겁이 났다. 자전거를 8년 동안 탔지만 이번처럼 강을 건너본 적이 없었다. 일행들이 건너는 것을 보고 함께하니 용기가 나더라”며 웃었다. 또 “초원에 야생화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공기가 청량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대초원은 전문 가이드와 지원차량이 함께하면 즐거운 자전거여행이 될 것”이라면서 “노년에 건강을 지키는 데 자전거만 한 것이 없다. 돌아가면 지인들과 몽골 자전거여행을 계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태준선생기념공원. 몽골 훈장수여 확인 표지석(오른쪽)과 이 선생의 가묘. /사진=박정웅 기자
이태준선생기념공원. 몽골 훈장수여 확인 표지석(오른쪽)과 이 선생의 가묘. /사진=박정웅 기자
◆이태준, ‘몽골의 슈바이처’로 추앙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한국인이면 꼭 찾아야할 데가 있다. 바로 몽골의 슈바이처인 이태준열사를 추념하는 이태준열사기념공원(이태준선생기념공원)이 그곳이다. 이태준열사는 1914년 울란바토르로 가서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운반했다. 또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 활동에 헌신했다. 몽골인들 사이에서는 영웅 칭호를 받는다. 당시 몽골 전역에 만연한 질병을 퇴치한 공로로 1919년 몽골정부로터 훈장을 받았다. 선생은 1921년 러시아 백군에게 안타깝게 피살당했다.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한국과 몽골정부는 2001년 이곳에 공원을 조성했다. 기념공원은 울란바토르에서도 고급주택단지가 있는 곳에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지와 관리 또한 잘 되고 있다는 대목에서 이 선생이 몽골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음을 알 수 있다. 공원 중앙의 표지석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몽골 외무부의 훈장수여 확인문서 표지석과 이태준선생의묘(가묘)가 있다. 또 오른쪽에는 이 선생의 독립운동과 인술활동을 안내하는 이태준기념관이 있다.

자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전경. 전망대에서 독수리 체험을 지켜보는 여행객들. 전망대 인근에는 이태준선생기념공원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자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전경. 전망대에서 독수리 체험을 지켜보는 여행객들. 전망대 인근에는 이태준선생기념공원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지난 5월 MBC 특별기획 <이몽>이 이태준 선생을 조명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3월 이곳을 찾았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해외 독립운동가를 찾는 취지였다. 몽골인들이 존경하는 이태준 선생이다. 이제 몽골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취재협조=케이벨로·훈누투어>

☞ 본 기사는 <머니S> 제606호(2019년 8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