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불황일수록 중고거래가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중고거래는 갈수록 진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낸다. 중고거래의 '경제학'이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물건을 주고받던 전통적인 플리마켓이 온라인 직거래로 나아가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는 더욱 편리해졌다. <머니S>는 다양한 종류의 중고거래를 체험해보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봤다. <편집자 주>


[진화하는 중고거래-①] 소유에서 공유로… 불황 속 호황

억대 버는 인증셀러… 20조 황금알 ‘중고시장’

중고거래산업이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벼룩시장이나 플리마켓 등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중고시장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하면서다. 특히 중고나라·번개장터·당근마켓·헬로마켓·땡큐마켓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중고거래 플랫폼이 시장 성장세를 이끈다.

플랫폼과 함께 중고거래는 투명하고 정교하게 진화했다. 중고나라는 빅데이터를 통해 사기를 걸러내고 당근마켓은 머신러닝을 통해 사용자 맞춤형 제품을 추천한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중고거래는 짠물소비에서 트렌디한 소비로 바뀌는 추세다.

◆중고시장, 왜 커졌나 

중고시장은 개인 간 거래가 많아 시장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업계에선 중고차를 제외한 국내 중고시장 규모가 지난해 2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4조원에서 10년간 5배 성장한 것이다.

중고시장의 성장배경엔 불황이 자리한다. 통상 경기가 나빠질수록 중고거래는 활발해진다. 최근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고가의 신제품 대신 저가의 중고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반대로 중고제품을 팔아서 줄어든 가처분 소득을 보완하려는 이들도 많아졌다. 

최근 몇년간 중고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 때문이다. 과거 재화가 ‘소유’하는 개념이었다면 요즘은 ‘사용’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필요하면 사용하다가 필요성이 끝나면 되파는 중고거래의 특성과 맞아 떨어진다.

업계에선 무엇보다 ‘가치소비’ 트렌드에 주목한다. 단순히 저렴한 가격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찾아 중고시장에 진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성 있는 빈티지 제품이나 희귀한 절판, 한정판 제품이 대표적이다.

유승훈 중고나라 미디어전략실장은 “중고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시중에 있는 제품을 값싸게 사고 싶은 부류와 시중에 없는 제품을 비싸게라도 사고 싶은 부류 두 종류”라며 “최근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중고시장 성장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중고거래, 어디까지 해봤니

시장이 성장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각 플랫폼은 오픈마켓, 지역 커뮤니티, 직매입 등 서로 다른 전략으로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2003년 네이버 카페로 시작한 중고나라는 이제 중고거래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누적 회원수는 2100만명에 달하고 하루에만 평균 23만건의 새 상품이 등록된다.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2조5000억원으로 이커머스업체인 티몬(3조원대 초반)과 대적할 만한 수준이다.

중고나라는 2014년 법인을 설립, 2016년 모바일 앱을 출시하며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발돋움했다. 2017년에는 중고차시장에 뛰어들었고 올해 오프라인 중고차 매장까지 열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중고나라의 수익모델은 광고와 중고차사업, ‘파트너센터’ 서비스다.

파트너센터는 중고나라가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일종의 오픈마켓 서비스다. 이용자가 판매 채널이 돼서 중고나라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아 팔고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사기이력만 없으면 누구나 본인 인증을 통해 ‘인증셀러’로 참여할 수 있다. 인증셀러는 중고나라가 파트너센터에 올려둔 상품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개인 페이지에 등록한다. 판매가 완료되면 중고나라와 판매자가 수익을 나눈다.

현재 인증셀러는 총 3000여명으로 학생과 주부가 주를 이룬다. 상품 공급과 배송은 중고나라가 맡고 인증셀러는 무자본으로 판매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부업으로 인기다. 인증셀러는 평균 한달에 30만원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지난 반년간 억대 수익을 낸 인증셀러도 있다. 중고나라는 파트너센터를 통해 독자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억대 버는 인증셀러… 20조 황금알 ‘중고시장’

2015년 7월 출시된 당근마켓은 현재 누적 다운로드수 800만건을 기록하며 업계 2위로 급성장했다. 연간 거래액은 2016년 46억원에서 지난해 2178억원으로 뛰었다.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마켓’이란 이름의 당근마켓은 지역 기반 중고거래 서비스다. 사용자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기반으로 자신의 동네를 인증한 뒤 반경 6㎞ 이내 다른 사용자와 거래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동네와 근처 동네에서 실시간으로 거래되고 있는 물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동네 이웃간에 정을 나누는 ‘무료나눔’도 활발하다. 최근엔 무료나눔을 대기하는 사람이 늘면서 사용자 체류시간이 가장 긴 앱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기준 이용자 1인당 한달에 264분을 당근마켓에 머물렀다.

당근마켓은 이 같은 장점을 살려 동네 커뮤니티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강남 일대 등 일부 지역에서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행, 지역 관련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당근마켓은 해당 서비스를 내년 상반기까지 전국으로 확대하고 이를 통해 지역별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공동구매의 판을 깔겠다는 방침이다.

집으로 찾아오는 중고거래서비스도 등장했다. 2016년 스타트업 어픽스가 만든 ‘땡큐마켓’이 그 주인공이다. 땡큐마켓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1대1 거래가 아니다. 땡큐마켓이 중간에 개입해 판매자의 중고물품을 직매입하고 추후 구매자에게 판매한다. 이를 통해 중고시장의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땡큐마켓은 판매자가 물건을 의뢰하면 직원이 직접 방문수거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노출, 사기 등 위험부담을 최소화한다. 수거 후 세척과 개보수를 하기 때문에 품질도 향상된다. 땡큐마켓에 들어온 제품 99%가 3개월 안에 완판되는 이유다.

◆중고시장의 미래는

일각에선 중고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고 지적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다양화된 데다 이커머스업체들도 중고거래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매장 전시상품이나 반품상품을 정가의 40~60%에 판매하는 리퍼브시장도 경쟁 상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중고시장이 전체 파이를 키우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난 3년간 땡큐마켓 이용자 4명 중 3명은 중고거래 경험이 없던 부류다. 아직까지 중고거래를 이용하지 않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한창우 어픽스 대표는 “중고시장이 활성화된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국내 시장은 이제 시작단계에 있는 이머징 마켓”이라며 “최근 중고시장에서 보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며 꾸준한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나라, 당근마켓, 땡큐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마다 성격이 제각각인데 모두 성장세”라며 “앞으로도 중고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한 기업이 독점할 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1호(2019년 12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