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가 2020년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도쿄에서 열리는 ‘2020 하계 올림픽’에 욱일기 사용을 사실상 묵인했다. 개최국인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반발이 거세다. 욱일기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기다. 욱일기를 통해 군국주의 부활을 간전접으로 선포한 일본, 그 속내를 들여다 봤다.【편집자주】


[도쿄올림픽, 방사능 만큼의 걱정거리 '욱일기'⑥] 학교부터 운동화까지… 깊숙히 뿌리박힌 '욱일 문양'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1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서 욱일기를 든 자위대를 향해 서 있다. /사진=로이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1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서 욱일기를 든 자위대를 향해 서 있다. /사진=로이터
일본 제국주의 전범기인 ‘욱일기’와 욱일 문양은 비단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행사나 정치적 이슈, 심지어는 많은 이들이 소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 디자인에까지 침투하면서 쉼 없이 문제를 야기한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심각한 논란을 양산하는 문양이 사회 전반에 걸쳐 계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욱일 문양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상황에서 등장했는지 살펴봤다.
일본의 한 우익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6년 8월15일 2차세계대전 종전기념일 행사에서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 인근에 욱일기를 걸어놓고 있다. /사진=로이터
일본의 한 우익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6년 8월15일 2차세계대전 종전기념일 행사에서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 인근에 욱일기를 걸어놓고 있다. /사진=로이터

◆ 학교까지 퍼진 ‘욱일기’… 정치·사회 전반서 ‘논란’

욱일기를 가장 많이 흔드는 곳은 역시 일본이다. 우익 성향의 대부분 일본 집회현장엔 ‘단골’처럼 등장한다. 일본은 정치인들도 적극 가세한다. 지난해 8월15일 도쿄에서 열린 종전기념일 행사가 대표적이었다. 당시 우익성향의 일본 의원들은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이 대거 봉안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다.

이때 신사 곳곳에 욱일기가 게양되고 “일본은 침략 범죄 국가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논란을 빚었다. 행사에 참석한 일부 극우 인사들은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입었던 군복을 입은 채 욱일기를 들고 행진하며 ‘전쟁가능국 개헌’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

최근 가장 크게 터졌던 ‘욱일기 논란’은 제주 관함식이었다. 한국 해군은 2018년 10월 제주에서 14개 국가가 참가하는 국제 관함식을 개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여기에 욱일기를 게양한 함정을 보낸다는 소식이 사전에 전해지면서 국내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관함식 참가국은 자국기 게양이 기본 원칙’이란 내용의 공문과 더불어 여러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 측과 의견을 교환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끝내 관함식을 5일 앞두고 불참을 선언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내에선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 연이어 욱일기가 등장해 누리꾼들을 들끓게 했다. 지난해 6월 경기 용인시에서 열린 국내 최대 EDM ‘울트라 코리아’에서는 한 일본인 관객이 욱일기로 몸을 감싼 채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2개월 뒤 인천시가 주최한 ‘2019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일본 그룹 ‘코넬리우스’가 공연을 펼쳤다. 이 때 뒤편 대형 스크린을 통해 욱일기와 욱일 문양이 들어간 영상이 약 1~2분 간 수만명의 관객 앞에 상영되는 일이 벌어졌다. 코넬리우스 측은 이에 대해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라고 해명했으나 일본 그룹이 사용한 영상이란 점에서 논란이 컸다.

교육의 장인 학교에도 욱일기는 깊게 퍼져있다. 캐나다 밴쿠버의 월넛 그로브 중·고등학교를 비롯해 토론토의 이토비코 종합예술고등학교, 미국 로스앤잴레스의 공립학교인 로버트 F. 케네디 커뮤니티스쿨 등에서 욱일기가 연속해 발견됐다. 한국에서도 2013년 모 대학교 디자인학부 학생들이 욱일기를 배경으로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는 사진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해외 학교에서 욱일기 관련 제보가 들어와 살펴보면 교내에 잔존한 욱일기 문양이 굉장히 많았다”며 “교육 현장이란 점에서 대책없이 넘어가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디다스가 발매했던 욱일 문양 티셔츠. /사진=아디다스 공식 온라인스토어 캡처
아디다스가 발매했던 욱일 문양 티셔츠. /사진=아디다스 공식 온라인스토어 캡처

◆ 기내식, 서핑보드, 운동화… 글로벌 기업들도 ‘無知의 행진’

욱일 문양을 버젓이 사용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해당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디자인이나 홍보 영상 등에 욱일 문양을 활용하고 있다. 욱일 문양을 단순한 디자인적 요소가 아닌 ‘일본’의 상징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세계적 스포츠 용품업체인 아디다스는 공식 후원사로 참여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공개한 홍보영상에서 욱일기가 등장하는 장면을 삽입하거나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티셔츠를 파는 등 관련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이보다 4년 전인 브라질 월드컵 때는 일본 대표팀의 유니폼에 욱일 문양이 연상되는 디자인을 삽입하기도 했다.

호주에 기반을 둔 세계 1위의 서핑용품 전문 업체 빌라봉도 욱일기와 관련해 악명이 높다. 빌라봉은 자사 대표 제품인 서핑보드에 욱일 문양을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보드 전체가 욱일 문양으로 뒤덮여있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최근 세계적 록밴드 ‘메탈리카’와 협업한 상품에서도 욱일기 관련 제품을 넣어 국내 팬들의 반발을 샀다.

나이키 신발 브랜드 '에어조던'에서 내놨던 욱일문양 커스텀. /사진=나이키 캡처
나이키 신발 브랜드 '에어조던'에서 내놨던 욱일문양 커스텀. /사진=나이키 캡처

일본의 국책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은 기내식 통에 욱일기 디자인을 활용해 물의를 빚었다. 크리스찬 디올, 나이키 에어조던 등 유명 브랜드도 각각 욱일기가 연상되거나 욱일 문양을 차용한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욱일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세계 각국이 자본을 앞세운 일본을 통해 ‘욱일기’를 받아들이는 인식 때문이다. 서경덕 교수는 “세계인들이 욱일 문양을 일본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디자인으로 생각할 뿐 군국주의나 제국주의를 상징했던 깃발로 알지 못하고 있다”며 “단지 ‘일본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 일본을 표현할 때 욱일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5호(2019년 12월31일~2020년1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